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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합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김명수 대법원'의 주요 판결을 통해 평가하고자 합니다.

총 6회에 걸쳐 〈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을 연재합니다. 사법농단, 노동, 군인권, 여성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비평함으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대법원장의 교체 이후 새로운 대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판결비평에서는 사법농단 판사, 임성근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무죄를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평합니다.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단순 논리에 갇혀 무죄라는 결론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에 한동대 유승익 연구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가 비평했습니다.

 
대법원 제2부 재판장 천대엽 · 조재연 · 민유숙(주심) · 이동원 대법관, 2021도11012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1심 무죄를 받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임성근 전 판사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되어 헌법재판소에서 절차가 진행중이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1심 무죄를 받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임성근 전 판사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되어 헌법재판소에서 절차가 진행중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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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의 혐의는 세 가지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2015년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K씨(가토 다쓰야) 재판에 개입한 사건 ▲민변 변호사들의 대한문 앞 집회 사건에서 이미 선고한 판결 이유를 수정⋅삭제하게 한 사건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원정도박죄 사건에서 이미 공판절차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약식사건을 재검토하여 약식명령을 발령하도록 한 사건이다.

대법원의 판단에 이르는 동안 임 판사의 위 각 재판관여행위는 모두 사실로 인정되었다.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각 재판관여행위는 피고인의 지위 또는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하였고, 제2심 법원은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대법원도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였다.

제1심과 제2심⋅제3심의 판단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제1심의 경우 임 판사의 행위를 "위헌적 행위"로 보고 있지만, 제2심은 재판관여행위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심사하기 전에 미리 위헌으로 단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행위'라 완곡히 표현하고 있다. 재판관여행위가 부적절하지만 중대한 헌법위반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법관독립은 헌법적 가치이고, 법원 내부(특히 상급자)로부터의 독립도 포함한다. 재판관여행위는 그 자체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독립하여 심판"해야 하므로 모든 재판관여행위는 그것이 부적절한 관여행위인 이상 법관독립에 대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외부적인 압력이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상 독립의 내용이다. 재판에 부적절하게 관여했지만 법관독립이 유지되는 방법은 없다. 헌법적 관점에서 볼 때, 임 판사의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는 법관독립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라 평가된다.

문제는 이를 제재하는 길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탄핵, 징계, 형사처벌 등이다. 임 판사의 경우, 탄핵은 각하되었다. 탄핵심판 계속 중 임기 만료로 퇴임하여 심판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징계는 1건, 그것도 견책에 그쳤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 원정도박죄 사건에 관한 징계 처분이다. 가토 다쓰야 사건과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은 징계 시효가 도과하여 행정적 책임을 물을 길이 없었다.

여기 비평 대상인 대법원 판결은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묻는 방법에 해당한다. 우선 전제해야 하는 점은 직권남용죄가 정치적으로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직권남용죄는 형사법의 근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틀 내에서 해석되어 적용되어야 한다. 정치형법적으로 악용된다면 정치와 정책 영역에 대한 과도한 형사법적 개입을 정당화하여 정치적 남용의 결과에 이르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임 판사의 재판관여행위는 형사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대법원은 직권남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 직권남용 행위, ②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결과, ③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어떤 행위가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하고,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등의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그러한 결과가 직권남용행위로 인한 것이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임 판사의 재판관여행위가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일반적 직무권한' 외의 행위이므로 남용할 직권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직권남용이 있다하더라도 권리행사방해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임 판사의 재판관여행위와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아 직권남용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보강 논리도 덧붙였다.

이 대법원의 판단에서 주된 비평과 비판의 대상은 해당 재판관여행위가 사법행정권자에게 인정되는 일반적 직무권한(=직권)에 해당하지 않고, 남용할 직권이 없어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형식적 순환논리이다. 이에 따르면 이른바 '월권행위로 인한 직권남용행위'는 직권남용죄로 의율되지 않는다.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해야 한다. 어떠한 직무가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 내로 (확정적으로) 포섭되지 않으면,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인 남용행위일지언정 직권남용에서 말하는 직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어떠한 직무가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한 법령상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임 판사의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는 법관의 재판권에 관한 것인데, '헌법, 법원조직법, 관련 대법원 규칙과 예규를 종합하더라도' 임 판사에게 재판에 관여할 직무권한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승인한 이 트릭에 가까운 논리에 따르면,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사법행정권자인 임 판사에게 있음을 법적 근거를 들어 주장해야 직권남용으로 인정될 수 있다. 검찰과 일부 하급심이 인정한 '특정 사건 재판사무의 핵심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 같은 권한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재판에 관여할 권한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이러한 엄격한 법리 구성은 종래 대법원의 직권남용죄 성립의 법리와 차별점을 갖는다. "남용에 해당하는가의 판단 기준은 구체적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그 목적, 그것이 행하여진 상황에서 볼 때의 필요성⋅상당성 여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의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일반적 직무권한(즉 직권)의 존부를 확인하여 직권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대법원의 입장은 종래 직권의 남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던 대법원의 법리를 수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종래 직무권한을 넘어선 경우에도 종합적 판단을 통해 직권남용죄를 인정해 왔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사에 대한 권한만이 있는 시청 자치행정국이 승진 및 감사를 운운하며 특정인에 대한 건축허가를 요구한 경우(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도2899 판결), 법무병과 장병에 대한 인사추천 권한만 있는 해군본부 법무실장이 상급기관인 국방부 검찰단 소속 수사관에 대하여 인사추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하여 그에게 수사상 기밀의 보고를 요구한 경우(대법원 2011. 7. 28. 선고 2011도1739 판결) 등에도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인정한 바 있다.

'남용'의 사전적 의미가 '어떤 권한이나 권리를 주어진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넘어서 함부로 사용함'이라는 점을 들어, 부여된 권한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충분히 남용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스럽다(김성돈, [판결비평 사법농단 특집①] '사법농단과 직권남용, 다시금 시험대에 오른 법관의 독립성' 참조). 경찰이 신문과정에서 피의자를 고문했다면, (헌법이 금지하는) 고문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피의자신문권이 남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대법원은 직권없이 남용없다는 단순 논리에 갇혀 어색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임 판사의 행위는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에 해당하지만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무죄라는 결론은 차라리 국어적 위반처럼 들리기도 한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위헌적이고 부당하며 부적절했던 재판관여행위는 법관 탄핵사건에 헌법적 판단을 회피하고(각하), 행정적 책임을 건너뛰어(견책), 형사적 책임도 부인되는(무죄) 아슬아슬한 경로를 밟아, 합법적으로 법관독립을 침해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태그:#참여연대, #판결비평, #김명수대법원, #사법농단, #임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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