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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산 동굴에서 수도원이 시작되다
 
아자트 계곡과 게하르트 수도원이 있는 바위산
 아자트 계곡과 게하르트 수도원이 있는 바위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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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하르트 수도원(Geghardavank)은 가르니 신전에서 아자트강을 땅을 따라 7㎞쯤 올라가면 나타난다. 거대한 바위산 암벽에 동굴을 뚫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처음 이름은 동굴을 뜻하는 아이리 수도원(Ayrivank)이었다. 그리고 예수를 찌른 창을 가지고 와 이곳에 보관하면서 창을 뜻하는 게하르트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창에 대한 기록은 1250년경부터 나오는데, 아이리 수도원의 성직자이자 역사가인 므히타르(Mkhitar)가 대표적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창은 사도 타데우스에 의해 이곳에 전해졌다고 한다. 아이리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성 그리고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였던 이곳을 기독교 교회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하르트 수도원 조감도
 게하르트 수도원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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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게하르트 수도원에는 교회, 수도원, 순례자를 위한 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번성하기 시작한 8세기부터 탄압을 받았고, 923년 아르메니아 지역 통치자인 알 나스르(Al Nasr)에 의해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건물은 물론이고 성경과 필사본 등 중요한 서적이 불태워졌다.

그 후 200년이 지난 1160년대 수도원 복원 움직임이 있었고, 타마르 여왕 때 재건이 시작되어 1215년 중심 건물인 카토히케(Katoghikeh)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3세기 후반 프로시(Prosh Khaghbakian)가 이 지역 영주로 있을 때 경제적인 지원을 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당시에 7개의 교회 건물에 40개의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시 가문 문장에 나오는 동물 부조
 프로시 가문 문장에 나오는 동물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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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년 프로시가 죽었고, 그의 무덤이 카토히케 교회 북쪽 경당 지하에 마련되었다. 이때 프로시 가문의 문장(Arms)이 벽의 상단에 새겨졌다. 조각에는 네 가지 동물이 나온다. 가장 위쪽에 뿔을 가진 숫양(ram)이 고리를 입에 물고 두 마리 사자를 조종하고 있다.

두 마리 사자는 목에 줄이 매인 채 숫양의 조종을 받고 있다. 고리와 줄 아래 두 마리 사자 사이에는 독수리가 반쯤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한다. 독수리는 두 발톱으로 어린 양(lamb)을 잡고 있다. 부조로 된 이 문장의 해석이 게르하르트 수도원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상단의 숫양은 죽은 자들을 관장하는 하늘나라의 사자다. 이 저승사자는 낮과 밤이라는 두 마리 사자를 조종하면서 세월을 관장한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주님의 어린 양인 우리 인간은 이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저승사자의 대리인으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이들 모두 얼굴이 정면을 향하는데, 어린 양만 측면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동물의 표정이 모두 어둡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수도원 교회 들여다보기
 
바위벽에 연결해 만든 게하르트 수도원 교회
 바위벽에 연결해 만든 게하르트 수도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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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으로 올라가 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성모동굴교회다. 그러나 암벽 위에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길이 오른쪽으로 꺾이며 아치형 문을 통해 수도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오른쪽으로 식당 성직자관 숙소 기념품점이 있다. 그리고 숙소 북쪽으로 수도원의 중심건물인 교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모두 6개로 이루어져 있다. 앞쪽에 카토히케교회 전실과 본실이 있다. 그 북쪽으로 아바잔교회, 프로시 경당, 성모교회가 나란히 있다. 이들은 카토히케교회 전실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카토히케교회 전실은 예배자들의 기도공간이자 성직자의 설교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전실의 동쪽에는 본실인 성모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성모교회 반원형 제대 벽면에는 천사들의 축복을 받는 성모자상이 그려져 있다. 성모자 양쪽에는 세례 요한과 성 그리고르로 보이는 인물이 성모자를 축복한다.

이 성화 양쪽 벽면 아래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승천하는 예수상이 그려져 있다. 돔형 천정에 구멍이 있어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지만 전체적으로 교회 내부가 어두운 편이다. 교회 벽과 기둥에는 12~13세기 만들어진 조각과 장식으로 가득하다. 십자가는 아르메니아식 하츠카르다.
 
성모교회로 들어가는 통로문 위 조각: 왼쪽에 성직자 오른쪽에 사이렌 조각이 보인다.
 성모교회로 들어가는 통로문 위 조각: 왼쪽에 성직자 오른쪽에 사이렌 조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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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히케 교회 전실에서 북쪽 왼쪽으로 아바잔(Avazan)교회가 있고, 오른쪽으로 프로시 경당 겸 묘지가 있다. 아바잔교회는 바닥으로 샘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는 건축가 갈작(Galdzak)이 40년 동안 이 동굴수도원을 지었다는 명문이 있다고 한다. 아바잔교회 오른쪽 프로시 경당은 현재의 모습으로 수도원을 완성하도록 지원한 프로시에게 바쳐졌다.

그래서 경당 지하에는 그의 가족들이 묻혀 있다. 벽에는 사후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물 부조가 새겨져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프로시 가문의 문장이다. 프로시 경당에서 오른쪽으로 난 통로(문)로 들어가면 성모교회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통로 위 양쪽으로 특별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왼쪽 문 위에는 수염을 기른 노인 둘이 서 있다. 치마 형태의 긴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 뒤로는 두광이 표현되어 있다. 고위직 수도자 또는 성인으로 보인다.

오른쪽 문 위에는 왕관을 쓴 여인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사이렌(sirens)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이들은 왕자의 가족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들이 프로시 가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경당에도 벽에는 수많은 하츠카르가 새겨져 있다.
 
성모자상
 성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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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교회 안에서도 하츠카르와 인물과 동식물 벽장식을 만날 수 있다. 인물로는 창을 든 전사들이 보인다. 전사 중 하나는 뿔피리를 부는 모습이다. 제단 양쪽 벽에는 콧수염을 기른 인물상과 수염이 길고 커다란 뿔을 가진 염소상이 새겨져 있다.

제단에는 성모가 예수를 안고 정면을 응시하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천정의 돔으로부터 빛이 들어오고 돔 벽 상단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12개 부조되어 있다. 하단에는 아치형의 문이 12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12개는 12사도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성가대실에서 울려퍼진 할렐루야   이들 교회를 보고 나서, 교회 밖으로 이어진 계단을 통해 2층 성가대실로 올라갈 수 있다. 이곳은 성가대실 겸 묘지로 자마툰(zhamatun)이라 불린다. 이곳에 프로시가문의 왕자들 유해가 묻혀 있다고 한다. 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288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성가대실이기 때문에 음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 한가운데 팔각형 꽃잎을 감싼 원형 조각이 있다. 이곳에서 소리를 내면 돔과 벽에 소리가 울려 증폭된다. 그러므로 여러 명이 함께 성가를 부르면 그 소리가 더욱 웅장하게 들린다. 우리 일행 중 여성 두 명이 이중창으로 할렐루야를 부른다. 그 소리가 울려 퍼져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가대의 노랫소리를 전하기 위해 남쪽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그러므로 2층에서 불리는 성가가 1층의 프로시 경당으로 흘러 내려간다. 성가를 잘 부르는 여성이 성가대에 참여할 수 있도록, 2층에 성가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는 여성이 성가대원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층에서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2층 성가대원 중에 여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구멍을 통해 1층 경당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성모동굴교회가 있는 바위벽
 성모동굴교회가 있는 바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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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자마툰을 나오면 앞으로 아자트 계곡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산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마치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시나이산처럼 느껴진다. 수도원 뒤쪽 산 역시 웅장하고 높다. 이런 자연환경을 보고 수도사들이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았고, 그것이 커다란 수도원 교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수도원 교회를 나오면서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을 떠나기 싫어서다. 이곳에 있던 예수의 가슴을 찌른 창이 에치미아진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나중에 그곳에 가서 보면 되겠다.

덧붙이는 글 | 게하르트 수도원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건축과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풍경 등에서 인간의 중요한 가치를 서로 주고받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셋 있다. 첫째가 열 번째 기사에서 소개한 하크파트와 사나힌 수도원이다. 둘째가 이번에 소개하는 게하르트 수도원과 아자트강 상류 계곡이다. 셋째가 앞으로 소개할 에치미아진 대성당과 즈바르노츠다.


태그:#게하르트수도원, #동굴교회, #아이리수도원, #카토히케교회, #성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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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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