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에 위치한 지하 경비원 휴게실. 이곳은 지하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의자 몇 개가 놓여진 휴게공간이 나온다. 왼쪽에는 세탁기가 놓여져 있다.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에 위치한 지하 경비원 휴게실. 이곳은 지하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의자 몇 개가 놓여진 휴게공간이 나온다. 왼쪽에는 세탁기가 놓여져 있다.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에 위치한 지하 경비원 휴게실. 이 공간에서 10여 명의 경비원들이 근무를 마치고 취침한다.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에 위치한 지하 경비원 휴게실. 이 공간에서 10여 명의 경비원들이 근무를 마치고 취침한다.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전후로 바뀐 게 없나요?"
"잠자는 휴게공간, 저거 올해 4월에 생긴 거야. 거기에 경비원들 덮으라고 (8월) 30일날 이불 세트 보낸 거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지난 8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홍아무개씨. 그는 올 4월 새로 생겼다는 경비원 휴게시설을 보여주겠다며 아파트 지하로 기자를 안내했다. 휴게시설에 들어서자 지하 특유의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상 화단 인근에 창문이 설치돼 있었지만 굳게 닫혀 환기가 되지 않았다. 휴게실 천장에는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올해 8월 18일 모든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됐다. 이곳 아파트도 올 4월 지하 휴게실을 개조해 취침 공간 등 휴게시설을 만들었다. 5년차 경비원인 홍씨는 "산안법이 적용되자 아파트에서 좁은 취침공간을 만들고 이불 세트만 지급했다"며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취침시간인데 군대도 아니고 단칸방에 10여 명씩 모여서 자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판넬을 덧대 벽을 세운 수면실에는 에어컨과 환풍기가 달려있었지만 환기구가 지상으로 통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나머지 휴게공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소비품, 페인트통 등 아파트 관리에 필요한 물품들이 칫솔, 비누, 수건 등 경비원들의 생필품과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홍씨는 사복과 짐은 낡은 옷장에, 물과 간식은 오래 전 이사 간 주민이 버린 냉장고에 보관한다고 했다.

휴게실 한 편에 물이 고인 구멍엔 작은 양수기가 놓여 있었다. 홍씨는 "폭우가 내리면 물이 지하실로 내려와서 물을 빼내는 기계도 설치했다"며 "고인 물에서 모기가 나오고 쥐도 돌아다닌다"고 하소연했다. 경비원들은 이곳에서 식사하고,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근무 초소에서 취침이 가능한 휴게실로 가는 거리도 멀고, 환경도 열악해 그냥 초소에 이불을 펴고 잔다. 휴게실 환경을 개선하고 싶지만, 3개월마다 초단기 계약을 하기 때문에 쓴소리도 못하고 있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집에 가면 다 갖추고 사는데 여기만 오면 천대받는 거잖아요."
 
경비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각종 취사도구를 사용해 식사를 해결하는 공간.
 경비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각종 취사도구를 사용해 식사를 해결하는 공간.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폭우가 오면 자주 침수돼 물이 모이는 구멍을 뚫고 물을 빼내는 기계를 설치했다.
▲ 강남 아파트 경비원 지하 휴게실 폭우가 오면 자주 침수돼 물이 모이는 구멍을 뚫고 물을 빼내는 기계를 설치했다.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공문만 보내는 노동부... 현장 의견 청취해야"

2021년 8월 17일 산안법의 '제128조의 2(휴게시설의 설치)'가 신설되며 사업장 내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2019년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창문·에어컨 없는 1평 남짓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또 다른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과로사하자 법이 개정됐다.

당초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해당하던 이 법은 올해 8월 18일부터 ▲ 상시근로자 20명 이상의 사업장 ▲ 상시근로자가 10명 이상 20명 미만이지만 7대 취약직종(전화상담원·돌봄종사원·배달원·텔레마케터·청소원·미화원·아파트 및 건물 경비원) 근로자가 2명 이상인 사업장 ▲ 전체 공사 금액 20억 원 이상의 건설업 공사현장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앞서 아파트 경비원 휴게실처럼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발표한 '대학교·아파트 휴게시설 설치 의무 이행 점검 결과'에 따르면, 279개 사업장 중 124개소(44.4%)에서 산안법 휴게시설 설치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12개 사업장엔 휴게실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관리기준 위반으로 적발된 122개 사업장에선 크기·온도·환기 조치 등 설치기준 위반이 135건(51.7%), 관리 담당자 지정 등 관리기준 위반이 126건(48.3%)에 달했다.

현태봉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일반지부 경비관리지회 사무장은 "(대전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아파트 경비원 휴게시설 마련 및 정비에 뚜렷한 변화는 없다"며 "노동부나 지자체에서는 법 개정 후 별도 안내를 하고 있지만, 제가 만나 본 관리사무소장님들은 없는 시설물을 만들고 입주민대표회의를 설득하는 걸 어려워하신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6년째 경비원 일을 하는 현 사무장은 "아파트의 경우 장기수선 충당금과 같은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마련해야 하는 구조라 '갑'인 입주민대표회의 동의가 결정적"이라며 "노동부는 (휴게실 마련 및 환경개선을 위한 협조 요청) 공문만 보낼 게 아니라 법적 의무사항을 입주민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외에도 다른 직종 역시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에서 2년째 조리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 6명과 함께 휴게실을 쓰는데 양반다리 자세로 앉으면 서로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비좁다"며 "무거운 조리기구를 옮기고 드는 중노동이라 휴식시간에라도 눕고 싶다. 계속 앉아서 쉬다 보니 허리에도 부담되는 상태"라고 전했다.

"7대 취약직종이라도 집중 관리 필요"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 노무사는 "휴게실 설치는 반발이 심한 데다 강제성 없는 유예기간을 두어 준비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면서 "휴게실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 1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실제 부과되는 금액이 이보다 낮아 사용주들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낙 현장이 방대하고 정부가 모든 비용을 지원할 수 없어 실효적 행정을 하기 어렵지만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7대 취약직종 사업장이라도 집중 관리해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말까지 특별지도기간을 운영하며 위반사항 시정 중심의 현장 지도점검을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올해 2월부터 소규모 사업장 휴게실 환경개선을 위한 설치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8월 30일 오전 방문한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 지하 경비원 휴게실에 놓인 식탁. 여기서 경비원은 밥을 먹기도 한다.
 8월 30일 오전 방문한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 지하 경비원 휴게실에 놓인 식탁. 여기서 경비원은 밥을 먹기도 한다.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8월 30일 오전 방문한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 지하 경비원 휴게실 내 취침 공간 바로 앞 풍경. 아파트 관리용품이 배치돼 있다.
 8월 30일 오전 방문한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 지하 경비원 휴게실 내 취침 공간 바로 앞 풍경. 아파트 관리용품이 배치돼 있다.
ⓒ 김화빈

관련사진보기

 
 

태그:#아파트경비원, #휴게실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