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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
 독립유공자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
ⓒ (사)헐버트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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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평생 헐버트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의 김동진 회장이 2010년에 펴낸 책 제목이다. 2013년에 헐버트 선생 어린이용 전기를 최초로 쓴 필자(한글을 지킨 사람들/아이세움)는 헐버트를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지난 8월 5일은 헐버트 74주기였고, 오는 8월 31일 오전 11시 추모식이 그가 안장돼 있는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마포구 양화진길 46)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린다.

헐버트는 1886년 23세 나이로 한국에 온 이후 1949년 86세로 한국에서 서거할 때까지 한국을 위해서 모든 삶을 바쳤다. 1889년에는 한글의 과학성과 한국말의 우수성을 해외에 최초로 알리고 1891년에는 최초 한글 전용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낸 교육자로서 한국문화, 역사에 관해 깊이 연구한 학자요, 목회자요, 한국독립운동가다. 그의 업적을 보면 현대 한국인으로 그 공적의 혜택을 누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은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인 헐버트 선생에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건국공로훈장과 금관문화훈장 두 훈장을 수여했지만, 이를 잘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 안타깝다.

이번 추모식에는 <눈으로 보는 헐버트(Homer B. Hulbert)의 50년 한국 독립운동>이 발간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인 중에도 희귀한 사례인 헐버트의 50년 독립운동을 화보로 정리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고종 황제가 워싱턴에 있는 헐버트 대미 특사에게 을사늑약 직후인 1905년 12월 "나는 을사늑약에 승인하지 않았으니 조약은 무효다"라고 전보를 쳤으며, 그 전보를 미국 국무부에 전달하고 <뉴욕타임스>를 통해 국제사회에 폭로한 내용 전말이,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본과 함께 공개된다.

김동진 회장은 필자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고종이 을사늑약을 최초로 부인한 시점을 1906년 영국의 스토리 기자에게 준 밀서로 알고 있으나 앞으로 이는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31일 추모대회는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TgUpM73o6dg)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추모식에서 발표될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전문] 고종의 주권수호 외교 역사 다시 써야 한다!

불멸의 민족 은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 74주기 추모대회를 맞아 본인은 고종 황제의 을사늑약 당시 주권수호 외교 역사를 다시 쓸 것을 호소한다.

고종 황제가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을 최초로 부인한 외교 행위에 대해 지금 학계에서는 1906년 1월 고종의 밀서가 영국 <트리뷴(The Tribune)>의 스토리(Douglas Story) 기자에게 전달한 시점을 최초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그보다 먼저 1905년 12월에 고종 황제가 헐버트를 통해 미국에게 을사늑약을 부인한 사실이 있었음을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헐버트는 일본의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대미특사로 임명되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고자 1905년 10월 21일 서울 출발하여 1905년 11월 17일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였다. 헐버트가 서울을 떠나자 일본은 헐버트의 미국행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판단 아래 11월 17일 서울에서 긴박하게 총칼의 위협 아래 을사늑약을 해치웠다.

그러자 고종은 중국 지푸(오늘날 옌타이)에 사람을 보내 헐버트에게 전보를 쳐 을사늑약이 강박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무효라고 선언했다. 헐버트는 이 전보를 1905년 12월 11일에 받아 12월 14일 공식 서면으로 전보 내용을 미국 국무부에 전달하였으며, 이 서면은 미국 국무부 차관의 서명이 담긴 채 현재 미국 정부에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는 1994년에 이 서면의 사본을 최초로 공개한 바 있다.

본인은 헐버트를 연구하며 헐버트가 미국 국무부에 전달한 전보 내용 외에 헐버트의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12월 13일, 14일 자 회견 기사를 발굴하였다. 헐버트는 미국 정부가 고종의 을사늑약 무효화 선언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자 <뉴욕타임스>를 통해 전보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905년 12월 13일 자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Korea Repudiates Treat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종이 을사늑약을 부인하였음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날인 12월 14일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Appeals to the Public for Emperor of Kora)>라는 기사에서 고종이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음을 전하며, 헐버트의 일본의 불법성 폭로 발언을 소개했다. 이 두 기사에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을 총체적으로 부인하여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알렸음이 확인된 것이다. 을사늑약 후 한 달이 안 된 시점이다.

이에 대해 본인은 지난 2020년 을사늑약 115주년을 맞아 언론을 통해 <뉴욕타임스> 12월 13일, 14일 자 영문 원문을 공개하면서 고종의 을사늑약 부인 외교 행위와 헐버트의 특사 역할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학계는 아직도 1905년 12월의 고종의 주권수호 외교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인은 오늘 <뉴욕타임스> 12월 13일, 14일 자 기사 번역문을 최초로 공개하며 다시 한번 고종 황제의 주권수호 외교와 헐버트의 눈물 어린 특사 역할이 재조명되기를 바란다.
 
2023년 8월 31일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태그:#헐버트, #독립유공자, #헐버트기념사업회, #김동진,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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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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