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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와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철도파업과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라는 기획연재(6회)를 시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철도가 왜 필요한지, 철도 민영화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9월 23일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진행될 기후정의행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기자말]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승객들이 오가고 있다.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승객들이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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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을 위해 열차를 기다린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인천에서 서울로 근 20년째 철도를 이용해 왔다. 아침 7시 반, 한 량에 300~400명이 탑승한 지옥철부터 같은 칸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없을 때도 있는 한산한 구로행 막차까지, 객실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풍경이 기억에 있다.

매일같이 이용하던 이 열차가 단지 내 개인의 삶과 이 도시의 현재를 넘는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10여년 전이었을 것이다.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를 모든 공공기관에서 내세우던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에서 부산을 승용차나 항공기 대신 KTX로 오갔을 때 기대되는 탄소 저감 효과를 소나무로 환산한 값이 열차 승차권에 적혀 나왔고, 막 데뷔한 ITX-청춘 열차를 승용차 대신 타고 주말에 춘천으로 놀러가 보라는 광고 등등이 철도역 곳곳에 게시되어 있었다. <자동차 권하는 사회>(양서각, 2008) 같은 책도 출간되어 구해 보았던 기억이다.

물론 이후의 10년은 암흑기(?) 비슷한 것이었다. 철도가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교통망이라는 이야기는 2013년경 부터는 일부 학계 문헌 이외에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1) 여전히 철도의 힘을 미심쩍게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도 이 의심 덕이었을까? 무관심, 또는 의심으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침묵은 내 책이 나올 때 까지는 깨지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기억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던 바로 그 날(2020년 7월 7일) 세상에 내놓았던 책(<거대도시 서울 철도>, 워크룸프레스)덕에, 이렇게 기후 위기와 철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마이크를 받게 되어 늘 책임을 느낀다.

기후 위기 시대, 팽창하는 교통 배출량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이 10여년 동안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본다. 이 시기, 인류는 그 누구도 기후 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명박조차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말을 만들어야 하지 않았던가? 덕분인지,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 분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참담할 정도로 느리긴 하지만….

그런데 교통은 상황이 극히 좋지 않다. 코로나19 전까지 저가항공은 사람들의 여행을 부추겼다. 고속도로는 발전 그 자체로 취급되며 세계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어디서든, 덩치 크고 무거운 SUV의 비중이 올라간다. 크고 무거운 차가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대안이라는 전기차 분야에서는 올해가 대형 전기 SUV 데뷔의 원년이라는 절망적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도 수많은 대도시의 교외에서는 자동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스프롤 지역이 난개발되며 이렇게 커진 자동차의 수요를 늘린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다른 분야와 역행하고 있는 교통 분야 배출량이다. OECD 국가의 경우, 2005년 이후 다른 대부분 분야의 배출량이 줄었다. 그러나 교통은 배출량이 그대로이다. 비 OECD 국가의 경우 석탄화력으로 인해 에너지 변환 분야의 배출 증가세가 교통만큼이나 높긴 하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의 상황을 살펴보면 결국 현재의 배출 증가세가 가장 맹렬한 것은 교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유럽은 2019년에 이미 교통이 가장 중요한 배출원이 된 상태이다.

 
저자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민음사, 2022) 33쪽에서 전제.  출처: IEA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Energy. https://www.iea.org/data-and-statistics/data-product/co2-emissions-from-fuel-combustion
▲ 2005년 대비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 OECD 국가와 비 OECD 국가 저자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민음사, 2022) 33쪽에서 전제. 출처: IEA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Energy. https://www.iea.org/data-and-statistics/data-product/co2-emissions-from-fuel-combustion
ⓒ I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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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과 같은 출처
▲ 2005년 대비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 중국과 인도 위 그림과 같은 출처
ⓒ I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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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우리는 이동을 줄이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입말로 터져 나오는 더위 속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자가용 승용차를, 항공기를 이용해 이동하려 한다.

왜 이렇게 우리는 이동을 포기할 수 없을까? 나는 이 시대의 인류는 이동에 대해 한 가지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동은 선이다. 활발한 이동은, 좋은 삶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생각해 보면 묘한 관점이다. 19세기, 전근대 농민들은 마을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이건 단순히 기술적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회를 안정시키려면 '소국과민', 즉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입장도 분명 존재했으니. 기술이 손쉬운 수단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이 기술과 함께 섞여 살아가기로 택한 것은 사람들이다.

이동이 이토록 높은 가치로 취급받는 사회로 바뀌어 오면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택한 것일까? 도시가 주는 기회. 도시의 자유는 인간을 해방시킨다. 도시는 개인에게 혼란스러울 정도로 방대한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 속에서 무엇을 택하는지에 따라 각 개인의 삶은 변화한다. 전근대의 모든 인습은 이 인습을 피해 도시의 자유를 택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무너져 간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한 실질적인 기반은 결국 이동력이었고, 인류는 아마도 이 힘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왜 철도인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역에서 승객들이 KTX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역에서 승객들이 KTX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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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속에서도 도시는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도시의 자유와 기회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누릴 수 있도록 이동력을 공급해 내야 한다. 최소한의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만 들여서, 이 이동력을 공급하는 길을 찾아내야만 기후 위기 시대의 도시에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이 미래에서 철도는 빼놓을 수 없는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앞서 KTX 승차권의 '소나무'를 언급했었다. 이동 거리당 탄소 배출량이 승용차·항공기보다 적다는 이유에서 만들어진 상징이다. 철도로 승용차나 항공기 통행을 실제로 흡수해 내면, 승용차·항공기와 철도 사이의 배출량 격차만큼 탄소 배출량이 감축된다. 바로 이 배출량을 식물로 환산한 것이 '소나무'의 정체다.

그렇지만 중요한 전제가 있다. 열차에 승객이 충분히 탑승하지 않는다면 결국 철도 역시 배출량을 충분히 감축할 수 없다. 한국철도의 실적으로 계산해 보니, 량당 6명 정도 탑승한 상태에서 운행하면 철도 역시 내연기관 승용차나 항공기의 인km당 배출량과 동일한 수준이 기록되었다.(2) 그보다 적은 사람이 타는 노선이라면 탄소 배출을 오히려 촉진한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1km를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탄소배출량은 철도가 도로보다 더 많기까지 했다. 역사를 지하에 넣어서 낮에도 조명이 필요하다거나, 너무 깊어져서 승강기를 가동해야 하면 전기를 더 많이 먹게 되기도 한다. 모두 철도의 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조건이다.  
 
가솔린 차량은 사실상 모두 승용차이므로 승용차를 대표한다. 계산 근거: 철도 - 철도통계연보, 2018. 가솔린 차량 -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밸런스표, 교통안전공단 주행거리조사
▲ 1량 또는 대별 km당 배출량 가솔린 차량은 사실상 모두 승용차이므로 승용차를 대표한다. 계산 근거: 철도 - 철도통계연보, 2018. 가솔린 차량 -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밸런스표, 교통안전공단 주행거리조사
ⓒ 전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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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차량의 탑승 인원은 1.5명으로 계산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탑승 인원 값은 이보다 낮으며 수도권은 1에 거의 근접한다
▲ 1인 km당 배출량 가솔린 차량의 탑승 인원은 1.5명으로 계산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탑승 인원 값은 이보다 낮으며 수도권은 1에 거의 근접한다
ⓒ 전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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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만 전할 수야 없다. 좋은 소식 역시 두 가지 있다. 한국철도의 평균 승객은 량당 6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열차 종류별로 다르지만, 30~50명/량 정도. 이렇게 되면 1인당 탄소 배출량은 1/5에서 1/10 사이다.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라면, 철도가 도시, 특히 도시의 핵심부와 그 어느 교통수단보다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이다. 도시철도나 광역철도 역보다 좋은 중심지는 없다. 실제 순항속도는 느린 고속철도가 항공기와 경쟁할 수 있는 것도 역이 도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역 접근성에 기반해 도심을 만드는 건 분명 지금도 통하는 이야기다. 이 도심을 활용하기 위한 통행이 100% 철도, 대중교통, 자전거, 그리고 역 주변에서의 걷기로 이뤄진다고 해보자. 이 지역의 이동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은 최대 90%까지 줄어들 것이다. 전기 에너지의 원천이 지금과 동일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재생 에너지를 쓰더라도 이로 인한 갈등과 토지 소모 역시 비슷하게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경우이다. 실제로 탄소중립을 위해 가장 높은 철도수송분담률을 제안한 교통연구원의 한 연구에서도 철도수송분담률 목표치는 47.5%였다.(3) 물론 이는 무시무시한 수치이지만, 뒤집어 보면 결국 자동차가 절반은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값은 철도가 기후 위기 시대의 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값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철도수송분담률은 13%(4)이니... 철도 수송을 극적으로 늘리는 일은, 결국 이동과 도시를 포기할 수 없다면 필연에 가깝다.

한국 철도가 풀어야 할 문제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극적으로 철도 분담률을 높일 수 있을까? 그리고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국가의 역할이 제대로 서지 않고서는, 그리고 이 국가의 일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시민과 사회의 눈 없이는 한국철도의 미래는 어둡다고 생각한다.

철도사에서 출발해 보자. '마이카 시대'가 한국의 미래로 설정된 이래, 철도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고속도로로 교통의 축이 바뀐 1970년대 이래, 지금껏 근 50년 내내 적자를 본 한국철도. 자체 수익으로 영업비용도 낼 수 없었다는 뜻이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더더욱 엄두도 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뒤집어 지금처럼 철도에 다시 숨통을 불어넣었던 것은 결국 국가였다. 1990년대 이후 철도 투자는 점차 늘었고, 그 대부분은 결국 국가가 재정으로 책임졌다. 고속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철도를 버리기보다는 계속 활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가의 판단이었고, 이 판단은 국가의 재정 역량에 기반해 있었다.

이런 일들은 기후 위기와는 별 관련 없이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공간의 관리자로서 국가의 역할은 대체할 수 없다. 자동차 교통을 관리하려면 공간 활용 방법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도역 주변의 지구단위 개발은 기본이다. 철도 축과 도시 축을 일치시켜 난개발을 억제하지 않으면, 자동차 없이는 도시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재분배부터 건강 증진까지, 국가는 철도망을 축으로 하는 대중교통망을 활용해 다른 많은 역할도 해야 한다. 교통과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는 한, 국가는 철도를 활용해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내야만 한다.

현재 국가가 철도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른 분야보다도 철도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생각 역시 굳건한 것 같다. 그러나 그 투자의 목표 자체는 논란 속에 있다. 이 투자는, 한국철도를 기후 위기 때문에 위태롭고 소외될 수 있는 사람까지도 모두 태울 수 있는 공공성의 열차가 달릴 길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경부선 등 수익 노선과 서울 중심의 망이 되어 경영상 효율이 부족한 부분은 점차 버려 나가는 비정한 길로 만들고 말 것인가? 의구심 어린 눈으로 철도와 정부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역에서 승객들이 KTX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역에서 승객들이 KTX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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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riss에 "철도"와 "탄소"를 함께 검색해 보면, 2014년부터 2020년 사이에는 대부분 1년에 한자리 숫자의 논문만 발표되었다. 20편 이상의 논문이 나온 건 2010~2012년, 2022년이 전부이다.
[2] 전비는 1Kwh당 0.6 환산차량km 수준이었다. 전비가 1kwh당 6km인 전기차보다 열차가 효율적이려면 량당 10명 이상 탑승해야 하는 셈이다. 한편 고속열차보다 광역 전동차의 주행거리당 kwh가 더 높은 편이었는데, 최고속도 자체보다는 가감속이 잦을수록 에너지 소비가 커진다고 보면 매끄럽다.
[3] 도시철도를 합친 값이다. 김정인ㆍ이호ㆍ진우정, 『탄소중립과 모빌리티 전환 대비 철도교통 역할과 발전전략』, 한국교통연구원, 2022: 77쪽.
[4] 역시 도시철도를 합친 값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교통·철학연구자이자 작가입니다.


태그:#철도노조, #923기후정의행진, #공공철도, #기후정의, #철도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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