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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청탁, 금품 등 수수 근절을 통해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법."

청탁금지법의 정의다. 국민권익위원회 누리집에 똑 부러지게 명토 박아놨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약칭으로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으로도 불린다.

청탁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나쁘지 않다. 세상살이가 서로 돕고 살피고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형편에 따라 부탁도 할 수 있고, 마지 못해 들어주기도 하고 그러는 게 싸잡아 비난받을 건 아니다. 그렇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사는 데만 쓰이면 오죽 좋을까마는 청탁이란 행위가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도구로 작동하는 게 문제가 된다.

몇 년 전, 남자 변호사가 여자 검사에게 벤츠 차를 리스해 주고 샤넬 핸드백을 사주었다. 그 둘이 사랑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관심 없다. 사건을 두고 둘 사이에 거래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금품이 오간 것도 사실이다. 공무원인 검사가 금품을 받은 건 밝혔는데 연인 사이에 주고받은 '사랑의 증표'라 알선수재죄가 성립이 안 된다는 법 해석으로 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2016년 7월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직원이 청탁금지법시행준비단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4개 쟁점에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6년 7월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직원이 청탁금지법시행준비단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4개 쟁점에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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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김영란법이 만들어졌다. 2012년에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후 2년 반이라는 오랜 논의를 거쳐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 재석 의원 247명 중 228명의 찬성으로 통과해 2016년 9월 28일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 법이 시행된 지는 아직 7년도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법은 여러 차례 뜯기고 고쳐졌다. 법을 고친 이들은 농민도 아니고, 소상공인도 아니고, 서민들도 아니었다. 바로 법을 만든 이들이었다. 제 손으로 만들고 제 손으로 뜯어고치는 심보를 도무지 모르겠으나 그때마다 내세우는 이유는 있었으니, 경기 침체를 막고 내수 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때마다 농민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는 애틋한 국민 사랑이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됐다.

한 카드사가 청탁금지법을 적용한 100일간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했더니 꽃가게 매출과 고급 음식점, 유흥업소의 매출은 줄었지만, 서민들이 찾는 일반 음식점은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카드 사용액 전체로 따지면 공연장과 술집 말고는 모두 매출액이 증가했다는 거다. 이 법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힘들어한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관련 업계의 어려움은 관련 산업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난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추석명절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 30만원 상향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난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추석명절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 30만원 상향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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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억측을 잠재울 이유는 차고 넘친다. 경찰청은 2022년 9월 13일부터 200일 동안 불법 금품수수 등 공직자 부패범죄 단속을 했다. 단속된 전·현직 공직자 355명 중 자기 직무 관련 금품수수가 30명, 알선 명목 금품 수수가 23명이었다. 드러난 게 이 정도라는 것이지 이것이 공직자 비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검은돈이 사라지고 사회가 투명해질 때 얻게 될 이익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게 됨은 물론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1일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설날·추석에 공직자들이 받을 수 있는 농⋅수산물 선물의 상한 가액을 현행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높이고, 선물의 범위에 공연관람권 등 온라인⋅모바일 상품권을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권익위는 이 시행령을 개정하는 이유로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집중호우, 태풍, 가뭄 등 자연재해와 고물가, 수요급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 문화⋅예술계 등 지원을 위해"라고 밝혔다.

관련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근본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워 해결해야지 선물 액수를 높일 생각은 어느 머리에서 나오는 건지 정말이지 궁금하다.

30만원짜리 선물을... 대가 바라지 않는, 그냥 선물이라고 할 수 있나?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한우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 21일 설·추석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을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한우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 21일 설·추석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을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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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청탁과 그에 따른 '뇌물'이 없으면 경제가 위축되고 내수가 어려워지는 나라란 말인가? 이해당사자 간에 선물 세트가 오가고 그들이 고급 음식점에서 같이 밥을 먹고 뒷돈이 오가고 향응과 접대가 횡행해야 경제가 살아나는 후진 나라란 말인가? 그런 비리로 축난 호주머니들은 또 어떤 경로를 거치든 결국 나랏돈으로 채워지게 될 텐데 그걸 알고도 이러는 걸까?

명절이면 차에다 선물 보따리를 싣고 '갑'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을'의 처지에서 선물 가액의 상향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선물 상한액이 올랐으니 받는 자들은 30만 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기대할 텐데, 그 속셈을 뻔히 알면서 선물 상자의 크기를 줄일 순 없을 게 아닌가.

법은 대의와 명분에 충실해야 한다. 그 적용은 엄중해야 한다. 접대와 선물이 오가는 행위에 대해 이렇듯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 부패행위에 대한 국민 모두의 저항감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주문처럼 되뇔 경제살리기란 구호가 법을 고무줄로 만들어선 안 된다. 개인도 아닌 국가라면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세우고 지켜야 하니 않겠나. 국가가 좀스러워지면 국민이 슬퍼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광장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청탁금지법, #김영란법, #월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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