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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31일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카프카스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기자말]
쉬르반샤 궁전 너머로 보이는 불꽃 타워
▲ 불꽃 타워 쉬르반샤 궁전 너머로 보이는 불꽃 타워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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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반샤궁을 나오면서 보니 궁전 모스크 너머로 바쿠의 상징 불꽃 타워(Flame towers)가 보인다. 타워가 세 개인데 이곳에서는 두 개만 보인다. 우리는 궁궐을 나와 알리아가 바히드(Aliaga Vahid: 1895~1965) 정원을 지난다. 그곳에 특이한 동상이 하나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현대시인 바히드의 흉상이다.

나무줄기처럼 생명력 있는 바히드 시인

땅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나무줄기 모양으로 어깨와 목 그리고 얼굴을 만들었다. 이 동상이 만들어진 것은 1990년 3월이다. 가잘(ghazal)의 왕으로 불리는 아제르바이잔의 서정시인 바히드를 추모하기 위해 조각가인 라힙 하사노프(Rahib Hasanov)가 만들었다.

 
바히드 시인 흉상
▲ 알리아가 바히드 바히드 시인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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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얼굴의 옆면과 뒷면에 표현된 부조들이다. 바히드의 삶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귀 앞쪽에는 무감(mugham) 트리오의 모습이 보인다. 무감은 가잘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악단이다. 귀의 뒤쪽에는 바히드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의 뒤쪽에는 가잘을 낭송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히드의 결혼식 장면도 보인다. 바히드 흉상에 나무뿌리도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바히드가 죽었지만, 그의 시와 예술은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 앞에 표현된 무감 트리오 부조
▲ 무감 트리오 귀 앞에 표현된 무감 트리오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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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3m인 이 작품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들어졌다. 동상은 1990년 10월 아제르바이잔 국립교향악단 홀 인근에 세워졌고, 2008년에 현 장소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히드는 젊은 시절 진보적인 문인들과 교류하며 사회적 불평등, 폭력과 불공정, 미신과 편협함 등을 비판적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문학형식은 페르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대표적인 시 장르인 가잘을 택했다. 1917년에 러시아 10월 혁명이 발발하자 이를 적극 찬양했다. 바히드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 시절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가잘 시인이었다.

성스럽고 커다란 불 속에서 나타난 것
 
아제르바이잔 문화유산의 상징 메이든 타워
▲ 메이든 타워 아제르바이잔 문화유산의 상징 메이든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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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밖으로 나온 우리는 구도심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성벽 밖으로 말에게 물을 먹이던 수조를 볼 수 있다.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위해 돌출시킨 성벽을 볼 수도 있다. 하나의 돔과 하나의 미나렛으로 이루어진 주마(Juma) 모스크도 보았다. 인형극 공연을 위한 극장도 보인다.

이들을 보며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메이든 타워로 발길을 옮긴다. 이 탑은 역사와 전설이 뒤섞여 아제르바이잔 문화(유산)의 상징이 되었다. 그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지폐 마나트의 앞면에 그래픽으로 표현되어 있다.

메이든 타워는 쉬르반샤 궁궐이 지어질 때 성곽을 지키는 요새 겸 망루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칠팔 세기부터 메이든 타워 자리에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지하 15m까지 기초가 되어 있는데, 이것이 4~6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이러한 토대 위에 현재와 같은 모습의 건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천문대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타워는 지진에 대비한 내진설계도 보인다. 원통형의 중심탑을 지탱하는 측면의 지지탑을 만들었고, 바닥 내부에 나무로 들보를 만들어 충격을 완화했다고 한다.
 
메이든 타워 주변 발굴 유물
▲ 메이든 타워 메이든 타워 주변 발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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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든 타워에 얽힌 스토리는 조로아스터교가 지배하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성곽도시 바쿠에 탑으로 이루어진 불의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적들이 바쿠를 공격해 성곽을 포위하고 시민들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시민들이 이를 거부하자 적들은 성곽 공격을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성으로 연결되는 수로를 차단했고, 시민들은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조로아스터교 최고 성직자가 불의 탑에 올라가 아후라마즈다 신에게 바쿠와 시민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불의 사원 탑으로부터 성스럽고 커다란 불이 떨어졌고, 불 속에서 길고 붉은 머리를 한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났다고 한다. 군중들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머리를 가리는 투구를 쓰고 칼을 차고는, 적들이 자신의 머리를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녀는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이때 적장은 성의 최강자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기를 원한다. 성의 최강자가 이기면 적들은 물러가고, 적장이 이기면 백성들을 모두 노예로 삼기로 했다. 둘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메이든 타워와 작은 출입구
▲ 메이든 타워 메이든 타워와 작은 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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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처녀는 적장을 쓰러뜨리고 목에 칼을 들이댄다. 이때 적장은 자신을 이긴 영웅의 얼굴을 보고 싶으니 투구를 벗어달라고 말한다. 투구를 벗자 붉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적장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아름답고 용감한 여인이여. 나를 죽이지 마시오.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그녀는 적장을 죽이지 못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받아들인다. 바쿠에 평화가 돌아왔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불의 사원 탑을 처녀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금은 유치하고 한편 동화적이다. 그 때문인지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용감한 처녀를 빼버리기도 한다. 바쿠의 최고 성직자와 백성들이 몇일 동안 기도하자 아후라마즈다 신이 나타나 지진을 일으킨다. 적들 대부분은 죽거나 도망치게 되었다. 그 덕에 바쿠 시민들은 노예가 되지는 않았지만 메이든 타워의 불은 꺼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메이든 즉 처녀는, 그가 정복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해안 따라 만들어진 불바르 공원 
 
불바르 공원에서 바라 본 카스피해
▲ 불바르 공원 불바르 공원에서 바라 본 카스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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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든 타워를 보고 나면 길은 바닷가 쪽으로 이어진다. 이곳 해안을 따라 불바르공원(Baku boulevard)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1909년 조성되기 시작했고, 2015년 해안선을 따라 26㎞나 되는 좁고 긴 공원이 되었다.

공원 밖으로는 현대식 고층건물과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 놀이와 오락시설, 타워, 쇼핑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언덕 위로 세 개의 불꽃 타워를 볼 수 있다. 이 탑은 야간조명을 하면 더 멋있게 보인다. 공원에는 바오밥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곳에는 또한 아제르바이잔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무슬림 마고마예프(Muslim Magomayev: 1942~2008)의 동상이 있다. 그는 오페라 가수지만 팝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러시아의 프랑크 시나트라로 불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트홀과 아제르바이잔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정도였다.

그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도 공연했다. 그의 주된 활동무대는 러시아였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도 공연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공식활동을 중단했고, 2008년 모스크바에서 죽어 고향인 바쿠에 묻혔다. 동상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불꽃 타워 야경
▲ 불꽃 타워 불꽃 타워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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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메이든 타워, #알리아가 바히드, #불바르 공원, #불꽃 타워, #무슬림 마고마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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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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