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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통합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여기서 통합교육이란 특수교육 대상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한 반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체제를 말합니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받은 학생은 원반으로 배정을 받고, 비장애 학생들과 일정 시간동안 생활합니다. 장애 정도에 따라 통합 정도는 달라집니다. 현재 제가 담임을 하고 있는 반에는 원반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는 완전통합 학생이 있고, 특정 시간에는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원반에서 함께 생활하는 부분통합 학생이 존재합니다.

저는 15년의 교직 생활동안 통합교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통합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자녀가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초등대안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대안학교에서는 학교 구성원의 관계가 친밀하기 때문에 다른 부모와 아이를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 만남에서 다양한 아이들의 특성을 알게 되면서 '왜 다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In a Different Key: The Story of Autism>,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특수교사 교육을 말하다> 등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용어를 만났습니다.

자폐성 장애 옹호자인 주디 싱어가 처음으로 제안한 '신경다양성'이란 용어는 장애나 질병을 병리학적으로 보지 않고, 생물학적인 다양성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신경다양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뇌신경의 차이로 발생하는 다름을 결핍이 아닌 개인의 특성으로 인식합니다. 인간의 두뇌를 스펙트럼으로 생각하면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을 모범 학생, 보통 학생, 문제 학생 3부류로 나누는 경향이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업할 때는 주로 모범 학생과 눈을 맞추고, 상담할 때는 대부분 문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보통 학생들은 문제없이 잘 생활하기를 바랐습니다. 학생을 인간 그 자체로 보고, 개인을 이해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학생은 많고,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하다 생각하며 그 문제의 원인을 교육 시스템, 학교 상황 등으로 돌렸습니다.

신경다양성이라는 렌즈를 장착하니 학생이 다르게 보입니다. 단점보다는 강점을 먼저 찾고, 학생에게 맞게 교실 환경을 바꾸고, 제가 신경다양성을 적용하는 인적 자원이 되어서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교사는 단점을 지적하고, 학생은 못 하는 일을 노력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은 교사, 학생 서로 기분 좋아지게 합니다.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합니다. 신경다양성을 반영하여 교육하면 학생의 강점을 발휘하는 진로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경다양성을 교육에 반영하면 교실이 더 풍요로워질 거라 확신합니다.

장애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다양한 학생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시흥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에 근무하는 3년 동안, 1학년 교실에는 한글을 모르는 다문화 학생, 교사에게 상처 입은 학생,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조현병이 의심되는 학생을 만났을 때 경험이 가장 특별했습니다. 2022년 학년 부장 역할을 맡았는데, 동료 교사가 자기 반 한 학생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눴는데 이제까지 제가 만난 학생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를 이해하고 싶어 론 파워스가 쓴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와 E. 풀러 토리의 <조현병의 모든 것 Surviving Schizophrenia>을 읽었습니다. 미국 유명 작가인 론 파워스는 조현병에 걸린 두 아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버리고, "미친 사람에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현병에 걸린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조현병의 모든 것>을 읽으니 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시기별 증상, 행위별 적절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학생을 다시 만나니 그의 이야기 속에서 망상, 환각, 사고장애 등 책에서 봤던 특징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의 논리적 패턴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니 아이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학생을 만났을 때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공부를 하고 나니 정리가 되었습니다.

장애나 질병을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사회적 관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형성된 사회적 장벽을 당장 허물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걷지 못해 불편을 겪는 사람을 한 번 도와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같이 생활해야 하는 것까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10년이 넘는 장기간의 돌봄이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착한 마음은 일시적이지만 과학은 오래갑니다. 착한 마음은 '동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과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이 장애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수업 받는 교실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수업 받는 교실
ⓒ 박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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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아니라 '고민'할 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맹아학교를 설립한 로제타 홀은 의료선교사로 1891년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환자로 온 시각장애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 기름종이에 바늘로 점을 찍어 점자책을 만들었습니다. 근대 장애인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로제타는 장애인을 위한 학교 설립을 결심했습니다.

1900년 정진소학교가 설립되자 로제타는 그 학교 부설로 맹인 학급을 만들었습니다. 맹인 학생들은 낮에는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 점자 교육과 직업 교육을 받았습니다. 즉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교육시설은 통합교육 형태였습니다. 단순히 시설 조건 때문이 아니라 로제타가 통합교육에 대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쓴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항상 맹인 소녀들과 정안 소녀들을 함께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섞여 어울려 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 맹인을 위한 시설의 규모가 큰 이유는 맹인들이 오랫동안 사회에서 제외당하고 무시되어왔음에 의거한다. 박애주의자들은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은 특별 수용시설에서 맹인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맹인들이 필요로 하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며 맹인들과 일반 사람들에게 모두 손해되는 것이다. 비로 도처에서 특수교사가 지탱되고 있으나 특별 수용시설보다 특수교사가 비용이 적게 든다. 맹아들과 정안 아이들을 함께 접촉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허물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안 아이들은 맹아들의 약점을 접했을 때 친절을 베푸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 어느 쪽이 더 유익한 것이 되겠는가? 

우리나라 특수학급은 1971년 초등학교에 처음 만들어져, 1979년에 중학교, 1996년에 고등학교에 설치되었습니다. 2022년 현재 특수교육 대상자 10만 3695명 중 72.8%인 7만 5462명이 일반학교에 다닙니다(2022년 특수교육통계, 국립특수교육원). 특수학교보다 일반학교에서 훨씬 많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다니고 있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통합교육과 관련된 연구에서 통합교육 장애 요인에 대해 진로와 진학 위주의 교육체제, 비장애학생 위주의 수업, 학교 구성원의 적은 관심 등을 꼽습니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궁금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변하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것을 하려면 만나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직접적, 지속적으로 만나야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과 교사의 접촉면이 넓어져야 합니다. 많은 연구에서 통합교육을 위해 교사 연수가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연수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만남'입니다. 이 특별한 만남은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학생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의도를 가졌다기보다는 사람마다 다른 뇌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발달된 뇌과학 연구를 공부하면 이해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둘째, 아이들이 가진 강점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라고 여겨지는 행동 속에 감춰진 강점을 찾기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셋째,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많은 학생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학교에서 쉽지 않겠지만 '관계'로 풀어가면 답이 보입니다. 교사와 주변 학생들이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이해하면서 친해지고, 쉽게 해결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함께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통합교육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서 특수교육의 관점으로 교육을 재구조화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여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통합교육입니다. 통합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문제입니다.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당위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 가리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모두 배워야하는 것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입니다.

태그:#통합교육, #특수교육, #장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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