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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은 연령대에 따라 많고 다양한 고민을 갖고 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투입되는 현장에 대한 두려움부터, 퇴직을 앞두고 느끼는 증상이 직업병인가 싶은 불안함까지. 30~40대도 복합적이다. 상당수가 아이를, 부모님을 혹은 다른 존재를 돌보는 '돌봄'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의 문제가 된다. 한정된 시간 속, 직장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수록 그들의 신체, 정신적 어려움은 점점 더 다층적이게 된다.

비자발적 선택의 강요... 육아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
 
아기와 손.
 아기와 손.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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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돌봄이 있지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영유아 돌봄부터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성장하면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의 가치와 무게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졌다. 엄마의 육아에서 부모의 육아로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육아대디의 노력 또한 강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노력의 이행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많은 부모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엄마 못지않게, 아빠의 육아 휴직 사용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2022년 기준 3만7885명, 전체 사용자 중 남성이 28.9%). 하지만 이렇게 육아 휴직을 시행한 아빠들에 대해 '정말 용기 있는' '좋은 회사 다니는' 혹은 '일 욕심이 없거나' '승진의 욕심을 버린' 사람으로 평가되는 현실은 아빠들에게 너무 부담스럽다.

또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사업주는 노동자가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신 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하며, 그 기간 중 노동시간은 주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여야 한다)을 사용한 아빠는 2022년 기준 2001명뿐이다. 매일 출근하는 곳에서, 휴직이 아닌 단축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사회적 시선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육아는 부모가 같이하는 것이고 아빠가 적극 참여할수록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상적 가치를 논하는 매체들을 마주할 때 그리고 매일 워킹맘으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엄마들(혹은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 전업 엄마들)을 마주할 때, 많은 아빠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직장에서는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고 가정에서는 아빠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를 요구하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많은 직장 동료가 육아와 상관없이 본인의 일만 열심히 하며 성과를 내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많은 남성은 사회적 역할과 가정 내 역할 중 하나를 포기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정 내 역할을 먼저 축소한다. 이러한 비자발적 선택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고, 여기부터 다시 시작되는 정서적 부담은 맞벌이 부부 모두에게 부과된다.

사회에서 주소득원이 남성으로 인식되고 있고 육아 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분도 더 큰 상황은, 많은 맞벌이 가정에서도 주양육자 역할을 엄마가 수행하게 한다. 주양육자가 엄마라는 인식, 소득 차이를 고려했을 때 엄마가 양육 부담을 더 가지는 게 가정에 이득이 라는 현실은, 아빠가 주된 양육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줄인다. 결국 육아의 역할을 채우기 위한 무게는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지워진다.

이러한 상황은 부모들을 소위 '갈아 넣고', "둘은 못 낳겠다"라든가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울 것 같아 낳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미 그 길로 들어선 대다수의 주 양육자 맞벌이 엄마들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신체적·정서적 어려움을 끝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돌볼 수 있는 사회로, 적정 노동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절대적으로 긴 노동시간과 주양육자가 엄마라는 인식을 넘어, 잘 돌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절대적으로 긴 노동시간과 주양육자가 엄마라는 인식을 넘어, 잘 돌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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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유아 맞벌이 가정의 시간표는 정말 가가호호 다양하다. 가장 적절한 방법을 아직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연장 보육을 통해 저녁 6시 반까지 돌보고, 부모 중 한 사람은 정시에 퇴근해 아이를 하원하고 집에 와서 씻기고 먹이고, 잠깐 놀이하면서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하지만 이것이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당번인 부모는 조금이라도 늦은 퇴근을 할 수 없고, 돌발적인 교통 상황도 허락할 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는 날에는 상대 배우자가 하원이 가능한지,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할 수 있는지, 혹시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조율하는 정서적 긴장이 반복된다.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더더욱 긴 연장 보육 시간을 고민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적절한 것인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어린이집 정규보육 시간은 오후 4시에,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은 오후 1시면 끝난다. 나라에서 말하는 '정규' 보육 시간을 넘어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정서적으로 안녕한지 궁금하지만, 과연 정규보육만 하고 하원할 수 있는 맞벌이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이 모든 것이 일하는 엄마들의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일하는 아빠들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늦게까지 일하고 엄마가 주로 아이들을 돌보는, '효율적인' 분업화로 가정의 형편은 나아졌지만, 집안의 대소사에서 은근히 배제되고 소외돼 감정적 교류가 적었던 아버지들을 떠올린다. 더 나은 아빠가 되고 싶고, 더 나은 가정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요즘의 부모들은 이런 시간 빈곤을 해결하고자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지만, 절대적으로 긴 노동시간 안에선 어떤 방법도 찾기가 쉽지 않다.

돌봄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돌봄의 과정이 사회 속에서 개인의 뒤처짐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작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에게 돌봄의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이것은 육아뿐 아니라 부모나 형제자매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한 모두에게 필요하다. 타인을 돌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좋지 않은가.

시간 빈곤 속에서 돌봄을 외주화하는 것이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 전에 스스로 돌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돌봄의 기회를 먼저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성장을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장시간 노동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야기하는 건 이미 너무나 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정규 노동시간에서조차 적절한 돌봄이 어렵고, 이것이 가정과 사회에 위협이 된다면, 이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적정 노동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유민 님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입니다. 이 기사는 한노보연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돌봄가능한_노동, #적정_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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