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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국어영역에 '킬러 문항'은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표준점수 최고점이 136점에 불과해 지난해 수능에 이어 '물시험'이었다. 반면, 수학영역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151점에 달해 '불시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험이 쉬워 평균점수가 높아지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하락하고, 반대로 시험이 어려워 평균점수가 낮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상승한다.

6월 모의평가에는 킬러 문항이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7일 발표한 '24 수능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아래 [표]는 6월 모의평가 국어와 수학 등급별 표준점수 분포를 나타낸다.

국어는 너무 쉽고 수학은 너무 어려워 아쉬움은 있었지만, 정규분포곡선상 등급별 분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9등급 상대평가에서는 1등급 4%, 2등급 7%(누적 11%), 3등급 11%(누적 22%) 이렇게 분포하는 게 이상적인데, 이번 6월 모의평가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표]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국어/수학 등급 구분 표준점수
 [표]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국어/수학 등급 구분 표준점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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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절대평가로 치러진 영어영역의 경우도 원점수 90점 이상의 1등급 수험생이 작년 수능 7.83%와 비슷한 7.62%에 이르러, 킬러 문항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6일 교육부가 킬러 문항으로 지목한 영어 33번, 34번 문항을 상위권 학생들은 무난하게 풀어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올해 6월 모의평가에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거나 사교육에 기대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훈련해야만 풀 수 있는 킬러 문항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국어와 영어는 확실히 그렇다. 킬러로 지목된 6월 모평 국어 14번과 33번은 둘 다 정답률이 36%를 초과했고, 영어 33번과 34번도 20%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수학의 경우 주관식(단답형) 문항이라 찍을 수 없는 공통영역 21번, 22번과 미적분 등 선택영역의 29번, 30번이 어려운데 킬러 문항인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정답률이 (1등급 기준인) 4%에 못미치는 공통영역 22번(정답률 2.9%) 정도가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행 9등급 상대평가 수능에서 최상위권 변별은 불가피하고, 수학 1등급이 5.34%(2만여 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킬러 문항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킬러 문항은 정답률과 관계 없다? 

6월 모의평가 국어영역 만점자가 1492명으로 지난해 수능 371명의 4배에 달해 킬러 문항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킬러 문항은 난이도가 아닌 공정성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궁색한 변명이자 평가 비전문가의 궤변에 불과하다.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겠다.

첫째, 교육평가 이론상 5지선다 선택형 문항에서는 정답률이 20% 미만이어야 킬러 문항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모르는 문제든 어려운 문제든, 수험생이 그냥 찍어도 정답률 20%는 나오기 때문이다. 정답률이 20%가 안 되면? 그건 말 그대로 킬러 문항이거나, 오답 선택지의 매력이 워낙 커서 상위권 수험생들이 그쪽으로 몰려간 경우다.

둘째, 교육부가 공정성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교육은 킬러 문항 해결에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이권 카르텔'이 진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체가 드러나지도 않은 극소수 사례를 들어 일반화하면 안 된다.

결국, 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에 비춰볼 때, 교육부가 26일 발표한 킬러 문항 22개(과탐 제외)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교육부가 대통령의 '공정 수능' 구두지시를 받들어 이행할 목적으로 킬러 문항 개수를 부풀려 발표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은 사과 표명과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대체 킬러 문항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 새로운 문제유형 추가는 없다, 물수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뭐가 남는가. 설마, 수험생과 학부모는 "출제기법을 고도화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교육부장관의 말만 믿고 따라오라는 것인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정답률 20~40% 정도의 고난도 문항수를 늘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그러면 최소한, 수능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지금처럼 안갯속에서 해메는 일 만큼은 없을 것 아닌가.
 
지난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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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킬러문항, #사교육 대책, #수험생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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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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