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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교육부총리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한 뒤 간부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한 뒤 간부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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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없이 마구 던진 모순적인 교육 정책'.

지난 21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한 한 줄 평이다. 원인에 대한 진단도 인과관계도 틀렸고, 과거 정책에 대한 성찰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퇴행적 대책이라고 혹평하는 동료 교사도 있다. AI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만 가득하다.

이주호 장관은 카메라 앞에서 13분 동안 갖가지 미사여구를 쏟아냈지만,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로 점철됐다. AI 관련 내용을 제외하면, 15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나아가 우리 교육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다분히 '문재인 정부의 무능'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부디 '말꼬리 잡기'라고 힐난하지 않길 바란다. 모름지기 교육부 수장의 공식 발표라면, '말꼬리 잡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엄격성이 요구된다. 그래야 억측을 줄일 수 있다. 설마 단어 하나 숫자 하나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우려와 교정도 없이 공식 발표를 했을 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벌어지는 교육 격차가 평등주의 정책 때문?... 인과관계부터 무시했다

우선, 이주호 장관은 서두에 "획일적 평등주의 정책으로 교육 격차가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또 "평균 수준의 교육을 실시해서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잃고 사교육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 "학업성취도 평가를 표집평가로 전환한 2017년 이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고 단정했다.

핑계 댈 게 마땅찮으니 인과관계마저 무시하는 모양새다. 나날이 교육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온존한 학벌 구조가 고스란히 소득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선행 학습을 위해 유치원생부터 사교육으로 몰아넣는 현실 속에 '획일적 평등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수월성 교육'의 부재로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잃었다는 진단은 지나치게 납작한 분석이다. 지금도 학교마다 개인별 학업 역량을 반영해 별도의 커리큘럼을 운영해 수준별로 수업을 세분화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게 공부'라고 말하는 우리 아이들의 절규가 고작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 때문이라고 여기는 건 난센스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어난 것이 '일제고사'가 폐지된 탓이라고 보는 데서는 경쟁만능주의의 철학이 드러난다.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은 각자도생의 경쟁에서 밀려나 자존감마저 상실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에게 시험일은 수업이 없는 휴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굳이 2017년이라는 시점까지 적시한 것에서 이마저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강퍅한 인식이 엿보인다.

'초3-중1 책임교육학년', 그 속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건물 앞에 초등학생이 서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 사례와 학원의 허위, 과장 광고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건물 앞에 초등학생이 서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 사례와 학원의 허위, 과장 광고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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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또래들과 뛰어놀며 사회성을 길러야 할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책임 교육 학년'으로 지정한다는 방침도 뜬금없다. 공교롭지만, 초3이면 공교육 내에서 영어교육이 시작되는 때이고, 중1이면 대입을 향해 달려가는 중등교육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그는 '학습 및 성장의 결정적 시기'라고 둘러댔지만, 우리 교육의 종착역이 대입이라는 걸 인정한 꼴이 됐다.

'학업성취도 자율 평가에 전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 2018년 공식 폐지된 '일제고사'를 되살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름은 '자율'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전체가 참여하는 '강제'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보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일제고사'의 부활이 예견된 바여서 딱히 놀랍진 않다.

평가 결과는 교육청과 학교·학생·학부모 등에 고스란히 공개된다고 밝혔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역 간 학교 간 경쟁이 불붙는 결과를 낳는다. 아닌 척해도 시·도교육감과 단위 학교장은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성적 향상을 위한 온갖 편법도 묵인된다. 과거 학교마다 최하위권 아이들이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도 그래서다.

오로지 성적 경쟁을 통해 학업성취도를 제고하려는 발상은 효과도 제한적일뿐더러 반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친구가 떨어져야 자신이 붙는 맹목적인 등급 경쟁은 서로 간의 협력을 방해하고 공감 능력과 연대 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 교육에 절실한 건 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공존의 가치다.

이주호 장관이 명토 박은 대로, 아이들의 기본 인성을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 정서적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면, 지역간 학교간 성적 비교로 귀결될 경쟁을 멈춰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공부 못 한다는 '낙인'은 분발하려는 의지를 북돋우기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뿌리 깊은 좌절감만 안길 뿐이다. 극단적 경쟁 속에서 바른 인성과 시민성이 길러질 리 없다.

헛웃음이 나오는 내용도 있다. "학생의 자발적인 질문과 토론이 일상화되는 학교 수업 문화를 조성하고 전체 학교로 확산해 나가겠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학교에서 토론식 수업이 어려운 이유는 교사의 역량 부족보다 대입과 수능에 목매달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선다형 방식의 수능으로 토론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당장 윤석열 대통령부터 공개 토론을 꺼리고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으려 하지 않는데, 질문과 토론이 없는 학교 수업 문화를 꼬집는 건 뻔뻔한 행태다. 한 동료 교사는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며 조롱했다. 수업 개선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보다 대통령부터 수시로 국민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확신한다.

고교학점제 전면시행 그리고 자사고·외고·국제고에 건네는 선물될 듯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6.20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6.2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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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해도 교육부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과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의 존치 결정'이다. 고1 공통 과정을 제외하고, 모든 선택 교과의 석차 등급 병기를 폐지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절대평가 방식은 고교학점제 시행의 전제 조건이다. 기존의 상대평가 방식은 선택 교과별 유불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절대평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재학생에게 유리한 평가 방식이다. 최상위권 아이들이 자사고·외고·국제고 진학을 꺼렸던 이유는 오로지 내신 등급의 불리함 때문이다. 내신 등급이 당락을 결정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확대되면서 자사고 등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일반고로 전환 신청하는 학교도 잇따랐다. 

절대평가는 학종 대신 수능에 다걸기 해온 자사고·외고·국제고에 건네는 '선물'이 될 전망이다. 폐지될 운명에서 순식간에 최상위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명문대 진학을 독식하는 과거 명문고의 위상을 되찾게 될 듯하다. 절대평가와 맞물린 고교학점제의 시행과 기존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의 정시 모집 비율의 40% 유지 방침은 자사고 등에 더없는 '꽃놀이패'다.

교육부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게 두려웠던지, 모집 정원의 20%를 학교 소재 시·도 학생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도록 보완책을 뒀다. 중학생 대상 사교육 확산을 막겠다는 취지라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는 조롱과 되레 인지도를 높여 선호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가 초래될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주호 장관은 절대평가의 도입과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 결정이 서로 전혀 무관한 것처럼 눙치고 있다. 근거로 제시한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 학생 선택권의 보장은 전가의 보도다. 내용도 근거도 15년 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교육 정책이었던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 300'의 복사판이다. 사교육의 영향을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마저 같다.

사교육 내몰기 정책 내놓고선 사교육 영향 줄이겠다?

요컨대, 이번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은 '동그란 네모'를 그리겠다는 정책이다. '일제고사'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 등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 게 뻔한 대책을 내놓고선 사교육의 영향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건 당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초학력 미달자라고 낙인찍어놓고 정서적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 '병 주고 약 주자'는 뜻일까.

사족. 진보를 표방했던 과거 정부의 교육 정책을 두고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했다'는 비난이 한동안 쏟아졌다. '우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보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닮아갔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회전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깜빡이 대신 비상등이 필요할 듯하다. 심지어 거침없이 후진하는 자동차에 브레이크마저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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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하는 이주호 21일 오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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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일제고사 부활, #고교학점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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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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