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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편집자말]
마을 학교 초등부 수업은 3단계 총 12권으로 되어있다. 각 단계는 4권으로 되어있다. 1단계는 1~2학년 과정, 2단계는 3~4학년 과정, 3단계는 5~6학년 과정으로 총 12권을 배우면 6학년 과정을 마치는 것이다. 이곳 마을 학교는 2단계 8권(4-2) 과정을 배우고 있다. 제8권 10단원에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제목을 수업할 차례다.

이번과의 목표는 편지글을 읽고 중심 내용을 파악하고 편지를 써보기이다. 제목 아래 첫 페이지는 '어니언스'라는 가수가 부른 <편지> 노래 가사가 있다. 교과서에 노래 가사가 있기도 하여 수업 시작은 다 함께 어니언스의 <편지> 노래로 시작했다. 수업 분위기가 한결 화기애애해졌다. 편지글에 관해 공부하고 나서 옛날을 회상해 보고, 누가 보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 편지를 써 볼 요량이다.
 
그 편지 생각만 하면 80줄에 들어선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했다.
 그 편지 생각만 하면 80줄에 들어선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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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편지'라는 말에 모두 할 말이 많다. 글을 모르니 편지가 와도 누가 보냈는지, 누구에게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 했다. 우편배달부에게 편지 봉투를 받아도 그것이 청첩장인지, 군대에 간 아들에게서 온 편지인지, 세금 고지서인지 분간을 못 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는지 선생님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편지가 오면 남편에게 갖다 주고 남편이 읽어주어야 무슨 내용인지 알았다. 남편이 없을 땐 마을의 이장이나 글을 아는 사람에게 가져가서 내용을 알았다고 했다.

순간, 언젠가 <아침마당 TV 프로그램>에서 어르신 성인 문해와 관련해 방송된 내용이 생각났다. 40년 전 군대 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를 읽을 수 없어서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글을 모르니 아들에게 답장도 할 수 없었다.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편지 받은 지 40년 만에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아들의 편지를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어 아들의 편지를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편지 보내온 아들에게 전화로 편지를 읽어주면서 읽는 엄마도 울고, 전화 받는 아들도 같이 울었다는 내용이다. 우리 학생들 생각이 나서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번개처럼 번쩍하고 스쳤다. 그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S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한동네에 사는 친구 오빠가 편지를 몰래 주고 갔슈. 그런데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어떤 답을 하지유. 그 편지 내용이 뭐라고 썼을지 물러 누구보고 읽어 달라고도 못 하고 안절부절 했슈. 아무도 못 찾을 곳에 숨겨 놓았다가, 호주머니에다 넣고 다니다가, 누가 볼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 했슈.

내가 쓴 것도 아닌디 왜 그렇게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한대유. 지금도 가끔씩 궁금해유. 그 편지에 뭐라고 썼을까? 하두 편지 내용이 궁금해서 학교 다니는 친구에게 읽어 달랠까 하다 그만 뒀슈. 무슨 말을 썼을지 물러서유. 그랬다가 외간 남자에게 편지 받은 거 소문나면 혼삿길 막힌다구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날 것이 뻔하니께유."


S 학생은 일곱 살 때부터 동생을 업어 키웠다. 학교 안 보내 준 부모를 많이 원망했다. 친구들이 가방 들고 학교 가는 것을 보면, 동생을 업은 채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하염없이 울었다. 가방 들고 학교 가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동생이 한없이 미웠다. 동생이 없으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동생을 안고 울다가 지쳐 잠이 들 때도 있었다.

어쩌다가 편지 건네준 오빠가 멀리서 보이면 얼른 숨었다. 죄지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가슴은 콩닥거렸다. 그 편지는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결혼할 때 태워 버렸다. 태우면서도 내용을 몰라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내용이 궁금하다. 아무도 모르게 준 것으로 보아 '나를 좋아한다는 내용일까? 만나자는 내용일까?' 그 편지 생각만 하면 80줄에 들어선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했다.

첫 시간에 내용을 배운 뒤 두 번째 시간엔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쓰고, 아니면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편지 써 보기로 했다. 시작한 지 35분이 지났다. 다음은 S 학생의 편지다.

<선생님께>
지금 이렇게 늦은 나이지만 글자를 배웁니다.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나는 받아쓰기에서 틀린 것이 많아도 공부가 재미있어요. 쓰기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고 있으면 남편이 "밥 안 줘?" 그때야 벌떡 일어나 저녁 준비를 하곤 하지요.

글자를 배우고 나니 세상이 환해진 것 같아요. 그동안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려고 해도 어떻게 쓰는지 몰랐어요, 지금 난 글씨를 읽을 수 있어요. 그 뿐인가요? 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같으면 열여덟 살 때 동네 오빠가 아무도 몰래 준 편지를 읽을 수 있을 텐데요. - S 00올림


동네 오빠가 줬던 편지 내용이 나이 80줄에 들어선 지금까지 궁금한 것을 보며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느끼는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듦과 상관없이 풋풋했던 시절 동네 오빠에게 건네받은 편지 내용이 지금도 못내 알고 싶고, 그리운 마음을 품고 있음이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다.

대개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이 되면 나이가 많아서 이런 감정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마음은 젊었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것을.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마을 한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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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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