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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그래서 넌 언제까지 여기에서 애들 키울 거야?"
"중학교는 그래도 도시로 가야 하지 않아?"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 때문일까. 아님 맹모삼천지교(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는 고사) 때문일까.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인 첫째와 내년에야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를 두고, 주변에서는 이런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마치 시골에서는 사람을 키우면 안 된다는 듯.

내가 사는 곳은 제주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시내까지 차로 한 시간이 걸린다. 마트는 차로 십 분, 병원도 약국도 걸어서 갈 수 없다. 아이들이 갈 만한 학원도 많지 않다. 어떻게 사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잘 산다고 말하고 싶다. 마트나 병원, 학원 등이 인근에 없지만, 여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걸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달빛도 눈이 부시다는 걸 느끼며 살아간다. 봄에는 제비를 기다리고 가을에는 겨울 철새들을 기다린다. 한라산에 겨우내 눈이 쌓이면 중산간 언덕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고, 바다에서는 운이 좋으면 돌고래들을 만난다. 봄여름에는 온갖 곤충들이 출몰하고, 길고양이들과 다정하게 인사하며 살아간다.

돈보다 시간, 미래보다 현재
 
하늘과 바람과 땅과 바다를 더 자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간다.
▲ 해질 무렵 제주도 바닷가 하늘과 바람과 땅과 바다를 더 자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간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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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하면 꽤 가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괜찮은 동네의 이름난 아파트에 살고, 전문직에 내 차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과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시기하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자주 숨이 막혔다. 조금만 시간이 나면 여행을 떠났다. 일종의 도망이었다. 어떤 꼬리표도 없이 그저 혈혈단신 나로 서야 하는 여행지에서 더 잘 자고, 더 잘 먹었다.

결국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났다. 반년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떠돌면서 나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내 나이 서른이었다.

돈, 경력, 결혼할 상대 같은 건 내게 없었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남들이 말하는 대로 공식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살고 싶었다. 타인의 이유가 아닌 나의 이유로 살고 싶었다.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다 예상보다 이른 결혼을 했다. 남편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종에 종사했다. 하루하루 피폐해져가는 남편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제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해 제주로 온 게 어느덧 십 년이다. 작은 카페를 하며 간신히 먹고 살다 작년에 좋은 기회가 닿아 남편이 취업을 했다. 둘이 돌보던 카페를 나 홀로 지키며, 섬에서 낳은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내가 선택한 땅, 제주다. 언제든 어디서든 넓고 높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한라산과 드높은 하늘 내가 선택한 땅, 제주다. 언제든 어디서든 넓고 높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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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은 오후 네 시 반에 닫는다. 이전에는 여섯 시까지 영업했지만, 남편이 취업한 뒤로는 아이들이 귀가하는 시간에 나도 영업을 마친다. 먹고 살 만해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다. 제주는 전국에서 연봉이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남편의 연봉은 많지 않고, 카페 장사는 관광지다 보니 매출이 경기에 따라 널을 뛴다. 십 년을 했는데 패턴을 알만 하다 싶으면 사드 배치로, 사고로, 코로나로 다시 알 수 없는 불황으로 치달았다. 십 년 동안 인근에 생긴 카페만 해도 수십 곳이 넘는다.

그런데도 빨리 문을 닫는 이유는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이 아이들에게 가정은 세상의 전부와 같다.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남편은 연봉이 적지만 칼퇴근을 한다. 별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종알종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남편과 나도 서로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대화를 나눈다.

내게 중요한 건 돈보다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 사춘기가 되어 자신의 세계로 건너가기 전까지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싶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가는지 관찰자이자 조력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늘 엄마가 곁에서 응원과 사랑을 듬뿍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가슴으로 느끼길 바란다. 돈이 조금 부족해도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고 싶다.

다름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오름을 사랑한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을 아이들과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 오름을 걷는 아이들 오름을 사랑한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을 아이들과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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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유독 일찍 문 닫는 가게들이 많다. 휴일도 일주일에 하루는 기본이고 이틀인 경우도 있다. 오히려 24시간 영업을 하거나 늦은 밤에도 영업을 하는 가게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이들이 이렇게 영업하는 건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지키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아이들이 자란다. 그 속에서 편의나 속도보다 배려와 쉼표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오름을 오르며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철마다 달라지는 바다의 색과 냄새를 가늠하며, 새로 만난 꽃과 곤충의 이름을 알아가며. 그렇게 오감을 열고 생존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게 내가 섬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유다. 

이런 곳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는지, 이곳의 학교는 어떤지, 어떤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조금 다른 문법으로 제주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으로 바라본다면 좋겠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육아, #제주도,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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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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