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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일본 히로시마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일본 히로시마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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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이 탄생한 지 1년 만에, 내정(內政)과 외정(外政) 모두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의 많은 변화가 벌어졌습니다. 내정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검찰 정치의 본격화'라고 한다면, 외정의 특징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1년간 정상외교 일정이, 윤 정부의 외교가 어떤 방향으로 달려왔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정상외교 일정을 살펴보면,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가 윤 정부 외교의 목표였다는 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미국의 주도에 따른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일본과 11차례 정상회담... 중국과는 1차례, 러시아는 0

윤석열 대통령은 1년 동안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가장 최근의 외교 행사인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까지 모두 11번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3번의 단독회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5번의 단독회담(그중 한 번은 일본이 약식 간담으로 표현),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세 차례였습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일본 상대의 정상회담 일람.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일본 상대의 정상회담 일람.
ⓒ 오태규
  
이와 대조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다른 강대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25분 회담한 것이 전부입니다. 또 다른 강대국 러시아와는 얼굴을 마주친 적조차 없습니다.

반북에서 반러·반중으로 전선 확대... 프놈펜 3국 회담이 전기

외교 일정만 봐도 한국의 한반도 외교가 미국과 일본으로 완전히 쏠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용까지 들여다보면 쏠림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서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미국은 취임 최단 시일 안의 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며, 윤 대통령을 같은 해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초대했습니다.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국을 나토의 최대 현안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도록 끌어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 문제로 삐걱대는 한국과 일본을 중재하는 것입니다. 이때 바이든 대통령의 주선으로 윤석열-바이든-기시다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미국의 이런 의도는 거의 그대로 관철됐습니다.

마드리드 3국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화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협력의 필요성이었습니다. 강제 동원 등 역사 문제 해결 방안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3국 협력을 위한 밑돌이 이때 깔렸습니다.
 
2022년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의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열린 약식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2년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의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열린 약식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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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사 문제는 한일 사이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해 9월 유엔총회 때 열린 촌극이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줬습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머무는 일본 유엔대표부 건물로 찾아가 만남이 이뤄지긴 했지만, 일본은 냉대했습니다. 일본 쪽은 회담장에 태극기도 설치해 놓지 않고 싸늘하게 윤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한국 쪽은 이를 '간이 회담'이라고 했지만, 일본 쪽은 '약식 간담'이라고 격하해 설명했습니다. 역사 문제에 관해 한국이 굴복하고 들어와야 정식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압박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일, 한·미·일 연쇄 정상회담이 분기점이 됐습니다. 이제까지 세 나라가 각기 양자와 삼자 정상회담을 하루에 연달아 연 것도 처음일 뿐더러 내용도 획기적이었습니다.

이때 나온 '프놈펜 3국 정상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미국과 일본의 대열에 동참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전략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고 양국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때부터 윤 정권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본격적인 비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때는 미국과 일본보다 더 강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비난해 당사국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과거사 포기와 원전 오염수 용인... '한일협력 지상주의' 불안한 미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 주최로 지난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심판대회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앞줄 오른쪽) 등 참가자들이 '일본 핵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심판','일제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 사죄배상'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울 도심에 울린 "일본 핵 오염수 해양투기, 안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 주최로 지난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심판대회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앞줄 오른쪽) 등 참가자들이 '일본 핵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심판','일제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 사죄배상'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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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상이 미국이 깔아놓은 무대 위에서 '2인 3각'의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는 잊어주세요, 미래만 봅시다'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올해만 세 번, 3국 정상회담까지 포함하면 네 번이나 만나 발을 맞추며 친밀감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화려한 춤의 대가로 우리가 일본에 내준 게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서 보듯 일본의 과거사 책임은 이미 면제해줬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도 조만간 용인할 태세입니다.

혹자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한일 두 나라 정상이 함께 참배한 것을 두고 '그것이 어떻게 과거사 추궁의 포기냐, 오히려 발전적인 모습이 아니냐'라고 평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전후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의미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참배 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강제노동과 관련해 일본 쪽의 책임을 완전히 씻어준 '제3자 변제안'을 내놓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히로시마에 초대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공동 참배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원폭 희생자 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참배가 의미가 있으려면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 모든 피해자를 찾아내고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후속 작업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두 정상이 공동으로 위령비를 참배한 두 가지 의미를 설명하면서, 그중 하나가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두 정상 그리고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라고 했더군요. 희생자를 위로하는 참배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사흘간 열린 G7 정상회의의 마지막날인 5월 21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맨 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오른쪽)이 이동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사흘간 열린 G7 정상회의의 마지막날인 5월 21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맨 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오른쪽)이 이동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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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파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파견 일정(5월 21~26일)을 주요 7개국 정상회의(5월 19~21일) 뒤에 잡은 것부터 시찰단 파견이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주요 7개국 정상회의는 이미 20일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원자력기구의 독립적 검증을 지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시찰단의 성격과 구성 문제와 관련한 논란을 떠나, 윤 대통령도 참가한 정상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성명이 나온 판에 우리나라 시찰단이 할 일은 '국제원자력기구의 들러리'가 되는 것밖에 없어 보입니다. 일본 쪽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우리나라 시찰단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히로시마 초대권을 얻기 위한 시찰단 파견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히로시마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의 윤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윤 정권의 외교 1년의 결산이자 2년 차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한 과거사 추궁을 포기하고 미일동맹의 '행동대장'이 돼 반북한, 반중국, 반러시아의 선봉장이 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노선이 현실화하면서 더욱 커질 국론 분열과 주변국의 반발, 그에 따른 국내외 정세의 불안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태그:#윤석열 외교, #한미일 삼각동맹, #히로시마 G7정상회의, #과거사 추궁 포기, #후쿠시마 오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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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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