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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에서 며칠을 지내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콜카타에서 도착하고 두 달 만에 가는 공항입니다. 저는 첸나이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또 중앙아시아로 향합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국경을 넘었던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팔에 들른 것을 제외하고는 국경을 넘을 일이 없었습니다. 비행기도 한 번 타지 않고, 육로로만 두 달을 여행했습니다. 이제 다시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으려 하니, 약간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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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둘러싸고는 참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에, 그것도 콜카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제 주변 사람들도 여러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반면 어떤 경험을 들려줄지 기대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인도를 신비하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철학자고, 낭만이 가득한 여행지라는 이야기였죠. 그런 여행기를 보고 인도행 비행기표를 끊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럿 들어봤습니다.

요즘은 반대입니다. 유튜브에 인도를 검색하면 주로 인도 여행의 고생담이 쏟아집니다. "인도 가지마세요"라며 인도 여행을 말리는 이들까지 있죠. 사기꾼과 싸우는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유튜버들 사이에는 인도 여행이 '조회수 보증수표'로 통한다고 합니다. 이런 영상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인도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겠죠. 이런 추세가 이어지다보니 일부러 기행을 통해 주목을 받으려는 이들도 많습니다.
 
인도 도착 첫날에 만난 콜카타의 시장
 인도 도착 첫날에 만난 콜카타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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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 역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도 미술사를 공부하던 시절의 경탄이 떠올랐습니다. 슬라이드로만 보던 작품을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런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죠. 주변 사람들이 인도에서 경험한 여러 고생담을 전해 들었으니까요. 강력 범죄까진 아니더라도, 사기나 도난 정도는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조금 큰 돈을 그렇게 잃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자고 미리 각오를 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도를 떠나는 지금, 제게 드는 생각은 너무 당연한 것 뿐입니다. 인도에 입국하기 전 느낀 다양한 감정들이 허무할 정도로 말이지요. 인도 역시 양 극단의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인도 가지마세요"와 "철학자의 나라" 사이 어디쯤에, 현실의 인도가 있다는 당연한 결론이죠.
 
암리차르의 버스 스탠드
 암리차르의 버스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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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남성 여행자이니, 여성들이 느끼는 현실과는 또 많은 점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도 기대도, 인도의 현실과는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기차 여행을 걱정했지만, 정해진 플랫폼에서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기차 여행은 아주 편안했습니다.

릭샤 기사들과의 씨름도 없었습니다. 대도시에서는 대중교통과 우버 앱을 손쉽게 활용했고, 작은 마을은 도보로도 충분했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물어물어 타야 하는 버스 여행이 스트레스는 더 많았죠.

타지마할의 화려한 세공을 기대했지만, 제게는 별 느낌이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오히려 석굴 사원의 투박한 조각이 제게는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기대도 걱정도, 생각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바라나시 강가를 걷는 소와 개
 바라나시 강가를 걷는 소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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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도라고 생각했지만, 도시마다 분위기도 참 많이 달랐습니다. 첸나이와 델리를, 암리차르와 콜카타를, 뭄바이와 다람살라를, 같은 인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긴 인도 여행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다이내믹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행 초기에는 인도를 떠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언제 첸나이에 가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칸야쿠마리에서 인도 대륙의 끝을 보면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죠. 하지만 첸나이에 닿았을 즈음에는 이미 인도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끝이 기다려질 때에는 결코 끝이 오지 않는 법이죠. 끝이 아쉬워질 때에야 마지막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인도 여행도 제겐 그랬습니다.
 
메트로의 풍경도 별 다를 것은 없다.
 메트로의 풍경도 별 다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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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듯이.' 인도 역시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 적용되는 너무도 당연한 곳이었습니다. 기대와 걱정 사이 어디엔가 위치한 땅이었습니다. 그런 상식 속의 여행지였죠.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며 여행한다면, 많은 걱정을 접어둬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인터넷 방송인들처럼 수돗물을 먹고 배탈이 나거나, 브라탑을 입고 춤을 추는 일을 벌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인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는 곳이죠. 물론 한국인인 우리와 다른 국민성은 있겠죠.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한 인도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을 수도, 모든 사람이 나쁠 수도 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똑같이 말이죠.

물론 한국에 비해 인도는 치안이 좋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사기가 성행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각별한 신경을 쓴다면, 많은 고생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 역시 여느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겠죠.
 
뭄바이 골목의 풍경
 뭄바이 골목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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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인도에서 볼 수 있었던 한국과의 차이는 의외의 면에 있었습니다. 지하철이나 여행지에서는 여성 경찰들이 한국보다 많이 보입니다. 물론 짐 검사나 몸 수색을 해야 하는 곳에서, 여성 경찰이 꼭 필요한 이유가 크겠지만요.

장애인의 경우, 한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첸나이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는 호텔 프론트를 보는 직원이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직원은 한쪽 팔이 없습니다. 엽서를 부치러 간 우체국 창구에서는 휠체어를 탄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유물을 설명하는 점자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짧은 계단에 설치해 둔 리프트를 보았습니다. 물론 인도에는 여전히 심각한 인권 문제가 산재합니다. 절대적으로 인도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나, 문득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인도에서는 자주 있었습니다.
 
델리의 잔타르 만타르
 델리의 잔타르 만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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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떠나는 비행기 위에서, 인도에서 만난 여러 장면들을 떠올립니다. 콜카타에서 인도를 한 바퀴 돌아 첸나이까지. 많은 것이 다르고, 또 많은 것이 닮았던 땅이었습니다. 생각과 일치하는 것도 많았고, 의외의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여느 나라와 똑같이 말이죠.

인도는 분명 한국과 먼 땅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신비한 땅인 것도 맞겠죠. 우리와 다른 이역입니다. 분명 그렇지만, 그렇다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땅은 아닙니다. 상식이 국경을 넘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고아의 강과 다리
 고아의 강과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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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연한 사실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인도도 그렇습니다. 기대와 걱정 사이, "인도 가지 마세요"와 "철학자의 땅"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나라였습니다. 그렇게 인도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다른 나라에서와 똑같은, 너무도 평범한 작별의 인사를 건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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