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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어린 딸을,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를, 어린 아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앗아갔다. 음주운전은 ‘살인을 예비한 범죄’다. <오마이뉴스>는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2018년 9월 25일부터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있었던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재판 판결문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렇게 마주한 63명의 가해자들은 다양한 감경사유를 내세워 수갑을 벗었다. 이미 음주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 음주 살인자들의 운전대, 지금 멈춰야 한다. [편집자말]
2019년 8월 13일은 화요일이었다. 여름날 밤 9시 18분, 한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다만 걷고 있었을 뿐인데 쉰 넷, 그의 삶이 끝났다. 그날 밤 10시 6분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제한속도 80km/h 구간의 편도 2차선 도로, 126km/h 속도로 달려든 사륜구동 승용차는 맨 몸의 피해자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음주운전 상습범이었다. 
 
2008년 4월 음주운전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 선고 
2015년 7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
2016년 11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800만 원의 약식명령

2019년 7월 무면허 상태로 음주운전 단속

그러고도 그는 또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이번엔 사람이 죽었다. 
 
재판에 넘겨졌다.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무면허운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였다. 2020년 7월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을 앞에 두고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윤창호씨 이야기를 꺼냈다.
 
"2018년 9월 25일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한 시민이 뇌사 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생명을 잃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음주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중략) 음주운전은 얼마든지 중한 인명피해의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음주운전 자체의 위법성을 중대하게 평가하여야 한다. 음주운전의 위법성을 실수로 치부하거나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경과를 입법개정으로 이어졌고...(후략)"
 
A4 한 페이지 달하는 분량으로 음주운전의 위험성, 도로교통법 개정(일명 윤창호법)으로 인해 강화된 처벌규정을 읊었다. 그리고 선고했다.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4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음주운전 전과 4범이 된 피고인은 재판장에 들어서기 전 '이번엔' 징역형을 각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집행유예로 자유를 얻었다. 

361배 높은 음주운전 치사율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전경.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전경.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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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또 음주운전 할 것"이라고 했던 대구 음주운전 사고 유가족 조기현(30, 가명)씨의 말은 통계로도 뒷받침 된다(관련기사: 결혼 두 달차 신혼... "나는 지옥 속에 삽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음주운전 재범률은 44.6%(2021년 기준)에 달한다. 7회 이상의 상습 음주운전 적발건수도 2018년 866건에서 2021년 977건으로 증가했다. 일반 교통사고 치사율은 10만 건 당 사망자수가 5.6명이지만, 음주운전의 경우 2020명이다. 음주운전 치사율이 361배나 높다.
 
그렇다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피고인들의 형량은 어떨까. <오마이뉴스> 2018년 9월 25일부터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사건 재판 판결문을 대법원 판결문 열람 검색 서비스를 통해 일일이 찾아냈다. 시작점은 음주살인으로 사망한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종료점은 스쿨존에서 음주살인으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그렇게 판결문 63건을 입수·분석했다. 
 
그 결과 63명의 가해자 중 23명에게 '음주운전 전과'가 발견됐다. 음주운전을 했어도 가볍게 처벌했고 손쉽게 풀어줬다.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이번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63명의 '음주살인 가해자' 중 41명이 재판에서 집행유예형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앞선 대구지법 재판부의 말대로 음주운전은 "얼마든지 중한 인명피해의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견된 살인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다종·다양한 감경 사유를 근거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전체 가해자 중 집행유예 비율은 65%나 된다. 나머지 22건의 음주살인도 형이 무겁지 않았다. 최저 징역 5월형부터 최고 징역 4년 6월형까지, 평균형량은 20개월(1년 8월)이었다.
 
집행유예형을 받은 41명 가운데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것으로 판결문으로 확인된 인원만 9명이었다. 이는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고, 사람을 죽였음에도 또 다시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이 9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한 가해자는 2000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70만 원, 2007년 음주운전으로 다시 벌금 150만 원, 2010년 음주운전으로 또 다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018년 가해자는 술을 마시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고 걷고 있던 피해자를 치어 죽였다. 재판부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전력이 없고 2010년 이후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며, "연로한 부모와 지적장애가 있는 누나를 홀로 부양하고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다. 
 
<오마이뉴스>가 '음주살인' 판결문 63건을 분석했다. 재판부는 이 중 41명의 가해자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오마이뉴스>가 '음주살인' 판결문 63건을 분석했다. 재판부는 이 중 41명의 가해자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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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정상(감경사유)을 언급하기 전 재판부는 늘 강조했다.

"음주운전은 중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한 채 범행에 나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실제로 그 위험이 현실화되기까지 하였으므로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피해자를 사망하게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중한 결과를 야기했다"고.
 
그리고는 '감경사유'를 내세워 가해자의 형을 감해줬다.
 
제 1윤창호법 시행 이후, 집행유예 비율 도리어 늘었다
 
합의금을 받아줄 유족이 없어 사회단체에 1000만 원을 기탁한 것도 감경 사유가 됐다. 가해자 가족이 '재범방지를 다짐했다'고,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했다'고 깎아주었다. 심지어 음주전과가 있는 것도 감경 이유가 됐다. 지난 음주운전에 대한 형이 '벌금형에 그쳤다'고, '집행유예형을 받았다'고, 형을 감해준 것이다.
 
합의·반성·보험은 감경사유로 나란히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고,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으며, '가입해둔 보험이 있어 피해를 일부나마 구제할 수 있다'고 선처했다.
 
제1 윤창호법이라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2018년 12월 18일부터 시행)'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 (제2 윤창호법이라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을 반복한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을 골자로한다.)
 
대구 경찰이 대낮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가운데 4월 13일 오후 1시 30분께 대구 중구 남산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중부경찰서 소속 교통경찰들이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있다.
▲ 한낮에도 음주단속 합니다 대구 경찰이 대낮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가운데 4월 13일 오후 1시 30분께 대구 중구 남산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중부경찰서 소속 교통경찰들이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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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사례 중, 제1 윤창호법 시행 이후 징역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건 단 2건에 그쳤다. 집행유예형의 비율은 윤창호법 시행 이후 도리어 높아졌다. 법 시행 이전 발생한 사건에 대한 25건의 재판 중 15건이 집행유예형(60%)을 받았다. 반면, 법 시행 이후 발생 사건에 대한 재판 38건 가운데 26건이 집행유예형(68.4%)을 선고 받았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죄를 처벌하는 하한선이 '징역 3년 이상'으로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각종 감경사유들이 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장이어서, 아이가 희귀병을 앓아서, 전과가 미약해서. 음주운전을 하지 말아야 할 사유는 오히려 감경사유로 둔갑했다. 게다가 피고인들은 사고를 낸 후 차를 팔고, 음주운전 근절을 다짐하는 반성문이 형을 감해준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무사히 사회로 복귀해 다시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태그:#음주살인, #음주운전 사망사고, #윤창호법,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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