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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동해 바다. 불빛 한 점 없었을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엽기적인 살인이 시작됩니다. 영화 속 이야기라 해도, 보는 이들이 비웃을 상상 이상의 릴레이 살인이었습니다.

살인 장소는 8월 중순 김책항을 출항해 러시아와 북한 해역을 돌며 고기잡이를 하던 배 위였습니다. 길이 16m, 폭 3.7m, 무게 17톤짜리 배 위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살인자는 모두 3명이었습니다. 피해자는 무려 16명, 두달 가까이 같은 배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이 이들 3명의 손에 의해 차례로 죽어 나갔습니다. 한창 단잠에 빠져 있던 이들은 교대 근무를 하라는 소리에 일어나 나왔다가 도끼와 망치 등에 의해 차례로 살해당했습니다. 갑자기, 함께 일하던 이들의 손에 죽어나간 이들은 끔찍한 살인의 이유나 알았을까요?

이들은 범죄 후 북한에서도 자강도에 숨어 들자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머문 김책항에서 공범 중 1명이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붙잡힌 공범을 버리고 다시 바다로 도주한 이들의 소식은 우리 대한민국 군의 첩보에도 들어옵니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온 국민이 알게 된 소위 SI를 통한 첩보였습니다.

공범의 체포로 인해 가려던 목적지로 갈 수 없게 된 배는 바다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동해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과 조우하게 된 것이 10월 31일의 일입니다.

대한민국 해군과 처음 만난 이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명백한 귀순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NLL 남방 20해리 부근에서 이들은 우리 해군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여기까지가 소위 '동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의 시작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시작된 수사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2022.7.12
▲ 북송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탈북어민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2022.7.12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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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건은 정부가 바뀌자 갑자기 수사기관의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2022.6.21.)로 시작된 수사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소환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직들을 대거 기소했습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그들입니다.

만약 국내에서 벌어졌다면 온 국민이 한동안 공포에 떨었을, 끔찍한 사건의 범죄자들을 북한으로 추방한 것이 죄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과 관련된 종합적 판단을 법조문을 들이대 단죄할 수 있다는, 참 흔치 않은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지난 14일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따져보려 합니다. 당시 안보기관 책임자의 판단이 정말 틀렸던 것일까요?

흉악범죄자 추방이라는 결론에 앞선 문재인 정부의 판단 기준 세 가지

살인자였던 2명은 일반적인 탈북자와 완전히 다른 상황과 과정, 경로로 우리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귀순자들의 경우 귀순 이후 합동신문의 과정을 거칩니다. 귀순의 의사가 진정성이 있는지, 혹 대공 혐의점은 없는지, 즉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한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보통의 탈북자들과는 다른 조건 속에 들어왔기에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을 놓고 차분히 하나씩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갔습니다.

1. 그 배에 탄 사람들이 그 흉악범들이 맞는가?
2. 그 흉악범들이라면 이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대한민국이 수용할 경우 우리 사회와 국민의 안전에 위험요소가 되지 않겠는가?
3. 이들은 귀순자인가?


1번 질문의 답 'SI 첩보와 일치한 당사자의 증언'

우리 군이 사전에 파악하고 있던 첩보 속 인물이 이들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은 2명을 분리 심문하니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사전에 SI로 취득한 첩보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술 즉, 3개의 정황과 단서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자고 있던 동료 2명씩을 교대시간이라며 30분 단위로 깨워 불러내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렇게 죽이고 나니 해가 뜨더라.'

그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입니다.

2번 질문의 답 '국내법으로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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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이탈주민으로 수용할 경우 대한민국 법률로 처벌이 가능한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이들을 우리 국민과 격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SI 첩보 내용과 두 사람의 진술은 존재하지만,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면 이들을 처벌할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밤중 망망대해에서 동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들을 바다에 던지고, 핏자국을 씻어내고, 심지어 페인트칠까지 다시 하고 배 번호까지 바꿨습니다.

시체도 없고, 혈흔도 없고, 설사 혈흔을 어찌어찌 찾아낸다 해도, 그 혈흔이 피해자 것인지 가해자 것인지 대조할 DNA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희생자의 정확한 이름, 주소, 나이, 주민등록번호까지, 아무것도 입증할 수도 없었습니다. 특히 북한이 협조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설사 기소를 한다 해도, 유죄 판결이 내려질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습니다. 그 얘기는 결국 이들이 우리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 살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3번 질문의 답 '귀순 의사가 있다면 왜 곧바로 오지 않았나?'

합동 신문 과정에서 밝힌 그들의 '귀순 의사'에 대한 판단도 중요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귀순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판단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범행 직후 자강도행을 고민하지 않고, 김책항에 들러 그동안 잡은 물고기 등을 팔 생각을 하지 않고, 곧바로 남측으로 넘어왔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당국이 그들의 범죄 행위를 사전에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들이 스스로 합동 신문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죄를 밝히지 않는 한, 다른 일반적인 탈북자들처럼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정착지원금과 임대아파트까지 지원받으며 우리 사회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들의 범죄 행각을 우리 정부가 알게 된 것은 이들이 애초부터 남한행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보를 처음 파악한 것은 북한군이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했다고 관계자들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대체 잔인한 범죄자들이 도주 끝에 남측으로 온, 지극히 단순한 일에 대한 조사가 대체 얼마만큼 벌어졌어야 '합법적'인 것이 됩니까?

북한 당국이 간첩을 내려보내면서, 굳이 16명을 죽이고, 심지어 공범 한 명이 다시 붙잡히는 쇼까지 해서, 탈북자로 위장해 내려보낸다는 말입니까?

우리 국민 위해 흉악범죄자 추방한 것이 '불법'이라면 그 법이 문제 아닙니까

다시, 검찰과 윤석열 정부에 묻습니다.

경계선을 넘기 전부터 이미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를 파악한 북한 흉악범을, 흉악범인 줄 뻔히 알면서 받아들여, 유죄 가능성은 0에 가까운 법정에 굳이 세웠다가, 우리 국민 곁에서 살게 하는 결정을 했어야 그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정말 그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 법률이라면, 그 법률이 문제입니까? 당시 판단이 문제입니까?

3중으로 범죄 혐의가 확실한데도, 대한민국의 법으로는 사회 격리를 할 수 없는 흉악범들, 국제 난민규정도 용납하지 않는 흉악범들을 받아들이는 행위야말로 위헌적이고 무책임하며, 국제법적으로도 야만적인 행위 아닙니까.

오히려 현 정부야말로 전임 정부를 괴롭히겠다는 목적 하나에 눈이 멀어, 안보 관련 정책 판단까지 들쑤셔 정치 보복의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 첫발을 뗀 재판에서만이라도 무엇이 진짜 정부의 역할이었는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냈습니다.


태그:#문재인, #윤석열, #정치보복, #탈북어민 북송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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