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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납세자의 날 기념식 축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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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은 정치적 수단

윤석열 정부가 바라보는 노동에 대한 시각은 다른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노동을 정치적 도구로 수단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본인이 거듭 주장했듯 자유시장주의적 시각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듯했다. 잘 알려진 "120시간 노동"이나 "손발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란 표현 등은 노동을 폄훼하는 것을 넘어선다. 약육강식이 지배했던 자본주의 초기 시장원리로 노동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당시 윤석열 후보 발언은 근래에 볼 수 없는 19세기 초 시장주의 사상에 근거해 있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은 놀랐고, 언론들도 당황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자유시장주의라기보다 정치적 수단으로 점점 변질되는 양상을 보인다. 당선 이후에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계속된 인사 실패와 장관 후보자 낙마 그리고 출근길 문답에서의 거친 언사로 인해 유례없는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초기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마치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파업으로, 정부는 공권력 투입 등 폭력적인 방식 대신 단계적 해결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파업과 1차 화물연대 파업에 대처하는 윤석열 정부 태도에 대해 보수언론과 보수 지지층의 비판적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2차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태도를 바꿔 화물연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고, 생떼 쓰는 파업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이에 화물연대는 파업을 철회하였으며 보수언론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대해 법과 원칙을 지킨 결단으로 보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바닥까지 치닫던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이때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원칙적인 태도가 보수층을 결집시킨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윤석열 정부는 이때부터 노동조합에 대한 강경 태도를 이어오고 있다. 우선, 대통령 신년사에서 노동조합의 비정상적인 폐단을 바로잡겠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노조의 부당요구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각 부처는 노동조합의 약점으로 본 것인지 건설노조의 월례비 수사,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위한 회계자료 조사를 실시하였다.

대통령은 내친김에 노조의 취업 비리 등을 재차 비판하였고, 정부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단체도 부정 사례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계속되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례적인 공격에도 보수층의 결집은 중도층으로 확장되지 않았고 30% 중반 지지율도 더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 사이 정부와 노동조합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물론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비리 수사도 이렇다 할 결과는 없었다. 한마디로 노동조합에 대해 요란한 말 잔치를 벌였지만, 실속 없이 정치적 입지만 다진 셈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추진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된 측면이 강하다. 안타깝지만, 노동조합은 보수 정부의 지지율을 높이는 사냥감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노동개혁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간의 모순된 연결
 
지난 2022년 12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 관련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 관련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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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한편으로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급제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조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 합쳐 노동개혁이라고 부르고 노동개혁의 목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없애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우선 노동개혁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노동시간 유연화를 하면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직무성과급 도입을 강조하는데 연공급을 직무성과급으로 바꾸면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노동시간 유연화의 핵심은 연장 근로시간을 몰아서 한 주에 최대 69시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유연화는 과로를 유발할 수는 있어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 별 기여를 할 수 없다.

직무성과급 도입도 성공 여부를 떠나 연공급형 임금 체계를 모두 직무성과급으로 바꾼다 해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임금 격차를 줄이기는 어렵다. 다만, 노조 때리기에 성공한다면 노조의 영향력이 줄어들어 노조가 조직된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 노조에 의한 임금 효과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 역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보수 정부에서조차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통한 격차 축소를 강조하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안정적인 생산은 물론 노동자의 삶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생산인구가 줄어들면 들수록 불안정하고 힘들며 저임금 일자리는 일손이 부족해질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해 제값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이유 없는 차별로 인한 과도한 임금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임금 설계가 보편화되어야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만 법 적용을 예외로 하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더 나아가 산별, 업종별 등 초기업 수준 교섭을 확대하여 저임금 직종 노동자나 근로계약을 맺지 않더라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라면 교섭을 통해 권리를 향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이 절실하다. 이러한 정책이 뒷받침될 때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윤석열 정부 역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할 방법은 이미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고 싶지 않기에 표면적으로는 이중구조 해소를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는 별 상관이 없는 정책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최종 결말은 아마도 두 가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첫째, 보수 정부에 대항하는 잠재적 저항세력의 약화이다. 노동조합은 약 20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자원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정부를 상대로 투쟁해 온 경험이 있어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초기 자유시장주의 혹은 친사용자적인 철학을 가진 정부 입장에서 노동조합은 협력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협력할 수 없다면 힘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지금의 노조 때리기는 노동조합의 부정부패를 강조하며 정당성 없는 조직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통해 고립시키는 것이다.

둘째, 노동개혁의 종착점은 노동자 권리의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방향이 상대적으로 나은 노동조건을 가진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노동자의 권리 개선에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윤석열 정부는 거의 모든 정부가 제시했던 비정규직 개선 정책도 없다. 대신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을 가진 노동자의 권리는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노사자율로 형성해 온 관행들을 부정하고 있다. 사용자는 노조와의 약속을 무효로 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전체 근로시간 증가와 총액임금 하락 및 탈·위법적 관행 확산 등 노동자의 권리가 전체적으로 하락하게 될 수 있다.

예상되는 쟁점과 윤석열 정부의 미래

노사관계와 정치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식'의 협상에는 거리를 두고 타협과 조정을 통해 서로 바라는 것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다. 노사가 적이 아니듯 여야도 적이 아닌 견제와 타협의 대상이 될 때 바람직한 국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사회적 조정과 타협은 보기 힘들어졌으며 많은 것이 상대방의 탓이 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노사관계에서도 정부 역할은 조정과 지원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인 친사용자 정책으로 노조와 담을 쌓고 있다. 특히 방향성을 잃은 노동시장 정책은 다가올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 역량을 해제시켜 국민 피해가 예상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과 같은 노동 정책을 이어간다면 다음과 같은 쟁점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경기침체와 더불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역대급으로 침몰하는 중이다. 안타까운 것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일한 현상을 겪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선진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중인데 우리 경제는 반도체 수출 감소와 대중국 무역적자로 인해 경제침체를 넘어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감지하고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반도체 수요는 줄었는데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중국과 불필요한 긴장감을 높이는 등 해결 방향과는 반대로 움직이며 사회안전망 예산 축소 등 위기 시 작동해야 할 안전시스템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둘째, 노동조합과의 불필요한 대립은 노정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대화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다른 보수 정부와 차별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한국노총과도 담을 쌓고 참여 명분조차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진영 전체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인데 결국 피해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하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노조 때리기는 당장 보수층의 지지를 일시적으로 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갈등과 분노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셋째, 저성장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책임소재를 따지고, 이로 인한 정부의 역량 낭비는 적절한 시점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정부 운영시스템에 공백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손실이며 국민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회 과반을 확보해 법 제도 정비를 추진할 권력을 희망하지만, 지금까지 능력을 보았을 때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을 때 정권 중반을 넘기게 되는 윤석열 정부는 임기 말 증후군인 레임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역시 사회적으로 갈등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실천과제는 미뤄두었던 노동운동 혁신을 지속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흥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윤석열정부, #노동개혁, #노조탄압, #노동시장이중구조,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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