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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편집자말]
경북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경북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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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천년 고도 경주. 경주는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으며 지금도 역사와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다. 석굴암, 불국사, 동궁과 월지 그리고 황리단길까지.

그러나 핵발전소가 경주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월성 핵발전소 4기와 신월성 핵발전소 2기,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사용후핵연료 조밀 건식 저장시설인 맥스터, 한국 원자력환경공단,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까지. 핵발전소 관련 거의 모든 시설이 경주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핵발전 시설은 토함산에 의해 천년 고도 경주를 즐길 수 있는 경주 시내와 생활권이 분리된 동경주(양남면, 문무대왕면, 감포읍)에 몰려 있어,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경북 경주의 핵발전소 분포도.
 경북 경주의 핵발전소 분포도.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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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월성 핵발전소가 있는 양남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홍보관과 월성 스포츠센터, '원전 수용성 전화 설문조사 안내' '원전 현장 인력양성원 교육 훈련생 모집' '월성 청소년 합창단 모집'이 적힌 현수막들 그리고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만든 농성장은 원자력발전소 홍보관 앞에 있다.

핵발전소로 더 다가가면, 곳곳에 '제한구역 알림: 본 지역은 원자력안전법 제89조에 따라 제한구역(EAB)으로 설정된 지역으로 일반인 출입 및 거주를 통제하는 지역입니다'라는 팻말들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월성핵발전소 원자로 반경 914m에 해당하며,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방사선관리구역 및 보전구역의 주변구역으로 피폭방사선량이 위원회가 정하는 값을 초과할 우려가 있는 장소"를 말한다.

'핵발전' 시설들과 핵발전소에서 반경 914m밖에 떨어지지 않아 일반인의 출입 및 거주를 엄격히 통제해야 하는 '제한구역(EAB)'은 천년의 고도 경주시와 좀처럼 어울리지도,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경주 시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지난 30여 년간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 

핵발전소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다.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탈원전'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던 문재인 전 정부에서 '탈탈원전'을 선언하고 '원전 최강국'을 다시 만들겠다는 윤석열 정부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름과 겨울의 극심한 날씨 변화와 '삼한사온'을 일상으로 겪어왔던 대한민국조차,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폭염·폭우와 폭설 등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변화 앞에서 핵발전소 이슈는 오래되고 해묵은 문제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심지어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사람 중에도 '핵발전소'를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지역과 전국에서 핵발전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활동을 들었다. 옅어지고 퇴색해버리려는 '탈핵'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잇고,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 위험과 불안 등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경주 월성 핵발전소 최인접마을인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사는 황분희씨를 지난 1월 27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씨.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씨.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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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이 고향이고 결혼한 이후에는 오랫동안 남편의 직장을 따라 울산에서 살았던 황분희씨는 남편의 좋지 않았던 건강 때문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서 3년 정도 쉬고,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울산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0분 거리에 아름다운 해당화가 핀 나아 해변이 있고, 집으로 돌아오는 좁은 길목에 소나무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조그맣게 농사지으며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건강이 차츰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건강한 과일, 채소들을 조금씩 키우기 시작했고, 현재는 과일나무들을 포함해 스무 가지가 넘는다. 
 
"우리 아저씨가 현대중공업에 다녔거든. 그때는 정말 회사에서 종일 살았어. 새벽 깜깜할 때 집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들어왔거든. 우리 아저씨가 총반장이라고 반장 중에서도 제일 높았어. 철판으로 배를 만들려면 재단을, 도면을 떠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하면 엄청난 손해가 나잖아. 아저씨 성격이 굉장히 꼼꼼하거든. 정확하게, 오차도 없이 만들었어.

근데 그렇게 일하니 스트레스를 받는 거야.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졌어. 무슨 특별한 병이 있는 게 아니라. 게다가 총반장이니까, 자기 밑에 있는 직원들한테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데, 그런 걸 못 하니까. 보너스를 나눠줘도, 왜 누군 얼만데 나는 이것 밖에 안주냐고 집 앞까지 와서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혼자 끙끙 앓았던 거지.

살이 빠지고 마르기 시작하는데, 음식도 제대로 못 먹으니 면역력이 약해져서 식중독 같은 것도 오고. 병원에 가니까 절대로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딱 말하더라고. 그래서 여기 경주로 오게 됐지."

황분희씨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체르노빌 사고가 났었던 1986년으로, 37년째 이곳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다. 황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혹시, 이사 올 때, 핵발전소가 있다는 걸 모르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기가 주저됐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마치, 이곳을, 핵발전소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사 온 당신 탓처럼 들릴까 봐, 주저하며 던진 질문에 황분희씨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몰랐지, 몰랐어. 이사 올 때 누구도 마을 1km 바로 바깥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어. 지금은 마을에서도 핵발전소가 잘 보이는데, 당시에는 왜 안 보였나 모르겠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근데, 알았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거야. 왜 그런지 알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30년 전에는 국가나 티비(텔레비전)에서, 학교에서 원전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만 말했잖아. 그냥 믿었겠지, 믿었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이 좋아서, 들어왔고 지금까지 살고 있지."
 
나아해변 뒤로 월성핵발전소가 보인다
▲ 월성핵발전소가 보이는 나아해변 나아해변 뒤로 월성핵발전소가 보인다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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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분희씨는 이 작은 마을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그 핵발전소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그냥 바보처럼 모르고 살았어"라는 말을 인터뷰하는 중간에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래도 마을살이는 좋았다. "이웃사촌이라고 멀리 사는 가족, 자식이 무슨 소용이야. 바로 앞집, 뒷집에 사는 이웃, 친구들이랑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내가 된장국 하면 와서 먹으라고 하고, 저기서 시락국 하면 나도 가서 얻어먹고 했지. 바깥에서 만나면 반갑고 너무 좋아서, 길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 떨고." 그렇게 이웃사촌인, 마을주민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던 이곳에, 큰딸 내외에게 같이 살자고, 손주들도 돌봐주겠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우리 세대만 해도 아들을 엄청 좋아했잖아. 근데, 내가 딸만 셋을 놓고 더는 아들 낳으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니까, 아저씨가 괜찮대. 딸만 키워도 괜찮다, 이래 가지고 딸만 키웠는데. 그 손자를 놓으니까 그렇게 좋더라고.

그래서 딸이 울산 시내에 살았는데,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내가 손녀랑 손자 키워 줄 테니 들어와서 살아라, 먼저 말했지. 할머니 밑에서 크면 애들 인성도 좋고. 너희는 걱정말고 일해라, 내가 애들 봐줄 거라고 했지."
 
하나의 사고가 그들의 일상과 행복이 실은 불안과 위험과 멀지 않음을, 그동안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가 공고하게 쌓아왔던 핵발전소 '안전 신화'를 조금씩 깨트리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 황분희씨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주대책위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경주시 월성핵발전소.
 경주시 월성핵발전소.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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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잇다>를 쓰게 된 이유

"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됐을 그 소녀는 엄마가 돼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혐오의 말들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어쩌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요구가, 각박한 사회 속 개인들에게는 너무도 과중한 요청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게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삶과 권리들이 망쳐지고 있다면,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잠시 귀 기울여주세요.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어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다'(https://brunch.co.kr/magazine/no-nuke)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월성핵발전소, #황분희, #나아리, #이주대책위, #상여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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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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