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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농 김가진과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 손자 김자동(88)은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있다.
 동농 김가진과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 손자 김자동(88)은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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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 선생은 잘 몰라도 그의 어머니로서 독립자금을 마련하고자 수차례 국내에 들어왔던 기록물 <녹두꽃>(뒤에 장강일기)으로 잘 알려진 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와 그의 남편(김자동의 아버지) 김의한, 그리고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에 대해서는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본문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이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국가의 서훈을 받았으며, 일제강점기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지내고 고령으로 상하이 임시정부의 고문으로 참여했던 할아버지는 망명 3년 만에 서거하여 현지에 묻혔다. 
 
귀국 이듬해인 1947년 20세 때의 김자동 회장과 부모님 김의한ㆍ정정화 여사
▲ 김자동 가족 귀국 이듬해인 1947년 20세 때의 김자동 회장과 부모님 김의한ㆍ정정화 여사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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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의한은 해방 후 6.25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하다가 운명하였다. 할아버지의 유해는 상하이 송경령능원에, 아버지는 평양 용궁동 재북인사 묘역에, 어머니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서, 이들 가족은 사후에도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김자동 선생은 아버지가 광복군의 조직훈련과장에 이어 정훈처 선전과장으로 재직할 때 열심히 도왔다.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에 이어 본인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이같은 경우는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인지, 두 딸과 맏사위가 8,9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한 집에서 노조위원장이 셋이나 나온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들의 거대한 생존투쟁의 장이다. 인간 역시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존재로서 공동체적 사회 안에서 상호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한다."(매토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 그런데 간혹 이타적 인간도 나타난다. 인간사회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는 바탕일 것이다. 이들 집안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것 같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지켜 본 김자동 선생은 '사무사(思無邪)'의 전형적 인품이었다. 공자가 시 300편을 모아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글귀를 제목으로 삼았다. "마음 속의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뜻이 담긴다.

선생은 가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아픈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얼굴은 언제가 온화하고, 정신은 맑았다. 매사에 욕심내지 않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지식인의 본성을 착실하게 지키면서 사셨다. 얼굴에 나타난 부드럽고 자상하고 포근한 모습은 마음 속에 '사무사 정신'이 깃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얼이 들어있는 굴'이라는 얼굴이 언제나 온화한 것은 '사무사'의 반영이리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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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말한다.

"인간 얼마나 위대한 걸작인가. 이성(理性)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고 이해는 신과 같다. 세계의 미요 만물의 영장이다."

그런데 실제의 인간세상은 이성보다는 감성, 천사와 같은 행동보다 악마의 길을 걷는 '만물의 끝장'을 보는 경우가 적지않다. 

나는 김자동 선생에게서 지식인의 인격체를 찾곤 하였다. 꽃에는 향기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현대사의 가파른 도정에서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 가운데는 이성적 인격체도 있고 동물적 비인격체도 있다. 비인격체들의 몰상식이 득세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타락상이 심해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지금 다시 이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터에 김자동 선생과 같은 '사무사' 정신의 인격체가 한없이 존경스럽고 그립다. 평전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투사와 속물들이 공존하던 시대에 선생은 결코 투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간지대 회색분자는 더욱 아니었다. 그가 가장 멀리하고자 했던 유형이다. 투사가 아닌 오롯이 깨어있는 상식인으로 살면서 속물이 되지 않고 고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드문 원로 중의 한 분이셨다. 

그의 지성에는 품격이 있었고 시대정신이 자리잡아서 후학들의 모범을 보였으며, 전문성과 친화력으로 많은 동지·후학을 끌어 모았다. 노후년에 손수 이끈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진의 면면을 보면, 우리나라 어느 단체에 그만한 각계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었는가 묻게한다. 

김자동 선생의 깊고 넓은 사유와 고되고 험난했던 고빗길을 찾아 떠난다. 동반자들의 질정과 참여가 있었으면 싶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자동, #김자동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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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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