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 이전만 해도 연간 천만 명이 넘는 이들이 해외여행을 떠났고, 그들 중 네 명 중 한 명은 일본으로 향했다. 닫혀있던 하늘길이 열리자 여행에 목마른 이들이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곳 역시 일본이었다. 당장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 징용공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반감이 크지만, 역사는 역사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최근 여행업계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외국 도시 1위부터 3위가 각각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 후쿠오카였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순위의 변동은 있을지언정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적어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최애' 여행지임엔 틀림없다.

이 와중에 무슨 일본 여행이냐고 나무라는 목소리가 크다. 얼마 전 한 관광객이 일본 온천 여행 도중 '히트 쇼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급작스러운 체온 변화로 심장박동이 멎은 것이다. 그런데, 비보에 달린 댓글은 차마 읽기조차 민망한 내용 일색이었다. 불쌍하지 않다는 정도는 약과다. '친일행위를 하다 죽었으니 하소연 말라'는 저주에 가까운 댓글도 달렸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그렇듯 험한 반응을 보였을까. 장담하건대,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 여행을 백안시하는 건, 식민 수탈의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몰역사성에 대한 분노가 워낙 뿌리 깊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본 여행이 그들의 비뚤어진 역사의식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거라고 여긴다.

후쿠오카에서 만난 한국인들 

역사 교사로서, 나 역시 일본에 대한 반감이 아예 없진 않다. 상품 겉면에 'Made in Japan'이라고 적혀있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집었다 내려놓게 되고, 일본인들 특유의 친절함을 두고도 한때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치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2외국어 과목 선택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일본어보다 차라리 중국어가 낫다고 은근히 종용한 적도 있다.

시내 쇼핑센터나 공항 면세점에서 일본 제품을 잔뜩 산 뒤 제 몸만 한 캐리어에 담아 돌아오는 관광객들을 보면 괜히 화가 치밀기도 한다. 국내의 멀쩡한 놀이공원을 놔두고 일본까지 가서 꾸역꾸역 놀이공원을 찾아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무라이 복장이나 기모노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이들에겐 부러 다가가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속이 후련할진 몰라도 일본이 다짜고짜 몽니 부리듯 배척할 나라는 아니다. 때론 오랜 전쟁을 벌였고 식민 지배라는 생채기도 났지만, 고래로 가장 활발하게 문물을 교류한 가까운 이웃 나라다. 일본인이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를 알아야 하듯, 우리도 역사의 면면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을 공부해야만 한다.

여행을 마무리하던 귀국 전날, 후쿠오카의 도심을 거닐며 새삼 곱씹어본 상념이다. 어디 일본뿐이랴마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은 천편일률적이다. 시중의 여행안내서나 여행자 블로그에서 소개한 곳들만 찾다 보니 어딜 가나 한국인 천지다. 후쿠오카만 해도 후쿠오카 타워와 캐널시티, 나카스 강변, 모모치 해변, 오호리 공원 등이 공통 추천지다.

하나같이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곳들이다.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거나 일단 들어가면 쇼핑을 억제할 수 없어서다.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도시 경관을 보고 그다지 특이할 게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단지 외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지갑을 연다. 누구 말마따나, 값비싼 해외여행 경비는 오로지 다녀왔다는 경험, 곧 '사진 촬영료'인지도 모른다.

후쿠오카에서 스치듯 만난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먼저 다녀간 이들이 방문한 곳을 순례하듯 따라가는 획일적인 여행인데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한 손엔 스마트폰을, 다른 한 손에 지갑을 든 채로 종일 무언가를 검색하고 소비하면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다. 후쿠오카에서 한국인 찾기는 누워서 떡 먹기다.

이런 여행이라면 굳이 일본까지 건너와 돈을 쓸 이유가 없을 것도 같다. 후쿠오카 타워보다 열 배는 더 전망이 좋은 곳이 널려있고, 캐널시티의 명물이라는 하카타 라멘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스시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고, 봄날 오호리 공원의 벚꽃보다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의 풍광이 열 배는 더 멋지다.

'남다른' 일본 여행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후쿠오카의 추천 명소는 관광객 각자의 취향을 고려하기는커녕 천차만별의 취향을 단숨에 획일화시켜버린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가봐야 할 곳이라며 추천한 여행안내서도 기실 다른 나라 것을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호주인과 프랑스인의 취향을 애먼 우리가 흉내 내는 꼴이다.
 
비둘기까지 조각해 넣은 평화의 동상 뒤로 후쿠오카 호국 신사가 보인다.
 비둘기까지 조각해 넣은 평화의 동상 뒤로 후쿠오카 호국 신사가 보인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호국 신사와 후쿠오카 구치소에 가보셨나요? 

시중의 여행안내서에는 거의 적혀있지 않지만, 후쿠오카에서 부러 짬을 내 가볼 만한 숨은 명소 두 곳을 소개한다. '남다른'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다. 한 곳은 오호리 공원 남쪽에 자리한 호국 신사고, 나머지 한 곳은 모모치 해변에서 가까운 후쿠오카 구치소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핏빛 역사를 잊지 않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찾아야 하는 곳이다.

오호리 공원이야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의 하나다. 봄철 호수를 에워싼 벚꽃으로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오리배를 타거나 호숫가를 한 바퀴 산책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후쿠오카를 찾는 이들이라면 열이면 열 모두 이곳을 방문한다. 오호리 공원을 가지 않았다면 후쿠오카를 간 게 아니라는 말까지 있다.

오호리 공원은 과거 후쿠오카의 중심이었다. 이곳 호숫가에 후쿠오카 성이 세워져 있다. 지금은 허물어져 몇몇 성벽만 남은 상태지만, 천수각이 있었을 법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광은 장쾌한 눈맛을 선사한다. 후쿠오카 타워와 돔구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바다 건너 노코노시마 섬까지 보인다. 성 아래로는 시립 미술관이 자리한다.
 
후쿠오카 호국 신사 입구 좌측에 세워진 특공대원 기림비와 동상. 태평양 전쟁 당시 천황을 위해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이다.
 후쿠오카 호국 신사 입구 좌측에 세워진 특공대원 기림비와 동상. 태평양 전쟁 당시 천황을 위해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이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호국 신사는 시립 미술관 주차장 건너편 숲에 둘러싸여 있다. 전몰자와 공무 중 순직자를 기리는 신사로, 도쿄와 가나가와현을 제외한 일본 내 모든 부와 현에 세워져 있다. 곧, 이곳은 후쿠오카현 출신 희생자들을 한데 모은 현충 시설이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유족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저 그런 현충 시설로 눙치기에 눈엣가시 같은 곳이기도 하다. 정문 격인 도리이 오른편에 세워진 '평화의 상'과 왼편의 '특공대 전몰자 위령비'는 태평양 전쟁을 비롯해 숱한 침략 전쟁을 일으킨 그들의 죄과를 감추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엎드려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피해자 코스프레'를 서슴지 않는 작태다.

그것들 앞에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는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을 추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르고, '패전' 대신 '종전'이라고 쓴다. 자신의 그릇된 역사를 타자화하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과거 그들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당한 주변국 국민을 '2차 가해'하는 꼴이다.

일본의 신사에, 그것도 전몰자를 기린다는 신사에 가서 예를 표할 한국인은 없다. 다만, 온갖 기념물을 세워 자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의 저열한 술책을 깨달을 수 있다면, 반면교사로서 한 번쯤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호국 신사가 이른바 '국뽕'의 극단적인 형태일진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후쿠오카 구치소 전경. 윤동주와 송몽규가 1944년 해방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옥사한 현장이다.
 후쿠오카 구치소 전경. 윤동주와 송몽규가 1944년 해방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옥사한 현장이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필수 관광 코스'라는 모모치 해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후쿠오카 구치소는 주변에 무슨 특별한 볼거리가 있어서 찾는 곳은 아니다. 사방이 육중하고 높다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의 주변 풍광은 사뭇 살벌하기까지 하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는커녕 멀찍이 떨어져 사진 한 장 찍는 데도 바짝 긴장될 정도다.

그곳은 과거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인 윤동주와 그의 쌍둥이와도 같은 사촌 송몽규가 옥사한 현장이다. 몇 해 전 영화 <동주>가 개봉되면서 널리 알려진 두 독립운동가는 일제의 모진 고문에 해방을 고작 몇 달 앞두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들의 죄목은 현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지만, 그들이 이곳 후쿠오카의 차디찬 감옥에서 옥사했다는 걸 아는 이도 거의 없다. 심지어 그들의 고향이 두만강 너머 간도 땅이라는 사실조차 낯설어한다. 그저 윤동주가 남긴 시 몇 편과 송몽규라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영화 <동주>가 아니었다면, 송몽규가 누구인지도 까맣게 몰랐을 터다.

그러나 이곳엔 그들을 떠올릴 만한 흔적이 전혀 없다. 정문 쪽엔 주차장으로 쓰이는 터가 비교적 넓고, 반대편 북쪽에는 어린이 놀이터로 쓰이는 모모치 공원이 조성돼있어, 어디든 조그만 표지석이라도 세움직 한데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글이 부담스럽다면, 그들이 유학을 위해 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써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창씨개명한 윤동주의 이름은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이고, 송몽규는 '소무라 무게이(宋村夢奎)'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인 관광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곳을 이따금 일본인들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윤동주가 옥사한 날짜인 2월 16일에는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본 전역에서 찾아와 모모치 공원에서 추도식을 연다고 한다. 소수일지언정 윤동주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일본인과 그를 머리로 기억하는 다수의 한국인이 그렇게 겹쳐진다.
 
놀이터로 쓰이는 모모치 공원 모습. 철책 너머가 후쿠오카 구치소 건물이다. 윤동주가 옥사한 날짜인 2월 16일에 그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이 전국에서 모여 이곳에서 추모식을 연다고 한다.
 놀이터로 쓰이는 모모치 공원 모습. 철책 너머가 후쿠오카 구치소 건물이다. 윤동주가 옥사한 날짜인 2월 16일에 그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이 전국에서 모여 이곳에서 추모식을 연다고 한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설마 우리보다 일본인이 더 윤동주와 송몽규를 아낄 리 없다. 단지 그들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배운 적이 없어서다. 몰라서 찾지 않은 것일 뿐, 안다면 후쿠오카를 찾는 한국인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러자면 우리나라 여행업계의 관심과 정부의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추도식에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호국 신사에 가서 역사 왜곡의 실상을 깨닫고, 구치소를 찾아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애를 기억하는 후쿠오카 여행이라면, 어느 누가 일본에 갔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일본은 무조건 배척해야 할 '악당의 소굴'이 아니라, 반면교사 삼을 것도 많고 정면교사로서 배울 점도 많은 나라다. 일본으로의 천편일률적 여행도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태그:#일본여행, #후쿠오카 호국 신사, #후쿠오카 구치소, #윤동주, #송몽규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