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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고,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웃음이 입에 걸리고,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이 행복해지는... 내겐 빵이 그렇다는 얘기다.

빵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내 기억 속 빵을 처음 접한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때, 학교 근처 문구점서 팔던 피카츄 빵. 그때는 빵맛보다 스티커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하루에 삼백원씩 받는 용돈을 몽땅 빵에 때려박았다. 엄마한테 월말평가 점수로 혼날 때마다 피카츄 빵을 사먹으며 어떤 스티커가 들어있을까 상상하며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어들곤 했다.

곰보빵 마냥 퍽퍽했던 고삼 수험시절엔 '뉴욕제과' 소시지빵에서 맛의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시골에서 살아 변변한 제과점 하나 없었는데 독서실 근처에 혜성처럼 나타난 '뉴욕제과'는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늦은 밤 공부하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올 때면 독서실 바로 앞에 있는 그 뉴욕제과로 달려가 홀린듯 소시지빵을 사먹었다. 한 입 베어물면 햄에서 터져나오는 육즙과 소스의 짭짤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마음의 허기짐까지 달래주는 최고의 맛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소시지빵의 강렬한 그 맛은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했다.

대학 시절엔 소도시의 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처음 접한 프랜차이즈 빵집의 가지각색 세련된 빵은 내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 중에서 단연코 일등은 롤케이크. 기름진 촉촉함과 하얀 크림이 조화로운 이 빵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혀끝에 녹아들던 부드러움과 달콤함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과외로 용돈을 벌던 시절, 그 롤케이크를 팔던 프랜차이즈 빵집에 용돈의 삼분의 일 이상을 썼다. 얼음장 같았던 임용고시의 고비는 혀끝에 남긴 롤케이크가 주는 포근한 여운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버텨올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빵집 문 한짝 정도는 내 지분이 있지 않을까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대전에서 처음 교직에 발을 디디게 된 순간 나를 홀린 빵은 단연코 지역 유명 빵집의 튀김소보로. 신학기 준비를 하느라 물 한 모금 못마실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던 개학 전날, 교실을 순회하시던 교감선생님이 교실 정리를 하느라 먼지투성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손에 따끈한 튀김소보루 하나를 주셨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혀에 휘감기는 고소한 소보로와 적당히 달달한 팥앙금, 부드러운 빵피는 피로를 단숨에 낚아채서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그 이후로 내 작디 작은 월급의 5프로 정도는 튀김소보로에 양보했다. 그 튀김소보로의 든든한 단맛은 모든 것이 서툴어 눈물로 얼룩진 첫 사회 생활을 견디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현실은?쓴데?빵이?입 안만은?달게?해주었다. 동네빵집의 초코식빵.
 현실은?쓴데?빵이?입 안만은?달게?해주었다. 동네빵집의 초코식빵.
ⓒ 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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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여전히 난 빵순이로 살아가고 있다. 육아가 고단할 때면 습관적으로 동네 작은 빵집을 찾는다. 요즘 내 얇은 지갑을 스르륵 열리게 하는 빵은 바로 초코식빵! 

식빵 겉면은 포근한 이불같은 소보로가 자잘하게 얹혀 있고 속에는 달콤한 초코 시트가 소용돌이 된 부드러운 빵이다. 그 빵을 한 입 가득 앙 베어물면 혀끝을 감도는 폭신하고 달콤한 빵의 여운에 육아의 힘듦이 일순간 날아갔다. 사장님은 아마도 초코식빵 반죽에 자양강장제 한 스푼을 넣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육아에 지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걷다가 다다른 그 동네 빵집. 빵집을 밝힌 따스한 조명이 이리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하고 달큰한 빵 냄새, 그 빵들이 뿜어내는 온기. 지친 나를 다독이기엔 그곳은 너무나 완벽했다. 홀린 듯 초코식빵을 집어 계산대에 놓는데 사장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감정을 들킬까 두려워 계산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게를 빠져나왔다. 무심결에 봉지를 열었는데 뜨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빵 옆에 무심히 자리한 작은 초코 쿠키 하나. 사장님의 말 없는 위로였다. 갓 구운 빵의 온기같은 사장님의 마음이 내게 닿아 꽁꽁 언 내 마음을 녹여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안다. 내게 빵이 왜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현실은 쓴데 빵이 입 안만은 달게 해주었다. 입안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간 빵의 단맛과 온기가 내 혈관을 타고 돌며 내 영혼의 허기짐까지 채워주었던 것이다.

그런 빵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단단하게 버틸 수 있었다. 내게 그러했듯 누군가의 마음 속에도 영혼의 허기짐을 채워준 추억의 빵이 하나쯤은 있기를 소망한다. 그 빵이 준 달콤한 기억으로 쓴 현실을 조금이나마 단단하게 버틸 수 있길. 

태그:#인생의빵, #빵순이, #나의빵이야기, #현실은쓰고빵은달다, #나를키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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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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