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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 시민(자료사진).
 2019년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 시민(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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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미성년자 5명이 지난 8일(현지시각) 소년원 송치를 선고받았다. 홍콩 독립 지지 단체에서 활동하며 반정부 혁명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7월 체포된 이들이었다. 홍콩에서 미성년자가 국가보안법으로 판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법률에 따라 이들은 최대 3년 간 소년원에 수감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의 파기로 시작된 2014년 9월 우산혁명. 범죄인 인도법으로 촉발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0년대 들어 우리가 기억하는 홍콩의 역사는 자유와 민주화를 말하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2020년 6월, 중국 정부에 의해 이러한 흐름은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 홍콩의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며 대규모의 민주진영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등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그 판결 과정에서 배심원을 배제한 비공개 재판이 가능해졌다. 영미법을 채택하고 있는 홍콩에서는 심각한 사법권 침해였다.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통해 이 법안이 통과된 직후, 홍콩 당국은 적극적으로 법을 집행했다. 법 시행 첫날부터 법안 반대 시위대 370여 명이 체포됐고, 이들 중 10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더해졌다. 민주파 정치인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선거 출마가 금지됐고, 곧 현직 의원도 '비애국적'이라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활동가 조슈아 웡, 아그네스 초우, 이반 람 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위협을 느낀 민주파 인사들의 해외 망명이 이어졌다. 정부비판적 언론 <빈과일보>가 폐간당했고, 기자들은 체포됐다. 거리는 그렇게 적막해졌다.

국가의 안보란 중요하다. 홍콩이라는 정치주체 역시 그 안전과 존립을 보장할 권리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지켜낸 홍콩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폭력으로 억압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국가를 만들었는가. 우리가 그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지켜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홍콩의 국가보안법은 그 본질적인 의문에 답하지 않는다. 단지 홍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홍콩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로.

중국 정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엇이 홍콩의 안전과 존재 기반을 무너뜨릴 정도의 강력한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된 홍콩의 시민들은 그리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게 해 달라고 말했고, 말하고 모일 자유를 달라고 말했다. 사실 이것은 홍콩인들이 그간 누리던 최소한의 자유에서 별로 나아가지 않은 요구였다. 약속한 자치를 약속한 기간까지 이어가게 해 달라는 요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이 그것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국은 왜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폭력으로 묵살하고, 시위의 바람이 사그라들자 국가보안법을 입안해 홍콩 시민에 대한 복수를 이어가고 있을까.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스스로의 체제가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홍콩의 시민들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숨길 수 있다. 국가는 힘이 세고, 그 폭력은 전방위적이다. 억압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억압이 커질 수록 저항도 커지기 마련이다. 저항이 커지면 억압은 더 커지고, 더 커진 억압을 먹고 저항은 더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 커져가는 억압을 국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렇다면 억압은 정도를 넘어서게 되고, 이제까지 모인 저항의 에너지는 한꺼번에 분출된다. 곧 통치의 수단으로서 억압에 의존하는 정부는 그 시점의 차이는 있어도, 필연적으로 무너진다. 억압은 억압만을 남기고, 다른 무엇도 남기지 못한다.

폐쇄하고 통제하는 국가는 결코 강할 수 없다. 강하다면 폐쇄할 이유도 통제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새로운 천하질서를 말하고,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말하고 있다. 성장과 패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정작 홍콩 시민의 표현에는 강력한 억압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이것은 강성하지 못함의 발로다. 홍콩 시민의 말 한 마디에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는 정부임을 시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는 여전히 강성하다. 권위주의 정부를 견제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크지 않다. 중국 정부의 국가통제는 여전히 무너질 줄 모르고 강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강력한 탄압을 맞은 홍콩의 거리는 조용하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사회 통제가 강화된 중국 각지에서도 조직적인 저항의 움직임은 썩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곱씹게 될 때면,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기 두 달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했던 발언 하나를 떠올리곤 한다.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홍콩, #민주주의, #시대혁명,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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