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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날, 민생 현장에 연대하는 시민 모임인 '더불어삶'에서는 쿠팡 본사 앞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지지방문을 다녀왔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강민정 사무국장과 함께 저녁 선전전 뒤 짧게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래는 간담회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에도 집이 아니라 거리 위에서 차례를 지내며 농성장을 지키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팡 노동자들이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일할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연대,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합니다.[기자말]
서울 잠실역 7번 출구에서 걸어가면 쿠팡 농성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노동자들은 폭염 대책 마련, 생활임금 보장,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3일 대표 면담을 요청했고, 요청이 거부되자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 잠실역 7번 출구에서 걸어가면 쿠팡 농성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노동자들은 폭염 대책 마련, 생활임금 보장,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3일 대표 면담을 요청했고, 요청이 거부되자 농성을 시작했다.
ⓒ 더불어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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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걷다보면 '유급휴게시간 보장, 폭염대책 마련'이라고 크게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잠실 쿠팡 본사 앞에 꾸려진,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의 쿠팡물류센터지회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노동자들은 폭염 대책 마련, 생활임금 보장,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3일 쿠팡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쿠팡 본사 1층 로비에서 농성을 했고, 로비 점거농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에 따르면 농성 시작 한 달이 지나던 7월 23일, 사측은 상의 없이 노조의 짐을 건물 밖으로 내놓았고 당시 로비 농성을 지키던 노조원 1명까지 내쫓았다고 한다.  물류센터 노조는 이후 본사 건물 앞에 텐트를 설치해 농성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현장서 마주친 건장한 사내들... 노조의 요구, 건강 직결되는 냉·난방과 휴게시간
 
쿠팡 본사 건물 앞에 용역 경비원들이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 서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본사 로비에서 쫓겨나 본사 건물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후 생겨난 풍경이라고 한다.
 쿠팡 본사 건물 앞에 용역 경비원들이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 서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본사 로비에서 쫓겨나 본사 건물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후 생겨난 풍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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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니, 건장한 체격의 젋은 남성들이 쿠팡 본사 건물의 입구들을 지키고 서있다. 물류센터 노조원들이 본사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용역 경비들이다. 입구 회전문에는 '임직원분들께서는 사원증 패용 부탁드립니다'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고, 용역 경비원들은 건물이 출입하는 모든 이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물류센터 노조가 본사 앞에 농성장을 꾸린 직후부터 생겨난 풍경이라고.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지부 강민정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이들 경비원은 2교대로 근무하며, 일당 25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는 노조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행동하기 전, 과거 영하 11도 한파에도 1인당 핫팩 1개씩 제공하는 것조차 주저하던 쿠팡 측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농성장에 가장 크게 만들어 걸어놓은 현수막의 내용처럼, 물류센터 노조는 여러 요구 중에서도 '냉·난방 문제 해결'과 '유급휴게시간 보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냉·난방이 노조의 요구라니?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할 냉·난방 문제가 요구사항 전면에 있는 이유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 노동환경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었지만, 폭염 대책은 여전히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폭염시 적당한 휴식과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면 노동자는 열사병을 넘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한파도 마찬가지다. 물류센터의 재고 관리를 물류센터의 노동 환경 개선보다 우선시 하는 쿠팡의 '반(反) 노동적' 행보 아래, 일용직과 계약직이 대부분인 노동자들의 생명만 깎여나간다는 푸념이 들린다. 한 노동자의 말이다.
 
"여름인데 선풍기도 고장난 게 너무 많아요. 고치지도 않고 그냥 걸어놓아요. 그나마 있는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이 불어서 전혀 시원하지 않아요. 이 물류센터 자체가 조립식 철판으로 돼 있는 거라서 하루종일 열을 받았다가 밤에는 그 열기를 다 흡수해요. 이 열기를 철판이 다시 뿜어내는데 나갈 곳이 없으니까 그 안에 계속 있는거죠. 완전히 사우나 찜통이에요, 찜통. 들어가면 숨이 턱 막혀. 안 해본 사람들은 몰라."
 
쿠팡은 물류센터에 고객 주문 상품을 처리하는 전 과정인 '풀필먼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상당하다. 그러나 최근에 지어진 곳들을 제외하면 쿠팡 물류센터 건물은 기본적으로 '물류'를 위해서 설계되었다. 자재를 가능한 많이, 최대한 이동하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에, 환기를 비롯해 냉·난방 시설이 들어설 공간과 여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노조의 폭염과 한파 대책 요구에 대해 쿠팡은 '건물 설계상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알림만 반복한다고 한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져도 그대로 일을 지속한다. 또 다른 노동자의 말이다. 그는 그나마, 물류센터 노조의 노동자들이 에어컨 설치 등 폭염 대책을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쉴 시간이 조금이나마 확보되었다고 했다. 
 
"노조가 생긴 지 한 15개월 됐네요. 공식적으로 휴게 시간을 정해서 주는 건 아니지만, 노조가 생긴 뒤 올 여름에는 쉴 시간도 조금 생겼어요. 원래 식사 시간이 1시간이잖아요, 그 1시간에서 뺀 10분이랑 무급 10분을 합해서 20분 쉴 시간을 줘요. 그런 데다 물류센터마다  온도 차가 달라서, 폭염 정도가 심한 곳은 휴게 시간을 조금 더 주죠." (고용노동부의 폭염 지침에 따르면 폭염 정도에 따라 휴게 시간이 달라진다. 그러나 폭염 정도가 심해 더 많이 제공되는 휴게시간은, 모두 무급이다.)

폭염엔 선풍기, 한파엔 핫팩... 얼마나 더 죽어야 바뀔 건가
  
폭염이 아니더라도 이미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이 거의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터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을 새는 등 심야근무 뒤 과로사, 이후 산재 인정을 받은 고 장덕준씨를 비롯해 목숨을 잃은 쿠팡 노동자들은 알려진 것만 여럿이다. 폭염 시기 받았던 짧은 휴게시간은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계절이 되었으니 사라진다. '유급 휴게시간 보장' 요구가 전면에 있는 이유다.
 
"추위가 어느 정도냐면, 저희가 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데 PDA를 사용하려니 터치가 안 되니까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요. 끝에만 손가락이 나오는데 일하다보면 얼얼해요. 동상걸린 것처럼. 그정도로 많이 추워요. 그런데 추운 거를 이기려고 진짜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많이 움직이면 덜 춥잖아요."
 
앞서 언급했지만 쿠팡은 기록적인 한파에도 1인당 핫팩 1개만 제공했었다. 한 노동자 말에 따르면, 핫팩 하나를 더 달라고 요청했을 땐 '없다. 다른 분도 써야 되지 않나. 뒤에 일할 다른 조 사람들도 생각하시라'라며 오히려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난방 장치는커녕 한파 대책도 없는 속에서 2021년 1월 영하 11도의 어느날,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샘근무를 하던 중년 여성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외에도 강추위 속에서 일하던 쿠팡 노동자들의 심혈관계 질환 돌연사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쿠팡은 "회사에서는 모든 직원들에게 핫팩 등을 제공하면서도 각 작업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는 방한복 등의 보호 장구를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옛날에는요, 화장실 가는 것도 몇 시 몇 분에 갔다고 휴대폰 번호를 썼어요. 화장실 갔다 와서도 언제 왔다고 번호를 쓰고."
 
한편, 화장실 다녀오는데 휴대폰 번호와 시간까지 적었다는 이야기에 귀를 의심했다. 소위 '혁신 기업'이 성인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그러나 물류센터 노조가 인권 침해라며 항의하자 바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힘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적어야했던 쿠팡... 노조 생기자 바뀌기 시작했다

아는가? 쿠팡 노동자들은 여전히 쿠팡 물류센터에 휴대폰을 소지하고 들어가지 못한다. 군대도 휴대폰 반입이 가능한 사회인데 말이다. 이를 두고 노조는 '휴대폰을 가지고 가면 인권·노동권을 침해하는 증거 자료를 많이 확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단하려는 의도'일 것이라 추측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쿠팡 측은 휴대전화를 소지할 시 안전문제가 우려돼 반입을 막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노동자들은 휴대폰 등 연락수단이 없어 발빠른 대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강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 국회의원들도 쿠팡 물류센터에 방문해 확인하고 때로는 직접 체험도 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행동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들도 물류센터에 보좌관이랑 같이 일하고 오신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갔다오면, 뭔가를 바꿔 놔야죠. (단순히)여기 온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은 법을 바꿀 수 있으니까,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법안을 제대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 걸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지 방문을 간 날은 오랜만에 비구름 없이 맑았고 선선한 바람까지 부는 가을 날씨였다. 그러나 간담회가 끝날 즈음 "(이제) 진짜 겨울 준비를 해야하나"라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사무국장은 그럼에도 1인당 1개씩만 지급하던 얼음물과 핫팩을 여러개씩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들 목소리를 적은 게시물을 당당히 부착할 수 있는 게시판도 얻어내는 등 물류센터 노조가 조금씩 쿠팡 노동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내비쳤다.

물류센터 내 코로나 집단감염의 피해자 중 한명으로 이에 대해 쿠팡에 항의하다가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하는 사무국장. 그럼에도 그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싸워나가는 게 "할 만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물류센터 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최근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한국 사회에서 고용 3위 기업이 된 쿠팡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일용직·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쿠팡 노동자들이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

태그:#쿠팡 물류센터, #폭염대책, #노동환경 개선, #쿠팡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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