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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를 방문한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연수단 일행. 왼쪽에서 네번째가 오오쿠보 학장,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 서울시립대학교를 방문한 가나자와 세이료 대학 연수단 일행 서울시립대학교를 방문한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연수단 일행. 왼쪽에서 네번째가 오오쿠보 학장,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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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굵은 빗줄기를 뿌렸던 5일, 비바람을 헤치고 필자가 몸담은 서울시립대학교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의 발달한 IT산업과 행정 정보화 선진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학생과 교수 일행이었다. 이들은 서울시립대 학생들과 반나절을 보내며 공동 관심사를 주고받았다.

그동안 한일관계는 위태롭기는 해도 마지막 창구는 열어 놨다. 그러나 최근 2년 넘게 한일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19였지만 실상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한국 정부가 맞불을 놓으면서 촉발됐다. 양국 정부는 대일 및 대한 정책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며 반일과 혐한 감정을 부채질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사이에 다소 변화 움직임은 있지만 장밋빛 관계를 속단하기 어렵다.

한때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한해 1000만 명이 오갔다. 2018년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700만 명,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은 300만 명으로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순망치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경제보복 조치와 코로나19 이후 양국관계는 금이 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현해탄에는 변화 조짐이 보인다. 지난 8월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1만1789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238% 급증했다. 2020년 2월 이전 20만~30만 명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하지만 지난해 4월 360명까지 급락했던 걸 감안하면 의미 있는 반전이다. 또 최근 한일 양국이 입국 전 코로나 검사를 면제하자 일본 여행 예약도 5배 껑충 뛰었다는 보도도 뒤따르고 있다.

세이료대학 방한이 지닌 의미
 
유소연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이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 유소연 유소연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이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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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관계가 냉랭한 상황에서 세이료대학 방한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외교 정상화에 앞선 민간 차원 교류는 관계 개선에 디딤돌로 작용한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은 "한국과 일본 간 외교 정상화는 양국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면서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 지역대학에 가나자와 세이료대학이 좋은 선례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오쿠보 세이료대학 학장 또한 "일본과 한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며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 교류가 학생들에게 이해 폭을 넓혀주는 동시에 새로운 한일관계에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양국 정상회담이 추진 중이고, 오는 7일 '서울안보대화'에서는 6년 만에 한일 국방부 차관급 사이에 양자회담이 예정돼 있다. 양국은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을 비롯해 다양한 국방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3일, 박진 외교부장관은 '제10회 한일미래대화 포럼' 축사에서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을 지속한 결과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가 마련되고 있다"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이어 "일본 외무상과 네 차례 만나 진지한 협의를 이어왔다. 소통 강화와 상호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조속한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박 장관이 언급한 현안은 일본 전범 기업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거부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된 상황을 의미한다. 박 장관은 이날 한일 양국 국민 간 호감도가 2019년 일본제품 불매운동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두 기관의 공동 보고서를 언급하고, 특히 양국 젊은 층이 상대국 대중문화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야시 일본 외무상 역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며 현재 전략 환경을 고려할 때 한일·한미일 협력 진전이 지금처럼 중요할 때는 없다"며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한국 측과 긴밀하게 의사소통해 나갈 생각"이라고 화답했다.

한국 민간 싱크탱크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 싱크탱크 '겐론 NPO'(言論 NPO)이 지난 1일 발표한 '2022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보고서는 이러한 최근 상황과 맞물려 주목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8명은 "한일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양국 국민 상호 호감도도 2019년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 응답자 81.1%, 일본인 응답자 53.4%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한국인 응답 비율은 2020년 61.2%, 2021년 71.1%, 2022년 81.1%로 증가 추세에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인 긍정 응답도 38.8%, 46.7%, 53.4%로 늘었다.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학생들이 강의를 마친 뒤 서울시립대학 학생들과 기념 촬영
▲ 공동 수업 가나자와 세이료대학 학생들이 강의를 마친 뒤 서울시립대학 학생들과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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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국민을 묶는 사다리는 대중문화였다. "상대국 대중문화 소비를 즐겨 할 경우 좋은 인상을 느끼게 된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지난해 67.0%에서 올해 81.3%로 증가했다. 같은 항목에서 일본인 긍정 답변도 81.2%에서 86.2%로 늘었다. 서울시립대학을 방문한 세이료대학 학생들 또한 예외 없이 K팝과 한국 드라마,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치적으로는 대립하고 불편해도 밑바닥 정서는 대중문화를 매개체로 꾸준히 교류해 왔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이날 양국 청년들은 서로에 대한 적의와 편견을 내려놓고 흔연스럽게 소통했다.

사실 한일관계는 진정을 갖고 대해도 깨지기 쉬운 유리구슬과 같다. 태풍 진로처럼 예측도 어렵다. 그동안 양국 정치인들은 정책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일과 혐한을 부추기는 퇴행 정치를 반복해 왔다.

미중 갈등과 경제위기가 고조되는 불확실한 시대에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할 때다. 섣부른 희망은 경계하되 실질적인 관계 구축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 양국 정상은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태풍이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건 팩트다. 지난 2년 반 넘도록 한국과 일본을 휩쓴 반일과 혐한 태풍도 긍정의 역설로 작용할 수 있다. 언제까지 미래세대에게 증오와 반목을 물려 줄 것인지 성찰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태그:#한일관계, #공동 이익, #서울시립대학, #노노재팬, #태풍 힌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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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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