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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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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여러 달 동안 병환에 계셨지만 막상 별세하심에 가슴 먹먹하다. 백기완 선생·한승헌 변호사에 이어 민족·민주진영의 큰 어른들이 떠나면서 빈 자리가 너무 넓고 깊다. 다시 독거미 발이 스멀거리는 데 홀연히 떠나신 분들의 존재감이 새삼 도드라진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겹치는 4차산업혁명기에 미·중의 패권다툼과 남북의 불화가 극심하여 언제 이땅으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위중한 시기여서 이 분야에 전문가였던 김자동 선생의 부재는 더욱 가슴 아리게 한다.

선생의 개인사는 한국현대사의 한 축이고, 가족사는 대한제국에서 시작되는 우리 근현대사의 압축이며 독립운동의 정사에 속한다. 〈한겨레〉 부고 기사의 제목대로 "파란의 한국사 겪어낸 '임정의 아들이자 마지막 증언자'"였다. 임시정부의 '아들'이라 해서 손색이 없고 후반생의 과제로 삼았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짓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마지막 증언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학업을 마치고 언론계에 투신한 선생은 얄타회담의 특종기사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소속 언론사의 논조와 방향이 정도가 아님을 알고, 4월혁명으로 창간한 진보언론 〈민족일보〉에 입사했다.

5.16쿠데타를 주동한 박정희가 미국에 자신의 좌익전력 세탁용으로 조용수 사장과 〈민족일보〉를 제물로 삼았다. 통한을 삼키며 언론계를 떠난 후 베트남과 중국의 여러 지역에 방직기계 공장을 세워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2017년 12월 16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 및 애국지사 후손, 정부 관계자와 함께 중국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중앙계단에서 환국 72년 만에 기념촬영을 하다(앞줄 왼쪽 두번째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영부인, 김자동 회장, 둘째 딸 김선현).
 2017년 12월 16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 및 애국지사 후손, 정부 관계자와 함께 중국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중앙계단에서 환국 72년 만에 기념촬영을 하다(앞줄 왼쪽 두번째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영부인, 김자동 회장, 둘째 딸 김선현).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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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성공적인 경영자의 길을 접고 역사의 길에 나섰다.

임시정부와 할아버지, 부모님의 못다한 역할, 그리고 조용수와 〈민족일보〉의 누명을 벗기는 작업이었다. 축약하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민주언론의 정맥을 지키는 일이다.

영·중·일어에 능했던 터라 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금서의 딱지가 붙은 〈한국전쟁의 기원〉, 〈레닌의 회상〉, 〈모택동 전기〉 등을 번역했다. 지식인 사회의 지평을 넓히고자 해서였다. 박해가 심했으나 극복했다. 

2004년 (사)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창설하여 임정의 정신을 잇고자 분투했다. 이명박근혜정권이 학기(學妓)들을 앞세워 임정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른바 건국절을 내세우며 국정교과서 편찬을 감행할 때 학술회의와 집회를 통해 저지에 앞장섰다. 평소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이지만 원칙에는 강직한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은 2005년부터 독립운동가 후손 및 학생들로 '독립정신답사단'을 결성하여 매년 한 차례씩 중국·일본 등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해왔다. 나는 강사진의 일원으로 참가하면서 늙어도 낡지 않고 여전히 생기찬 모습으로 활동하는 선생을 지켜봤다. 특히 산제비도 날지 못한다는 중국 타이항산의 조선의용대(군)의 혈투현장과 윤봉길의사 유해를 방치한 일본 현장에서 묵연히 흐느끼시던 선생의 모습은 두고두고 가슴을 저리게 했다.

〈민족일보〉 영인본을 제작하고 조용수 사장의 명예회복을 이뤄냈으며 〈한겨레〉 창간을 지원하고, 임정의 법통을 지켜낸 열정은 한 시대의 양심으로 수행한 기여이다. 때마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아무나 하기 어려운 과제를 스스로 짊어지고 걸어온 결실이었다. 
 
동농 김가진과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 손자 김자동(88)은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있다.
 동농 김가진과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 손자 김자동(88)은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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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의 가문·경력 그리고 능력이면 권부에 기웃대거나 각종 유혹이 따랐을 터인데도 구지레한 처신 없이 '역사의 길'을 올곧게 걸으셨다. 94년의 생애가 당당하고 떳떳했기에 따르는 후학이 많았고, 힘들었던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유해 봉환과 서훈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는 후학들의 과제가 되었다.

긴 세월 세찬 풍파에도 흔들림 없이 민족·민주·통일의 길목을 지켜오신 김자동 선생님, 뜻은 대쪽같이 바르고 학식과 행동이 청정했던 어른, 이제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민족일보〉의 참언론인들을 두루 만나셨을까.

혹독한 현대사에서 비루함을 보이지 않고 올바름이라는 역사의 길을 택하신 생애였다. 평안한 영생을 기원하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삼웅은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전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습니다.


태그:#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민족일보,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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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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