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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최초로 마쓰시타정경숙을 졸업한 김보람씨
 외국인 최초로 마쓰시타정경숙을 졸업한 김보람씨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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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박지현, 류호정, 장혜영, 강민진 등 최근 청년 정치의 상징으로 꼽히던 인물들이 자리에서 물러났거나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당을 대표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청년 정치인들이 잠깐 주목을 받다 사라지는 일은 어느새 한국 정치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주목받던 청년 정치인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를 한두 가지로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서툴다'는 평가만큼은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현실 정치에서 서툴다는 평가는 누구에게라도 붙일 수 있는 딱지다. 어쩌면 문제는 그런 '낙인찍기'에 청년 정치인들이 맞설 만한 논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아닐까. 좋은 정치인이 되려는, 또는 이른바 정무감각을 키우려는 어떤 훈련이나 경험도 해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일본에는 마쓰시타정경숙이라는 정치인 학교가 있다. 정확히는 정치·경영 학교다. 1979년에 설립했으니 올해로 43년이나 됐다. 그 동안 300명이 넘는 정치·경영 리더들이 이곳을 거쳐 갔지만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은 딱 한 명, 한국인 김보람씨뿐이다. 김씨는 2018년에 정경숙에 입학해 올해 3월, 4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했다. 오는 9월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조교수 임용을 앞둔 그를 만나 마쓰시타정경숙(이하 정경숙)과 한국의 정치 현실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숙생명단 앞. 마쓰시타정경숙 설립 이래 최초의 외국인 숙생 김보람 입학이라고 적혀있다.
 숙생명단 앞. 마쓰시타정경숙 설립 이래 최초의 외국인 숙생 김보람 입학이라고 적혀있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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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정경숙에서 배운 정치를 "나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협력하면서 비전과 대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정경숙은 "어떻게 하면 빨리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보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도록" 하는 곳이라면서, 속성으로 정치인을 길러내려는 여느 정치 아카데미와는 다르다고 했다. 또 "일본 사회에서는 강사진보다는 숙생들에 더 주목한다"면서 이른바 '한국판 마쓰시타정경숙'을 내세운 기관들이 유명 강사진을 앞세우는 우리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청년 정치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우리 정치 현실을 두고는 여러 번 긍정과 부정을 오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서는 "논쟁을 지피든 갈등을 일으키든 화두를 던지면서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하는데 이준석 전 대표의 활동은 그런 점에서 정치에 부합"하며, 지금까지 권력 구조는 건드리지 못한 채 청년 몫을 달라고만 했던 청년들과 달리 "스스로 권력을 쟁취해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허수아비가 되기를 거부"하고 "말 잘 듣는 청년 정치인의 한계를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그의 용기와 소신을 응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둘 모두에 대해 "당대표(비대위원장)라는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또 처음엔 나에게 동의했던 가까운 사람들조차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 채 마이너스 정치를 했던 점"은 안타깝다고 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전략과 방법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게 정치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보람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일본 가고시마대학 지역사회교육학과에 연구장학생으로 다녀오면서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의 사회 교육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일본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갔고, 일본 방방곡곡을 돌면서 참여형 연구자로 6년을 보냈다. 도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엔 메이지대학, 호세이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시민의 힘을 키우고 끌어내려면 시민이 활동할 법과 제도라는 기반이 필요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 정치, 또는 정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깊어갈 무렵, 정경숙에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래는 지난 19일 저녁 종로의 어느 카페에서 김보람씨를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치란 나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협력하는 것

- 정경숙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가.
"정경숙은 정치·경영 학교란 뜻이다. 알려진 대로 정치와 경영, 특히 정치 리더를 키우는 곳이지만 먼저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교실 안에 머무는 교육이 아니라 온 세상을 나의 학교이자 활동 무대로 삼아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다.

정치와 경영 두 가지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정치를 국가와 지역을 경영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세금을 어떻게 하면 잘 쓰면서 정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도 함께 가르친다. 경영인들도 많이 배출했다. 기업을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 그릇(공기)으로 바라보면서 공적 마인드로 경영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 정경숙에서 보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나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협력하면서 비전과 대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본다. 그래서 정경숙의 모든 교육은 끊임없는 협력을 요구한다. 또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으로 치우진 입장이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입학했더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굉장히 폭넓게 공부하고 체험하고 또 토론하면서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보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기숙사의 모든 방에는 '大忍(대인)' 두 글자가 붙어있는데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정경숙을 세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고민하길 싫어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믿었다. 정경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하면서 입장을 세우고 그것을 표명하도록 한다."
 
김보람씨와 동기들이 100km 행군의 종착점인 정경숙 정문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습
 김보람씨와 동기들이 100km 행군의 종착점인 정경숙 정문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습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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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교육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나.
"1학년 가을에 동기들과 함께 24시간 동안 100km를 걸어야 하는 연수(교육)가 있다. 정경숙이 문을 연 해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연수로 해내지 못하면 졸업을 못 한다. 극한의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경쟁이 아니라 팀이 함께 해내는 게 중요하다. 80km쯤 걸으면 극한의 고통이 찾아오면서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그런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상황판단을 하면서 적확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친 동료의 가방을 들어줄 것인가, 버리고 갈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고 또 협력하게 된다.

내가 동기들과 처음 걸었던 해에 4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100km를 걷는 하루 내내 비가 쏟아졌다. 결국 동기 한 명이 포기한 채로 나머지 넷이서 완주를 했는데 도저히 그렇게 끝낼 수 없었다. 그래서 동기들을 설득해서 이듬해에 다섯 명이 다시 완주했다. 그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마다 하는 청소도 잊을 수 없다. 아침연수라고 부른다. 학교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에 일부러 사시사철 이파리가 떨어지는 녹나무를 길게 심어두었을 정도다. 1학년이 청소 '전략'을 짜서 전체 숙생들을 배치하는데, 1시간 청소를 하려고 날마다 30분을 준비하고 또 30분을 평가한다. 그날 날씨와 상황에 따라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 그리하여 목표는 달성했는지 등을 날마다 평가하는 것이다.

청소가 끝나고 조회 때마다 돌아가면서 3분 스피치를 한다. 동기가 다섯 명이었으니 5일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고 그때마다 날카로운 평가를 주고받는다. 공개 토론이나 논쟁을 하는 연수도 많다. 정경숙에서는 토론하는 힘을 기르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토론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려는 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도 평가 대상이다.

1월과 4월, 7월에는 합숙을 하지 않는 3, 4학년들도 모두 1주일간 합숙을 하면서 테마를 정해 강좌와 워크숍, 현장연수 등을 진행한다. 이것도 1학년이 기획하고 평가를 받는다. 1~4학년이 함께 하는 연구회 활동도 있다. 나는 '외교·안보 연구회'에 참여해 프랑스와 스웨덴 등을 다니면서 공부했다. 

그 밖에도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서서 두 달 정도 물건을 조립하는 일을 해보기도 하고, 영업사원으로 물건을 파는 경험도 해본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한테 도대체 왜 이런 교육까지 필요한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막상 겪고 나면 본질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이 더 주목 받는 학교
 
정경숙의 많은 수업은 원탁에서 이뤄진다.
 정경숙의 많은 수업은 원탁에서 이뤄진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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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숙에는 어떤 사람들이 입학하나.
"가장 친한 동기는 변호사였다. '도와드리고 싶은데 법이 이래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직접 법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입학했다. 농사를 짓던 동기는 농업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입학했고, 또 다른 동기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벤처 창업가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온 20대 청년도 있었으니까 사회 경력이 꼭 중요한 건 아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결국 정치에서 해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온다. 입학 과정에서도 지원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문제를 어떻게 풀고 싶은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필기시험을 거쳐 적성검사와 논술, 스피치 시험 등을 치른다. 합숙기간도 있는데, 다른 사람과 어떻게 협력하는지도 보고, 상호평가도 한다. 심지어는 방 청소 상태나 (면접관 말고)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평가한다는 말도 있다."

-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가르치나.
"상근 교수진은 없다. 정경숙에서 강의를 하는 걸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강사진보다는 숙생들에 더 주목한다. 강사진의 유명세를 내세우는 한국과 달리 누구한테 배우는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학생들도 누구로부터 배우는가보다 스스로 어떻게 배움을 조직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교실도 원탁형으로 돼 있어 배우고 가르치는 자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를 스승으로 여기는 철학과 동등한 입장에서의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연수는 정치와 경제, 외교·안보에서부터 문화·예술, 역사, 고전 등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고, 강의가 끝난 뒤엔 1~2시간에 걸쳐 숙생들끼리 냉철하게 평가를 진행한다. '후배들에게 절대 들려주고 싶지 않은 강의'라는 평가를 받아 그 강사를 다시 부르지 않은 일도 있었다."
 
김보람씨가 서도를 배우는 모습
 김보람씨가 서도를 배우는 모습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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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숙에서의 4년을 거치며 본인은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보나.
"내가 10, 상대가 0이라고 하면, 그러니까 우리가 10만큼 다르다고 하면 전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봤다. 말을 안 했다. 선명한 입장을 가지고 편을 갈랐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 뿐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과도 얼마든지 마주 앉아서 얘기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대화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안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밖에서는 비겁한 타협으로 보더라도 나는 앞으로 10만큼을 나아가려고 당장 1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정경숙에서는 검도와 차도, 서도를 모두 배우는데 기술이 아니라 평정심을 익히려는 거다. 세 가지 도를 모두 아우르는 게 바로 평정심이다. 평정심은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뿌리는 탄탄히 내리고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흔들리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다." 

- 일본 사회는 정경숙 출신들을 어떻게 보나.
"물론 비판받는 정치인들도 있긴 하지만, 일단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한 학번 위 선배는 최근 입헌민주당으로 출마해 최연소 중의원으로 당선됐다.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해결하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경숙을 나온 지자체장들도 혁신 시정을 많이 펼친다. '치나카 운동(지역에서부터 일본을 바꾸는 운동)'이라는 정치 운동도 정경숙을 나온 30대 단체장들이 이끌었다. 2011년에 자유민주당의 60년 독주를 끝장내는 데도 정경숙 출신의 젊은 정치인들이 한몫했다. 그해 총리가 된 노다 요시히코도 정경숙 1기 출신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내 편을 만들지 못한다면...

- 한국의 정치인 양성 체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정당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체계와 문화가 모두 부족하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기보다는 다음 선거만 생각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깜짝 인재 영입에 매달린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공심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위해 살아왔는지 평가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도 많고, 좋은 스펙을 쌓아온 이들이 다음 단계로 정치를 기웃거리는 경우도 많은데 걸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경쟁적으로 영입한다.

정당에서 차근차근 커온 사람들을 외면하는 건 자기부정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 정당사무실을 찾아가면 '밖에 나가서 로스쿨을 가던 그럴 듯한 스펙을 쌓고 오라'고 한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린다. 당 청년위원회에서 어렵게 시작한다고 해도 실제로 의사결정을 해볼 수 있는 권한이나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늘 병풍처럼 동원될 뿐이다. 정치인들 여럿 만나 봤지만 다음 세대를 키우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다는 인상은 거의 못 받았다."

- 최근 청년 정치의 상징과도 같던 여러 정치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를 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공적 언어로 이슈 메이킹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논쟁을 지피든 갈등을 일으키든 화두를 던지면서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하는데 이준석 전 대표의 활동은 그런 점에서 정치에 부합한다. 또 권력의 집중으로 많은 폐해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권력 구조를 바꿔내는 게 다음 세대 정치인의 역할이다. 권력 구조는 그대로 둔 채로 우리 몫을 달라고만 했던 게 지금까지 청년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면, 그는 스스로 권력을 쟁취해냈다. 그런 점은 큰 의미가 있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이제껏 자기를 영입한 사람들을 비판하지 못해온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민주당에서 선배들을 들이받는 청년 정치인은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허수아비가 되기를 거부했다. 말 잘 듣는 청년 정치인의 한계를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그의 용기와 소신을 응원한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어떻게 해서든 접점을 발견하고 조정하는 역량이 가장 큰 정치력인데, 둘 모두 당 대표(비대위원장)로서 그런 점에선 부족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전략과 방법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게 정치력이다. 당대표와 비대위원장처럼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또 처음엔 나에게 동의했던 가까운 사람들조차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 채 마이너스 정치를 했던 점이 안타깝다.

젊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품 넓고 포용력 있게 협상과 조정으로 타협을 이끌어 내는 역량과, 포용하되 넘어서는 포월정치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대한민국의 넘사벽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준석과 박지현조차도 포용해내지 못하는 정치 현실 또한 답답하다."
 
5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이 대화하고 있다.
 5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이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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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을 해주자면, 당내 약자로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이준석과 박지현을 약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굉장히 주목받는 스피커였다. SNS에 글 하나만 써도 기자들이 앞다투어 기사를 써주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스피커로서의 입지는 확보된 거다. 사회적 약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이른바 '박근혜 탄핵의 강'을 건너려고 대구에서 정면돌파를 선택한 건 인상적이었다. 박지현 전 위원장도 '조국의 강'을 비롯해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여러 사건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그 강을 건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점은 높게 평가한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 동안 아무도 그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너무 답답했으니까. 적당히 넘어가거나 진영논리로 편 가르기를 하려는 것들이 우리 정치를 한 걸음도 못 나가게 하고 있다. 대화나 타협, 조정도 무력하게 한다.

그렇지만 정치는 진정성이 잘 발휘될 타이밍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지방선거는 힘찬 기운을 북돋고 당원과 국민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매력 있는 인물과 정책들을 등장시키는 장이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선 대선 패배를 극복하고 여전히 민주당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전략을 잘 짜야 했다. 586세대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식으로 집단 전체를 악으로 규정한 것은 모순이었고, 선거 내내 사과로만 일관한 것도 선거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전략적이지도 못했다. 길고 넓게 보면서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과 대안을 갖춘 건강하고 품격있는 세력을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대한민국 곳곳을 배움의 현장으로 삼고, 좌도 우도 아닌 아래로, 지역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사회를 디자인하는 역량을 함께 키워 가고 싶다."
 
아침연수 풍경. 정문에서부터 양쪽으로 길게 녹나무가 심어져 있다.
 아침연수 풍경. 정문에서부터 양쪽으로 길게 녹나무가 심어져 있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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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은...

우리에게 파나소닉 창업자로 알려진 마츠시타 코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가 1979년에 세운 정치경영사관학교다. 한국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일본인들은 그를 철학가이자 혁명가로 여긴다. 그가 쓴 책 <길을 열다>는 일본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그는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고 기업들이 전쟁 수단으로 동원된 것을 정치의 실패로 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건전한 철학을 가진 정치 리더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뜻이 있는 청년이라면 누구라도 체계적 훈련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재 700억 엔을 내놓았다. 숙생들에게는 학년에 따라 매달 약 200~300만 원의 연수비(생활비)가 지급되고, 항공료 등 추가 지원도 많다. 4년 과정 가운데 1~2학년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기초 과정'을 배우고, 3~4학년에는 기숙사를 나와서 현장과 전 세계를 무대로 '실천 과정'에 들어간다.

교훈은 '순수한 마음으로 중지를 모으고 자수자득으로 본질을 탐구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생성발전의 길을 열어가자'다. 아침마다 아래의 다섯 가지 약속을 외친다.

- 소지관철 : 처음에 세웠던 뜻을 포기하지 않고 초심을 간직하며 끝까지 실현한다.
- 자주자립 :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서야 한다.
- 만사연수 : 세상 모든 일이 다 배움의 과정이다.
- 선구개척 : 기존의 관습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 감사협력 : 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태그:#마츠시타정경숙, #김보람, #이준석,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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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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