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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구 강남등기소 건물에 있는 법원등기콜센터 전경.
 서울 삼성동 구 강남등기소 건물에 있는 법원등기콜센터 전경.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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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콜센터 직원이라 하면 사람들이 '9급 공무원이랑 비슷해?'라고들 해요. 공공기관 중에서도 법원이니, 왠지 법원 정직원일 거 같고 다른 데보다 처우도 더 인간적일 거라 보는 거죠. 그런데 아니에요. 다 하청이고 연차 불문 모두 최저임금 기본급 받습니다."

법원등기콜센터 상담사 이미선(가명)씨는 "법원 콜센터도 다 하청업체가 운영한다"며 오해를 바로 잡았다. 법원의 업무 특성상 내부 구조도 사회 평균보단 나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 자신들을 법원 직원으로 보는 오해를 유달리 더 자주 마주쳤다.

각종 보도에서 조명된 콜센터의 열악한 환경도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한 건 없다고 했다. 하루 정해진 콜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사유서를 써야 하거나 '동시에 3명 이상 화장실을 가지 말라'는 지시부터 "그것도 모르면서 거기 앉아 있어?"라는 민원인의 하대를 매일같이 겪었다.

일을 할수록 "이 일은 법원이 직접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쌓였다. 원래 법원 공무원의 일이었던 데다, 법원 업무와 전산 시스템 세부 내용을 숙지해야 해 전문적인 법원 상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법원 콜센터 현장에서 상담사들의 처우 개선과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선릉역 인근에서 법원 등기 콜센터 상담사 이씨와 박은경(가명)씨를 만나 상담사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실에서 "휴식은 10분 이내" 전화받아
 
지난 5월 1일 열린 민주노총 주최 '2022세계노동절 대회’ 모습. 집회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콜센터 상담사들을 존중해주세요’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보장하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는 지나친 관리와 통제 중단하라’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5월 1일 열린 민주노총 주최 "2022세계노동절 대회’ 모습. 집회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콜센터 상담사들을 존중해주세요’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보장하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는 지나친 관리와 통제 중단하라’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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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콜센터는 크게 네 개 종류로 나뉜다. ▲ 등기소 관련 상담을 맡는 등기콜센터 ▲ 가족관계등록시스템 관련 상담을 담당하는 가족콜센터 ▲ 등기·가족업무를 제외한 사법부 정보시스템 상담을 맡는 사법콜센터 ▲ 각급 법원 대표번호 전화를 받는 법원 대표전화 안내센터 등이다.

이중 등기콜센터가 이씨와 박씨가 일하는 곳이다. 상담원 90명이 등기소 대표번호 '1544-0773'으로 전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근무지는 서울 삼성동의 한 2층 건물, 과거 법원이 강남등기소로 썼던 곳이다. 2012년까지 대법원 전산정보센터 안에서 일하다 2013년부터 이곳으로 옮겼다.

"◯◯등기소 어디에 있어요? 몇 시까지 해요?"
"인터넷 등기소 등기 열람이 안돼요."
"혼자 등기 서류 작성 중인데 매뉴얼 읽어도 모르겠어요."
"저희 법인이 감사 사임시키고 공동 대표 이사 제도로 바꾸는데, 전자로 신청하려는데 원격으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선조 땅에 미등기 토지 대장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전 9시 업무 시작과 함께 갖가지 전화가 걸려온다. 단순 문의도 있지만 품이 드는 상담도 적지 않다. 고령의 민원인 등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시민이 도움을 구하면 원격지원 서비스로 그의 컴퓨터에 접속해 문제를 해결해준다. 최근엔 '셀프등기', 비용을 아끼려고 법무사 없이 직접 등기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면서 절차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해줘야 하는 콜도 대폭 늘었다.

"동산·채권 담보등기 민원상담은 정말 어려워요. 복잡한 내용이 많고요. 부동산·법인 등기 신청도 내용, 절차, 전자 시스템 자체가 복잡하고요. 이걸 상담사들은 미리 알아야 하니까 매번 등기 관련 자료를 공부하면서 일하는 거죠. 법무사나 관련 종사자들도 자주 전화해요. 막히는 부분을 저희에게 질문하는 거죠. 민원 해결을 위해서 전화를 일단 끊고 제가 오류 시정을 직접 시도해 본 뒤 다시 전화해 방법을 알려주는 경우도 많아요. 콜 압박에 업무 시간 쓰는 게 눈치 보이면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해봐요. 어려움을 해소하는 게 저희 역할이니까 자연히 이렇게 열심히 하게 돼요." (이씨)

대법원도 2014년 9월 등기 상담건수가 1000만 건을 넘긴 때 기념 보도자료를 내 "다른 기관 콜센터와 다르게, 등기 콜센터는 전문상담사가 수 년간 축적한 8000개 유형별 상담사례 노하우를 이용해 전문화된 상담을 제공한다"고 자평했다. 나아가 "이로써 등기소 공무원은 단순 민원상담 업무 처리에서 벗어나 창구에서의 본연의 등기 처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이들은 하루 동안 적게는 60콜, 많게는 130콜을 소화한다. 하루 80콜을 받는다면 시간당 10콜을 처리하는 셈이다. 상담 종료 후 전화 내용을 기록하고 부대 업무를 처리하는 '후처리' 작업까지 생각하면 여유롭게 쉴 시간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불과 지난해까지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하루 4시간 30분 상담시간을 못 채우면 사유서를 썼어요. '오늘은 다 짧은 콜로 끝났다' '등기소로 연계해야 할 콜이 많았다' 이렇게 써서 올려야 하는 거죠. 또 후처리가 10분을 넘어가면 관리자가 자리 뒤에 와서 서 있었어요. '뭐하세요?' 하고. 사내 메신저로 '후처리·휴식 자제 바란다'는 메세지도 일상적으로 올라왔고요. '10분 이상 자리 비우면 안 된다'는 질책도 받고요.

한 상담사는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어디 있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어요. 더럽고 치사해서 못 쉬겠다는 말이 나와요. 근로기준법을 찾아 본 어떤 상담사는 8시간 근무에 1시간 휴게시간 보장이 정해진 걸 알고 모니터에 근로기준법을 써붙여놨어요." (박씨)


"중요한 일이라면서... 이런 처우에 누가 오래 일하나"
   
매달 1번씩 쪽지시험도 친다. 10문제가 나오는데 2개 이상 틀리면 재시험을 본다. 회사는 이를 위해 A4 10장 분량의 '데일리뉴스(Daily News)'라는 공부 자료를 매일 준다. 등기 신청 절차, 전산시스템 구조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4장은 'CS(고객만족)'이다. 민원인 거부감을 줄일 수 있게 '잠시만 기다리세요'가 아니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라고 청유형으로 묻거나, "죄송합니다만" "번거로우시겠지만" 등의 '쿠션어'를 붙이자는 교육이다.
 
"네, 그렇죠 (X) -> 민원인을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 '네~ 그렇습니다' 같이 표현하면 더 정중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네네네(X) -> 재촉하는 느낌이 들 수 있어 '아~ 네'와 같이 부드럽게 한 번만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배포 자료 중)
 
어떤 화법을 활용해도 악성 민원인은 피할 수 없다. 박씨는 "요새는 욕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까 교묘한 괴롭히기나 윽박지름, 하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 자리 앉아서 뭐하세요?' '그것도 몰라요?' '나랏밥 먹는 사람들이 이러면 돼요?'라고 무시하거나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전화를 안 끊는다"라며 "겪고 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당하고만 있어야 하니 상담사들은 억울함에 울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무실 환경을 묻는 말에 이씨는 '웃픈' 일화도 꺼냈다. 얼굴 피부 발진 때문에 혼쭐이 났던 상담사 얘기다. 오래 전 등기소로 지은 건물을 설비 수리 없이 쓰다 보니 냉·난방이 열악해 천장 에어컨 바로 아래 직원들은 추워서 덜덜 떨고 멀리 앉은 직원들은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는 상황이었다. 한 상담사가 물티슈를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더위를 참지 못할 때마다 꺼내서 얼굴과 목을 닦곤 했는데, 그대로 심한 발진이 올라와 병원을 가야 했단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2022년 임금명세서와 연차별 임금표를 확인한 결과, 올해 이들의 기본급은 191만4400원이었다. 딱 법정 최저임금을 한 달 치로 환산한 값이다. 1년차 직원이든 10년차 직원이든, 기본급은 최저임금으로 매년 같았다. 여기에 3년 근속 때부터 붙는 근속수당(4만5000원~8만5000원)과 식대 10만 원이 추가된다.

여기에 매달 근무 평가를 해 결과를 5등급으로 나눠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 4년차 기준, 가장 적게는 6만2000원, 가장 많게는 18만2700원이다. 중간 수준 평가를 받은 4년차 상담사의 월급은 220만 원이다. 보험료나 세금을 떼면 손에 쥐는 금액은 200만 원. 1년 차 상담사는 180만 원이 실수령액이다. 가장 높은 고과를 받은 10년차 상담사도 실수령액이 2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씨는 "상황이 이러하니 금방 입사했다가 금방 퇴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금도 3분의 1 가량은 신입직원"이라며 "외우고 공부할 것이 많아 경력을 쌓아가는 게 중요한 자리인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으니 서비스의 질에 영향이 간다"고 말했다.

"지금의 하청 방식, 공공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도움되나?"
 
공공기관의 콜센터 노동자들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공공기관의 콜센터 노동자들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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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임금은 영영 최저임금인가?"
"그냥 상담이 아니라 법원 업무에 직결되는 전문 상담인데 왜 하청업체 소속일까?"
"우리 일은 법원에 중요한 일이 아닌가?"
"중간착취 금액을 없애면 처우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과연 지금의 하청 방식이 공공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나?"


이런 의문들이 쌓이면서 법원 등기콜센터 현장에도 조금씩 '노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이씨는 "몇 명이 노조에 가입했는진 모른다"면서 "지난해 여름부터 콜센터 앞에서 노조 홍보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등장하더니, 이들이 법원과 용역업체에 항의공문을 보내거나 처우 개선 관련 면담을 한다는 사실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말한 노조는 법원 내 시설·미화 공무직이 조합원으로 있는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대노조다. 실제 조합원이 생기면서 '10분 이상 휴식하지 말라'거나 '3인 이상 동시에 화장실을 가지 말라'는 지시가 사라졌다.

이씨와 박씨는 지난해 상담사 502명을 직접 고용한 고용노동부 사례를 주목했다.노동부는 울산, 천안, 광주, 안양 등 4개 지역 콜센터 중 울산 센터 직원 약 100여 명만 직접고용하고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을 거치며 나머지 3개 센터 직원들도 모두 직접 고용했다. 이들은 "노동부 콜센터는 악성 민원을 받은 상담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준대요"라며 부러워했다.

박씨는 "이 직업을 하대하고 낮게 평가하는 시선이 있는데, 하청구조가 그 원인이 아니겠느냐"며 "직접고용을 하는 게 정의로움이고 서비스의 질도 높이며, 콜센터 상담사의 실질적인 처우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4개 법원 콜센터의 총 인원은 총 238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등기콜센터 90명, 가족콜센터 37명, 사법콜센터 55명, 법원 대표전화 안내센터 56명 등이다. 2021년 1~6월 기준 이들의 처리 콜 수를 보면 등기콜센터는 66만 6232건, 가족콜센터 14만9800여 건, 사법콜센터 20만 9200여 건, 법원 안내센터는 84만 4700여 건 가량이다.

근무지는 모두 현재는 폐쇄된 등기소 건물이다. 가족콜센터는 서울 신설동의 구 동대문 등기소, 사법콜센터는 경기 군포시의 구 군포등기소, 법원 안내센터는 서울 상도동의 구 동작등기소에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의 자료에 따르면 위탁 하청업체의 한해 용역대금은 각각 가족콜센터 13억 원, 사법콜센터 20억 원, 등기콜센터 33억 원, 법원 안내센터 20억 원 정도다.

조달청 입찰 기록을 보면 크게 3개 하청업체가 콜센터 사업을 위탁받아왔다. 효성ITX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8년 째 가족콜센터를 낙찰받았다. 사법콜센터는 2011~2020년 동안 유세스파트너스가 쭉 맡다가 지난해부턴 케이티아이에스로 바뀌었다. 등기콜센터와 법원 안내센터는 2020년부터 케이티아이에스가 맡고 있다. 케이티아이에스가 현재 4개 콜센터 중 3개를 위탁 운영 중이다.

태그:#법원 콜센터, #콜센터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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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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