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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지난 6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시의 시장 마리안네 보르겐(Marianne Borgen)이 글로벌 팩트9에 참가한 팩트체커들을 시청에 초대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오슬로는 다양성의 도시"라며 팩트체커들에게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 참여를 적극 권유했다.
▲ 팩트체커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오슬로 시장 지난 6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시의 시장 마리안네 보르겐(Marianne Borgen)이 글로벌 팩트9에 참가한 팩트체커들을 시청에 초대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오슬로는 다양성의 도시"라며 팩트체커들에게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 참여를 적극 권유했다.
ⓒ IF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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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에 참여해볼 것을 권합니다." - 마리안네 보르겐 노르웨이 오슬로시장
"정치인 오세훈의 개인적인 입장이 동성애 반대라는 건, 분명히 공개적으로 밝혔다." - 오세훈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노르웨이 수도의 시장이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이야기할 때, 대한민국 수도의 시장은 성소수자 '혐오'로 보일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마리안네 시장은 지난 6월 24일, '글로벌 팩트9'에 참석한 전세계 팩트체커들에게 "오슬로는 다양성의 도시(City of Diversity)"라며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다. 내일은 대규모 퍼레이드도 있을 예정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꼭 한 번 참여해볼 것을 권한다"라고 웃어 보였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지난 9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선량한 풍속을 해할 수 있는 집회 신청인 경우에도 다 내줄 수는 없다"라며 "음란물을 동원해 집회를 한다거나 신체 과다노출 현상이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겠다는 원칙을 세워서, 만에 하나 그런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가 있게 되면 내년 이후에는 정말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무지개가 곳곳을 수놓았던 오슬로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 기간 동안 노르웨이 오슬로 곳곳에서 무지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청 앞에는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노벨평화센터와 국립극장 앞에서 성소수자와의 연대 의사를 밝히는 무지개를 걸어놓았다.
▲ 노르웨이 시내 곳곳의 무지개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 기간 동안 노르웨이 오슬로 곳곳에서 무지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청 앞에는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노벨평화센터와 국립극장 앞에서 성소수자와의 연대 의사를 밝히는 무지개를 걸어놓았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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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도시 곳곳에 걸린 무지개 때문이었다. 이른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라 불리는 6월을 맞아, 노르웨이는 관공서부터 상점가에 이르기까지 무지개로 장식되어 있었다. 오슬로 시청, 국립극장, 대학교에 여러 호텔과 식당, 주점들도 모두 무지갯빛으로 치장했다. 노벨평화센터에는 아예 "Gay Rights are Human Rights(동성애자의 권리는 인권이다)"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현지시간으로 6월 18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오슬로 프라이드는 시청 인근 광장에서 진행됐다. 주변으로 펜스가 둘러져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높지도 않았고, 어디까지나 혹시 안에 있을지 모를 성소수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참가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안팎을 오갈 수 있었다. 펜스 밖에서도 입맞춤 하는 동성 커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도 무지개색 패션 아이템으로 자신을 한껏 꾸민 이들이 많았다. 상반신 탈의 정도의 노출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도 없었고, 주변의 시민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손을 잡고 무지개 깃발을 함께 흔드는 부모도 있었다. 오슬로의 시민들은 바로 주변의 성소수자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시내를 걸으면서 자꾸만 서울과 오슬로를 비교하게 됐다. 만약 서울시청이 서울시의 이름으로 시청사나 광장에 무지개 깃발을 걸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보수 개신교계로부터 집단 항의를 받지 않았을까? 서울시내 유명 호텔이나 인파가 많은 상점가에 무지개가 곳곳에 내걸렸다면 어땠을까? 일부 성소수자 혐오 집단으로부터 불매 운동이 일지는 않았을까?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 이를 부추기는 정치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2022.7.1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2022.7.1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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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력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느냐 안 내느냐는 공론장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 특히 정치인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세훈 시장의 성소수자 혐오는 이미 지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하게 계속됐다. 그는 "동성애 반대"를 당당하게 밝혔고, 관련 단체의 질의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박영선 전 서울시장 후보를 중심으로 민주당 역시 관련 문제에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오세훈 시장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서울시에서 매년 열려왔던 성소수자들의 축제의 실질적인 허가권을 쥐고 해당 단체들을 겁박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울광장 사용은 원래 신고제이지만, 오세훈 시장은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통해 성소수자 축제에 한해서만 사실상의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6일간의 광장 사용을 신청했지만, 시민위원회는 하루만 허가했다. 여기에도 '과다 노출 금지' 등 조건을 붙였다. 시민위원들의 일부 발언은 '반지성주의'적이었다. 오 시장은 시민위원회의 결정이었다며 책임을 떠넘기지만, 그 시민위원회 위원 임명권은 서울시장이 갖고 있다.

오 시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준수사항을 위반하는 경우 현장에서 즉각 계도 조치를 하고, 현장 채증을 통해서 추후에 광장 사용 신청이 들어오면 그때 참고자료로 쓸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의 기준대로라면,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 역시 노출 등을 이유로 제한되어야 마땅한, 내년도 허가 여부가 불투명한 축제인 셈이다.

서울시가 내년도 광장 사용 허가 여부를 두고 성소수자들을 압박하면서, 이들을 혐오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은 아예 국회 소통관에서 이들에게 발언할 기회까지 제공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준비위원회'는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을 빌려준 덕분에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 특별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일부 선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하는 동성애 야외행사는 문란한 동성애 확산과 각종 성범죄, 이로 인한 에이즈·원숭이두창병 등을 확산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라는 황당한 가짜 뉴스를 반복했다(관련 기사: "WHO가 퀴어퍼레이드 원숭이두창 확산 경고" 주장은 '거짓' http://omn.kr/1zt6w ).

이들은 16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바로 옆에서 반대 집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런던 프라이드가 어떻게 왜 시작했는지 이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건 무리일까?

혐오 앞에 더 큰 연대로 맞선 이들
 
프라이드 먼스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총기 난사 테러가 있었던 런던 펍 일대에는 무지개색의 추모 물결이 계속됐다.
▲ 오슬로 추모의 물결 프라이드 먼스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총기 난사 테러가 있었던 런던 펍 일대에는 무지개색의 추모 물결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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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오슬로 프라이드 페스티벌의 메인 행사였던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정식으로 열리지 못했다. 마리안네 시장이 참석을 권한 바로 그날, 오슬로 시내 나이트클럽 겸 게이 바에서 총기 난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였다. 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다치는 비극이었다. 테러가 있었던 '런던 펍'은 오슬로 내에서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용의자의 범행 동기가 성소수자 혐오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으나, 최소한 오슬로 시민들은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되새겼다. 공식 퍼레이드는 없었지만, 수천 명의 성소수자들과 이들과 연대한 시민들은 다음날 시내를 행진하며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프라이드 먼스의 마지막날인 6월 30일,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 런던 펍이 자리한 건물의 네 귀퉁이는 모두 꽃과 무지개 깃발이 잔뜩 놓여 있었다. 폴리스 라인은 없어졌지만, 경찰들이 바로 근처에서 상주했다. 근처에 잠시 앉아 있는 사이에도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추모 글귀를 보고 눈물을 훔치는 이성애자 연인, 딸의 손을 잡고 함께 꽃을 두고 가는 아버지 등 모습도 다양했다. 물이 담긴 작은 컵에 꽃을 꽂아 온 백발의 여성은 "매일 이곳에 오고 있다"며 "희생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슬로에서 연대와 추모의 물결이 넘쳐흐를 때, 서울의 모습은 어떤가. 신임 주한미국대사인 필립 골드버그는 동성애자이다. 그는 이날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공식 지지 연설을 할 계획이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당한 내정간섭"이라며 대사 임명에 반대하는 집회까지 하기로 했다. 반대파들은 종종 집회에서 예수의 이름을 외치지만, 노르웨이도 전 국민의 70% 가량이 기독교도이다. 국교의 지위는 공식적으로 잃었지만 이 중 절대 다수는 루터교 신자들이며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필립 골드버그처럼 정치인이 성소수자 축제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지와 연대의 뜻을 밝히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6월 12일 워싱턴DC '캐피털 프라이드 페스티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다 콜라우 시장은 바르셀로나 프라이드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해 함께 춤을 췄다. 대한민국에선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있었다.

연극 <프라이드>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진행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역사', 어떤 '자부심'에 관한 작품이다. 연극은 "천천히 장벽은 무너질 겁니다, 반드시"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를 부를 목소리"가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니면,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말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더 많은 무지개가, 프라이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더 목청껏 연대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그러니 외치자. 오늘은 해피 프라이드이다.
 
프라이드 먼스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총기 난사 테러가 있었던 런던 펍 일대에는 무지개색의 추모 물결이 계속됐다.
▲ 오슬로 추모의 물결 프라이드 먼스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총기 난사 테러가 있었던 런던 펍 일대에는 무지개색의 추모 물결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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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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