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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길을 걷는 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싱그러운 초록빛 잎사귀 사이로 은빛 햇살이 스며들어 환하게 길을 비춘다. 피톤치드 향이 가득할 것만 같은 풍경이다. 사진만 보았을 땐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사진 위의 제목이 '전교 일 등 하는 애한테만 화가 나요'이다.
 
<전교 일등 하는 애한테만 화가 나요>p.118
 <전교 일등 하는 애한테만 화가 나요>p.118
ⓒ 예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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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사진에 글을 더하니 낯선 시선으로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일상적 관계에 놓인 사물을 전혀 다른 맥락에 배치하여 사유를 이끌어내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처럼, 나에게는 책 <보이는 마음>이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기처럼 다가왔다.
    
이서원 글, 김우중 사진
 이서원 글, 김우중 사진
ⓒ 예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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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도사가 되기 전 사진사였던 김우중 신부가 보여주는 43점의 사진과 열악한 복지 상담 분야에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고통 받는 이들을 20여 년간 상담해온 이서원 상담가가 들려주는 29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책의 한 꼭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능이 모자란 아들과 높은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 수술이 잘못되는 바람에 지능에 문제가 생긴 아들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일상생활을 겨우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비해 딸은 지능도 높고 공부도 잘해서 시험을 치면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전교 일 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희한하게도 엄마는 아들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전교 일 등 하는 딸에게는 걸핏하면 화를 냈습니다.

주위에서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도 왜 못하는 아들에게는 관대하고, 모든 걸 거의 완벽하게 해내는 딸에게는 가혹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들에게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딸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서울시 일등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그러지 않아도 힘든 고등학생 딸을 다그치고 재촉하게 된 겁니다.

···내 앞 사람이 작아도 내 기대를 내리면 큰 사람이 되고, 큰 사람도 내 기대를 높이면 더 작은 사람이 됩니다.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거는 기대가 나를 화나게 합니다. 나무는 오를수록 좋고 기대는 낮을수록 좋습니다."
<전교 일 등 하는 애한테만 화가 나요>, p.120-121


앞서 소개했던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풍경을 내 마음속으로 가져와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게 쭉 뻗은 나무는 사랑이라는 핑계로 남편과 아이 등 가까운 타인을 다그치던 지난날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커다란 나무의 큰 그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던 마음을 삼켜버리는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왜 이거밖에 안 되냐고 악을 쓰고 큰 소리 칠수록, 그들을 크게 키우기는커녕 점점 더 작고 쪼그라들게 만들던 지난날의 어리석음과 조우하게 된다. 지나친 기대가 마음의 숲을 이룰수록 나의 소중한 이들은 작아진다는 걸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사진의 풍경처럼 말이다.

일상에 찌들어 삶을 더 이상 새롭게 바라보지 못할 때 우리는 진부한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대하게 된다. 삶이 낡은 게 아니라, 마음이 낡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책 <보이는 마음>은 사진과 글만으로도 내 마음의 사각지대와 새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집 안에서,직장에서, 휘둘리는 세상 속에서' 꼭꼭 숨어버린 '내 마음 찾기'가 필요한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보이는 마음 - 신부와 상담사가 보여 주고 들려주는 마음 이야기

이서원 (지은이), 김우중 (사진), 예문아카이브(2021)


태그:#보이는마음, #이서원상담가, #김우중신부, #한국분노관리연구소, #내마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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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강물처럼~! 글과 사람과 삶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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