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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싹들이 돋아나고 사람들 옷차림도 두꺼운 껍질을 벗고 피어나는 봄이 한창이다. 이렇게 새롭고 젊은 것을 가리킬 때 '새파랗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새파란 돌봄이 뭐지? 조기현이 쓴 <새파란 돌봄>에는 젊은 사람들 아니 초등생 나이부터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줄줄이 나온다.
 
새파란 돌봄|조기현 | 이매진
 새파란 돌봄|조기현 | 이매진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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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돌봄자를 의미하는 '영 케어러'의 사례는 엄마, 아버지, 할머니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다르고, 치매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이상 등 돌봄이 필요하게 된 이유도 다르다. 잠깐의 시간을 쪼개는 정도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인생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돌봄 사례들에서 그들의 현실은 캄캄하고 새카만데 왜 '새파란' 돌봄일까.

사례들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돌봄은 일상을 뒤흔드는 '사고'가 아니라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틀 속에 개인을 구겨 넣고 그 가족이 개인을 유지하게 만들 때, 가족은 어떻게 지옥이 되는가. 왜 공공기관은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하지 않고 그냥 가족에게 떠맡길까.

여성은 어떻게 돌봄을 가려주는 '사회적 커튼'이 되는가. 고소득층에도 지위 대물림에 아픔과 돌봄이 맞물리면 어떻게 가족이 고통이 되는가. '돌봄 민주주의'는 왜 필요하며 돌봄은 왜 국가의 책임이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가. 돌봄 책임제는 왜 필요한가. 사회에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남자다움'은 어떻게 "상충하는 욕구의 압력솥" 같은 상황에 처할까.     

공동체는 돌봄으로 유지된다

인간에게는 평생 돌봄이 필요하다. 탄생에서 장례에 이르기까지 돌봄이 필요하다. 엄마의 자궁에서 돌봄을 받는 태아부터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까지 돌봄이 필요하다. 청장년이라도 언제든지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될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장소는 요양병원 같은 특정한 곳에서만 필요한가? 돌봄이 필요한 상태란 사고나 병으로 찾아오는 비일상적 사건인가?

차별과 혐오가 판치는 수직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곳은 요양병원 같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의 모든 곳이다. 돌봄은 약자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이든 재벌 회장이든 수많은 비서와 직원의 돌봄이 없으면 그들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아빠의 아빠 노릇을 해온 돌봄 생존자인 저자는 병무청처럼 돌봄청이 필요하다고 한다. 돌봄과 가사가 여성과 약자에게 떠넘겨지는 맥락을 살필 것을 주문한다. 자기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돌봄의 '무임승차권' 회수를 얘기한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돌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임승차, 나만 혹은 내 가족만 문제없으면 된다는 나만의 무임승차, 돌봄이 필요할 때 사면 된다거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왜 시장 지향적인지를 일깨운다.

경제적 불평등이 돌봄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장은 멈출 수 있어도 돌봄은 멈출 수 없는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돌봄의 수혜자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오랫동안 GDP와 같은 경제적 수치를 중심으로 선진국이 되려고 안간힘을 써온 인간들이 공동체를 가능케 했던 돌봄과 삶의 질 중심의 '돌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까. 노동은 나를 위한 노동이지만 동시에 내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한 너를 위한 노동이었다.

여기에 기후위기까지 닥친 상황에서 지구별을 위한 노동이 되어야 한다. 나와 너와 지구별을 위한 노동, 즉 '나너지 노동'이 인류에게 필요한 노동이다. 돌봄 노동이야말로 서로를 위한 노동이자 탄소 배출이 별로 없는 대표적인 '나너지 노동'이 아닐까. 그래서 더 많아지고, 더 존중받고, 더 대우받아야 할 노동이라고 확신한다.

하이테크에 묻힌 하이터치

세상은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아야 돈을 벌 것 같아 기술 권력에 휩쓸린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현명함을 잃지 않았기에 높은 기술을 의미하는 '하이테크(High Tech)' 시대에도 '하이터치(High Touch)'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하이터치'는 인간이 오감으로 상호작용하는 접촉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접촉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돌봄은 '하이터치'의 영역이다. 인간의 행복감은 '하이터치'를 통해 높아진다. 팬데믹으로 인한 상호접촉이 줄어들자 고립감과 고독감과 우울감이 높아졌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육 영역에서는 '하이테크 하이터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워낙 기술에 대한 환상이 커진 세상이기에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서로의 감각적 교류를 기술로 흡수함으로써 거꾸로 하이터치의 중요성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상호작용이 필요한 인간들은 관계 속에 살아간다. 기술은 관계의 매개체로서 작용할 때 인간에게 유용하다. 이제는 마치 기술이 인간관계를 대체할 것만 같은 기세로 달려든다. 더 높은 기술력을 위해 인간을 갈아 넣고 높은 기술을 위해 높은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려 한다.

최근 들어 IT산업 기술자들은 고액연봉을 받지만 돌봄 노동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는 저임금 불안정 무권리 노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필시 지구별에도 인류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하이테크' 시대로 갈수록 '하이터치'는 중요하고 바로 그런 노동으로서 돌봄 노동이야말로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더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영 케어러는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책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영 케어러'들끼리 모여서 했다는 이 질문에 턱 막혔다. 그러나 '돌봄 생존자'로서 저자와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외면되어온 돌봄은 이제 젊고 새로운 '새파란' 것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되어야만 하고 되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책 만나기' 꼭지에도 실렸다.


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조기현 (지은이), 이매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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