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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미션: 벤란시지' 3채널 HD 비디오, 47분 23초 2019. 작가(가운데)가 강연을 통해 패션계도 무기화된 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해 정치선전과 연동돼 있다고 주장한다
 히토 슈타이얼 "미션: 벤란시지" 3채널 HD 비디오, 47분 23초 2019. 작가(가운데)가 강연을 통해 패션계도 무기화된 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해 정치선전과 연동돼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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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 전 이후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의 전시가 9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윤범모) '서울관'에서 열린다. 이번에 1990년대부터 2022년까지 30년 작업 중 대표작 23점이 소개된다. 제목은 '데이터의 바다'다.

슈타이얼은 독일 뮌헨 출신으로 세계적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고 베를린 예술대 교수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미디어아트 작가인 슈타이얼은 시대의 정치학으로 조망해 볼 때 알고리즘, 인공지능, 로봇기술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해 현 문명사를 비판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요 논점을 5부로 정리했다. 1부에선 디지털 사회의 이면을 분석하고, 2부에선 감시사회에 대항하고, 3부에선 재난과 독점 기술 속 미술관 역할을 묻고, 4부에선 글로벌 유동성에 대해 탐색하고, 5부에선 기록과 픽션 등을 소개한다. 

파워풀한 영상, 세계미술계 영향력 1위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Social Shim)' 단채널 HD 비디오, 라이브 컴퓨터 시뮬레이션 댄싱 마니아, 18분 19초 2020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Social Shim)" 단채널 HD 비디오, 라이브 컴퓨터 시뮬레이션 댄싱 마니아, 18분 19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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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타이얼' 작가를 보는 순간 낯선 외계인 같았다. 진짜 예술가가 나타났구나! 이제 우리는 현대미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보면, 미래를 미리 산다고 할까. 독일 현대미술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다. 그녀 부모도 MIT 등에서 공부한 물리학자, 생물학자이고, 그녀 자신도 빈 미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지금 인류는 디지털 문명의 혼란과 쏟아지는 데이터 홍수 속에서 경제적 빈부차, 문화적 정보차의 심화 속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거꾸로 무기가 되는 시대 그녀는 예술로 세상을 구하려는 여신 같다. 독일 문화평론가 카롤린 크랄은 그녀의 이미지를 '빗발치는 탄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유머 감각이 우리에게 친근감을 준다.

위 5채널 영상 '소셜심'은 첨단 군사력보다 더 강렬해 보인다. 미디어아트가 이렇게 웅장하고 흥미롭구나 싶다. 2017년 영국 미술잡지 <아트리뷰(Art Review)>는 그녀를 세계미술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작가 100명 중 1위로 뽑았는데 합당하다고 본다.

독창적 예술만큼 용어도 엉뚱해
 
히토 슈타이얼 '이것이 미래다' 비디오 단채널 HD 비디오컬러 사운드 스마트 스크린 2019
 히토 슈타이얼 "이것이 미래다" 비디오 단채널 HD 비디오컬러 사운드 스마트 스크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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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얼 용어는 표준화된 게 없다. 그만큼 창발적이다. 새로운 미술체계의 정립을 위한 조치인가. 그녀는 '비디오 에세이'라는 장르도 개발했다. 위 '우리의 미래' 작품해설에서 작가는 정원의 식물이 마술적 치유의 힘을 발휘해 앞으로 큰 권력으로 대두될 거라고 말한다. 좀 엉뚱하게 들리지만, 앞으로 환경이 최대 이슈가 되는 건 분명하다.

그녀가 즐겨 쓰는 용어 중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가 있다. 여러 번 전송되고 이동하고 압축되고 재포맷된 저화질 이미지를 말한다. 그녀는 이런 게 속도도 빠르고, 사물의 진정성을 표현하는데 더 적합하다며 옹호한다. 이제 사전도 브리태니커보다 위키피디아를 더 선호하는 원리와 같다. 이미지 권력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는 소리다.

또 그녀는 '대체불가능토큰(NFT)'에도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극소수 작가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이 되었다며 전통적 미술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디지털 유동성 막는 난제 고발
 
히토 슈타이얼 '유동성 주식회사' 단채널 HD 디지털비디오, 30분 15초. 2014. 액체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작품을 형상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소장
 히토 슈타이얼 "유동성 주식회사" 단채널 HD 디지털비디오, 30분 15초. 2014. 액체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작품을 형상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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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1세기를 '유동성 주식회사'로 비유한다. 전 지구적으로 사람, 사물, 자본이 유통되고 이동하고 교류돼야 한다고 보나, 동시에 그런 순환주의의 물꼬가 막혀버렸다고 판단한다.

이런 유동성을 막은 사회모순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가차 없다. 미술관도 예외가 아니다. 무급 인턴을 둔, 문화산업의 공식 대리점이라고 조롱한다. 때로는 세금회피처로 악용된다고. 그녀는 유럽은 지난 30년간 크고 작은 전쟁에도, 미술계는 호황이었다고 말한다. 전쟁터 미사일을 추적하다 보면, 미술관 후원자가 무기 제조업자임을 알게 된다며 쓴웃음 짓는다.

우리가 컴퓨터 기술과 웹에 의존하지만, 슈타이얼은 동시에 사람들이 감시받고, 조정 당하고 심지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탈리아 '레푸블리카(Repubblica)'지와 인터뷰에서도 "웹 세상은 실패한 혁명이고, 디지털은 인간을 노예로 실추시켰다"고 혹평했다.

감시와 처벌사회 조롱, '안 보여주기'
 
히토 슈타이얼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단채널 HD 디지털 비디오, 15분 52초 2013 @ Andrew Kreps Gallery(NY), Esther Schipper(Berlin)
 히토 슈타이얼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단채널 HD 디지털 비디오, 15분 52초 2013 @ Andrew Kreps Gallery(NY), Esther Schipper(Berlin)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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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동성을 가로막는 감시 권력의 네트워크를 붕괴시키자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작가는 이를 실현할 여러 방안이 있다면서도, 코믹하게 '난 안 보여주지'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의 미디어 비평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에는 "몽골 사막에서 페루 고원까지"라는 문장도 나오지만 지금 우린 어디에서나 전자 파놉티콘 같은 구글맵과 드론 등으로 감시당한다.

요즘 페이스북도 그렇다. 작가는 여기서 감시하는 이들을 '페이스북 군대나 디지털 용병'이라는 부른다. 하긴 폰을 사는 순간부터 우리는 구글 감시망에 들어간다.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가와의 기자간담회가 있어 난 이 질문을 했다. '최근 미국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E. Musk)가 트위터 인수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전 세계 언론이 염려하는데 당신 의견은.'

그녀는 "한 사람이 플랫폼을 통제한다는 건 좋은 소식 아니다. 가짜 뉴스도 그렇고 억만장자 머스크가 가지고 있는 공격성은 염려되지만, 그가 인수 의사를 밝히기 전에도 트위터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나빠질 거로 보진 않는다. 이번 우크라이나의 사태에서 어떤 내용이 올라오는지 두고 보자"라고 답했다.

"파업하라! 점령하라!"
 
히토 슈타이얼 '스트라이크' 단채널 D 디지털 비디오, 사운드 28초 2010
 히토 슈타이얼 "스트라이크" 단채널 D 디지털 비디오, 사운드 28초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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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소개한 비평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을 보면 "파업하라, 해동하라. 거주하라. 점령하라!" 등 이런 선동 문구가 많다. 이걸 구현한 작품 중 하나가 '스트라이크(Strike)'이다.

이 텍스트 아트 작품은 너무 단순해 보여 당황스럽기도 하나, 그 메시지는 강하다. 전 세계 여성이 출산파업을 하면 인류가 멸종할 수 있듯, 전 세계 (무급) 예술가들 총파업하면 전 인류가 망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작가 보기에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돌아가는 건 그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같은 작가로서 그들에게 보내는 아낌없는 '격려사'다.

이 단어는 장자의 "무용한 게 유용하다(無用之用)"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용해 보이는 예술가도 사실은 이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는 가장 유용한 존재 아닌가.

이번엔 '점령하라!'.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위가 있었다. 그 구호가 "미국 슈퍼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 입장을 대변한다"였다. 현대미술로 "전쟁지대와 분쟁지역을 점령하라"가 가능할까? 이게 작가에게 어울릴까? 하긴 슈타이얼은 그동안 시위 현장, 분쟁지역에 직접 가서 인터뷰, 리서치, 아카이빙 방식으로 이런 주제를 작품화해왔다.

예술의 힘, 위기에도 '이미지'가 그 균열 뚫어!
 
히토 슈타이얼 'H. 슈타이얼, 난 살아남았다(H. Steyerl: I Will Survive)' 전시 도록(파리 퐁피두센터)
 히토 슈타이얼 "H. 슈타이얼, 난 살아남았다(H. Steyerl: I Will Survive)" 전시 도록(파리 퐁피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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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작년 '퐁피두센터'에서 '슈타이얼(H. Steyerl)'전이 열렸다. <르몽드>가 이 전시를 기사화했다. "슈타이얼이 인공지능과 디지털 문명이 낳은 폐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지구의 부패를 희화했다"라고 기술돼있다. 작가는 미디어 생태계를 매섭게 비판했지만, 제목 "난 살아남았다"에서 보듯 그건 더 밝은 미래를 위한 몸짓일 뿐이다.

그녀의 미디어 비판은 때로 혹독하지만 그건 파괴가 아니고 창조를 위한 것이다. 그녀는 아무리 세상이 절망에 빠지고 문화의 위기가 온다 해도 이미지가 결국 그 균열을 뚫고 나온다고 봤다. 그녀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그걸 '절망의 실용주의'라고 부른다.

슈타이얼은 작품을 보고 나오면서 우리가 미디어를 좀 더 냉철하게 봐야겠다는 깨달음이 온다. 그녀의 스승격인 미디어 철학자 '키틀러(F. Kittler)'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전쟁은 군인이나 국가가 싸우는 게 아니라, 첨단정보기술, 미디어 언론매체 속 이미지(메이킹)로 싸우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런 냉철한 안목으로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1] 전시 중 전문가 강연 장소: MMCA필름앤비디오
제1강연 '2010년대 중반 이후 히토 슈타이얼의 디지털 이미지와 컴퓨터 기반 테크놀로지' 2022. 6. 10. (금) 15:00. 강연자: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 / 제2강연 '추방된' 기술 존재자들의 생태정치학을 위하여' 2022. 6. 24. (금) 15:00. 강연자: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문화/과학』 편집인) / 제3강연 '보리스 아르바토프 재방문: 히토 슈타이얼과 순환주의의 재발명' 2022. 6. 24. (금) 15:00 강연자: 김수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학과 교수)

[2] 전시 중 상영프로그램: <기록과 픽션> 장소: MMCA필름앤비디오
2022. 5. 27(수)~7. 17(일). 수, 목, 금, 토, 일 15시(수, 토 19시 야간상영) <상영작> 총 7편 <독일과 정체성>(1994), <비어 있는 중심>(1998), <정상성 1-X>(1999), <11월>(2004), <러블리 안드레아>(2007), <저널 No.1>(2007), <아도르노의 그레이>(2012)


태그:#히토 슈타이얼, #유동성 주식회사, #프레데릭 키틀러,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 #카롤린 크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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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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