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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 1979년 12.12로부터 1980년 5.17을 거쳐 1980년 9월 1일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그의 권력 장악은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1979년 일어난 ‘왕좌의 게임’에서 권좌를 차지한 이는 전두환이었다. 보안사령관이었던 그는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기반으로 기민하게 움직여 권력을 장악했다. 신군부의 권력 탈취로 ‘서울의 봄’은 끝나고 말았다.
▲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 1979년 12.12로부터 1980년 5.17을 거쳐 1980년 9월 1일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그의 권력 장악은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1979년 일어난 ‘왕좌의 게임’에서 권좌를 차지한 이는 전두환이었다. 보안사령관이었던 그는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기반으로 기민하게 움직여 권력을 장악했다. 신군부의 권력 탈취로 ‘서울의 봄’은 끝나고 말았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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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지적처럼 "역사적 대사건은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 희극으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되풀이 되는 두 번째도 비극으로 재현되었다.

박정희 정권기에 청와대경호실ㆍ보안사ㆍ수경사ㆍ특전단 등 수도권 핵심부서에서 독재자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온 육사 11기 출신의 '정치군인'들은 10ㆍ26사태 이후 군부 일각에서 "차제에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곧바로 수도권지역 군부 주요지휘관을 자파세력으로 개편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국군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전두환 중심의 '하나회' 출신인 이들 정치군인들은 4월 14일 전두환이 공석 중이던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취임하여 내각에 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는 한편, 그 전 단계로 12월 12일 정승화를 체포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했다. 

12ㆍ12하극상을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3일 새벽부터 국방부ㆍ육군본부ㆍ수경사 등 국방중추부를 차례로 장악하고, 각 방송국ㆍ신문사ㆍ통신사를 점거하여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었다.

신군부는 5월 초순부터 이른바 '충정작전'의 구실로 충정부대의 서울 인근 투입을 5월 17일 이전에 이미 완료했다. 특히 광주에는 공수부대의 핵심부대를 은밀히 파견했다. 

신군부는 치밀하게 짜여진 작전계획에 따라 5월 18일 0시를 기해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고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령,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외 집회ㆍ시위의 금지 △언론ㆍ출판ㆍ보도 및 방송의 사전검열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에 앞서 17일 밤부터 김대중ㆍ김상현ㆍ김종필ㆍ이후락 등 26명의 정치인들을 학원ㆍ노사분규 선동과,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로 합동수사본부에 연행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정치적 일대탄압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함세웅은 이번에도 엮여졌다. 독재자가 불법무도하게 권력을 취득, 유지할 때면 '제물'을 필요로 한다. '영양가' 높은 사람이 선택된다. 신군부 반란세력은 쿠데타를 하면서 자기들의 권력찬탈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인사들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하였다. 김대중과 광주를 묶고 여기에 각계 명망가들을 골라서 엮었다. 

성당을 다 지어갈 때였어요. 그런데 5월 17일 토요일이었어요. 밤 12시에 수사관들이 그냥 몰려온 거예요. 그때가 성당이 아직 완결이 안됐을 땐데, 문 두들기는 소리가 보통 소리가 아니라 부수려는 소리 같았어요. 그냥 뭐 문을 때려 부술듯이 "쾅쾅" 거렸어요. 문을 안 열었어요. 막 부실 것 같았어요.

"이상하다. 난 정말 한 것도 없는데. 이게 뭐야 또 잡으러 오다니"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성당 비밀통로로 내려가서 밥 먹고 거기서 밤을 세웠어요. 날이 밝아 주일 새벽미사를 했어요. 여섯시 미사를 거기서 그대로요. 그 사람들은 놀란 거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니까 잡아갈 수 없잖아요. 미사가 끝나고 내려가니까 수사관들이 왔어요. 그래서 "나 오늘 주일이라 못 간다. 미사 해야 된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만 지금 못 잡아갔다는 거야. 다 잡아갔는데 말이죠. (주석 1)

수사관들은 신군부가 지목한 사람들이 저항하면 쏘라는 발포명령을 받고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함세웅도 수사관들의 권총 휴대를 보았다고 한다. 

남산에 갔더니 수사관들이 그냥 겉옷을 딱 벗는데 총이 다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 다 총 차고 왔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항하면 쏘라는 발포 명령을 받았대요. 가니까 내가 제일 늦게 잡혀간 거예요. 문익환 목사님 다 오시고 그랬는데 제가 제일 꼴찌였어요. 

그때 두 달 동안 너무 힘들더라고요. 수사 받을 때 전 성경을 가지고 갔어요. 그 성경만 열심히 읽었어요. 조사는 별로 할 게 없어요. 한 게 없으니까. (주석 2) 

속담에 늑대를 피하니까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이 전한다. 함세웅과 민주인사들이 처한 신세가 딱 이랬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일곱 마리 마귀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마귀를 쫓아냈더니 깨끗이 청소가 돼서 그냥 더 나쁜 일곱 마리 악마가 들어왔다고 했잖아요. 그게 생각이 나는 거예요. 

박정희가 죽더니 정말 더 간악한 일곱 마리 악마가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 주 지나니까 조사를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가나 했어요. 그런데 웬걸 세상이 요동을 치더니 다시 5월 말 되니까 무섭게 취조를 하는 거예요. 밤을 세우며 조사를 받았어요. (주석 3)


주석
1> <함세웅ㆍ권호경 감옥의 자유>, 85쪽. 
2> 앞의 책, 86쪽.
3> 앞의 책, 86~8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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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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