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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마을 2킬로미터를 앞두고 차에서 내려 강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회룡포마을 2킬로미터를 앞두고 차에서 내려 강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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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아침 내성천을 다시 찾았다. 15일에 이어 두 번째다. 오는 30일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 생태기행, 모래강 내성천 걷기 여행을 앞두고 다시 사전 답사를 다녀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방문에 물길이 제법 깊었기에, 일주일이 지난 시점 강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궁금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동반한 걷기 여행의 안전을 다시 한 번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내성천의 자랑인 국가명승 제16호 회룡포의 속살에 해당하는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마을'로 가는 길에 도착지를 대략 2km 정도 앞두고 차에서 내려 두 발로 내성천을 걷기 시작했다.

모래강 내성천은 어디로 사라졌나

그러나 제방에서 내려 걷는 순간, 이내 예년과 다른 풍경에 먼저 놀랐다. 모래톱 위를 풀과 버드나무가 장악해 밀림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그 버드나무 밀림을 해치고 한 100여m를 더 들어가니 비로소 강을 만날 수 있었다. 

모래톱 위를 낮은 강물이 흘러간다. 그런데 모래톱이 이상하다. 고운 모래톱은 찾아보기 어렵고 거친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다. 양말을 신었지만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고, 그나마 그 모래톱도 물길이 닿지 않은 곳은 검은빛을 띠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조류(물 속에 사은 식물성 플랑크톤) 사체들이 덕지덕지 붙어 검은빛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물길이 닿지 않은 모래톱은 대부분 이렇게 검고 누런 빛을 띤 조류 사체들이 뒤덮고 있었다. 5개월 전 무섬마을에서 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꽤 넓은 면적의 모래톱 위에 마치 석유를 뿌려놓은 듯, 좋게 표현하면 마치 유화를 그려놓은 듯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외나무다리를 배경으로 펼쳐져 있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그제야 녹조라떼 배양소가 된 영주댐이 떠올랐고, 영주댐에서 불과 5.7km 떨어진 무섬마을의 모래톱 위를 덮고 있는 조류 사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마치 유화로 그림을 그린 듯한 저 검은 곳에는 조류 사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조류 사체의 모덤이었다.
 마치 유화로 그림을 그린 듯한 저 검은 곳에는 조류 사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조류 사체의 모덤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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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장면을 회룡포마을의 입구에서도 확인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분적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물길이 닿지 않은 거의 대부분의 모래톱 위를 조류 사체들이 뒤덮고 있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 조류 사체들이 물과 만나면 물에 휩쓸려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부유한 조류 사체들은 강물 속으로 떠다니며 청정 내성천 물길을 망치고 있었다. 이맘때면 맑은 물만 유유히 흘러갔는데, 조류 사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의 내성천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공포를 뒤로 하고 하류로 걸음을 재촉했다. 지난주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물길이 많이 얕아졌단 것이다. 그땐 좀 깊은 곳은 어른 허리까지 왔는데, 이제는 수위가 제법 빠져서 깊은 곳도 어른 허벅지 정도 왔다. 그래서 걷기에는 훨씬 편했다. 쉴 새 없이 떠내려가는 조류 사체 부유물들만 보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연초록에서 이제 초록이 완연한 회룡포마을 왕버들군락지.
 연초록에서 이제 초록이 완연한 회룡포마을 왕버들군락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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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변을 따라 자란 아름드리 왕버들군락은 이제 잎들이 제법 웃자라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녀석들은 벌써 꽃가루를 내뿜어서 사방에 왕버들 꽃가루가 흩날렸다. 

그렇게 회룡포마을까지 다다라 모래톱 걷기도 끝났다. 회룡포 백사장으로 올라서서 흐르는 내성천을 바라보며 '이런 내성천을 걸으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과 말을 하게 될까'를 떠올리니 이내 슬퍼졌다.

내성천의 두 얼굴, 모래강 내성천 & 조류 사체 배양소 내성천
 
▲ 내성천의 명과 암 … 맑은 물과 조류 사체가 뒤엉겨 있는 내성천 현장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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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성천의 진면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황금빛의 깨끗한 모래톱 위를 1급수 맑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검은빛 거친 모래톱 위를 조류 사체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곳으로 전락했으니, 이런 내성천을 느끼러 여길 찾는 건 서로 손실이 너무 커보였다. 

왕버들군락이 보여주는 식물사회의 매력은 충분했고, 그래서 생태기행에 동행하게 될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이자 유명 식물사회학자인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의 해설이 기대되었지만, 이런 강의 모습을 배경으로 걷기를 하기엔 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성천 왕버들군락에 초록이 완연하다. 벌써 꽃가루를 날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내성천 왕버들군락에 초록이 완연하다. 벌써 꽃가루를 날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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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회룡포마을을 뒤로 하고 백재호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과 함께 상류로 이동하면서 내성천 모래톱 걷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다시 찾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역시 내성천의 자랑인 국가명승 제19호 선몽대다. 휴일을 맞아 선몽대 솔숲에는 가족을 동반한 상춘객들이 많았다. 대다수가 요즘 대세인 캠핑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과 선몽대를 찾은 듯했다. 

이곳 선몽대 또한 예천군에 의해서 수목제거사업이 벌어져 선몽대 앞 모래톱은 풀과 나무들이 모두 제거돼 있었다. 그런데 그 구간이 채 200여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너머엔 풀과 나무들이 들어찬 전형적인 습지의 형태의 내성천이 있었다.
 
예천군에서 수목제거사업을 한 선몽대 앞 내성천에서 아이와 엄마가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예천군에서 수목제거사업을 한 선몽대 앞 내성천에서 아이와 엄마가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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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들을 모르는 방문객들은 그저 그런 환경을 즐길 뿐이다. 아이와 함께 내성천으로 들어와 그렇게 강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곳 물속 사정은 회룡포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류 사체 부유물이 둥둥 떠다녔다. 이곳 선몽대도 대안이 될 수는 없을 듯했다. 우리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모래강 걷기의 진면목을 간직한 우래교 구간

바로 우래교 구간의 내성천이다. 그나마 가장 내성천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멱실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우래교 바로 아래까지 1km를 걸으면 어른 걸음으로 30~40분 정도 소요된다. 걷기에 딱 적당하고 모래강을 느끼기에도 괜찮은 길이였다. 

이 구간은 특히 물길이 많이 낮아서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과거 필자가 초등학교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많이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그대로 자연의 일부 속으로 들어가 강과 하나가 되어 놀기 바빴다. 물길 걷기의 의미보다는 강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아도 안전한 강 내성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국가가 보호에 나서여 할 강이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아도 안전한 강 내성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국가가 보호에 나서여 할 강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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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강의 일부가 되어 신나게 논다.
 아이들은 강의 일부가 되어 신나게 논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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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 구간의 내성천은 하류에서 보던 그 모습보단 조금은 나았다. 이곳 또한 조류 사체들이 엉켜있는 구간이 물론 있었지만, 물속으로 조류 사체 부유물이 많이 떠다니진 않았다.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떠올리며 모래강을 걷고 우래교 직하류에 다다르자 물살은 더욱 세차졌고 강물은 더욱 깨끗해 보였다. 역시 흐르는 강물은 막지 못한다. 강이 세차게 흐르니 강이 더욱 역동적이고 깨끗해 보여 나의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깨끗한 모래톱과 그 아래를 흐르는 맑은 물줄기. 그리고 주변 산의 초록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깨끗한 모래톱과 그 아래를 흐르는 맑은 물줄기. 그리고 주변 산의 초록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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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을 방문하고 나니, 30일 생태기행 일정이 고민됐다. 당장 모래강 걷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일정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기 때문이다. 회룡포마을 초입 걷기를 이곳 우래교 일대 걷기로 급히 수정해 재공지해야 할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도 일장일단이 있는 구간이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좀더 고민해보기 했다. 지금 아이들까지 포함된 회원들의 구성으로 봐서는 우래교가 맞을 것 같고,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기에는 회룡포 구간이 맞을 것 같고 암튼 고민이 깊어진다.
   
모래강 걷기의 대원칙을 염두에 두면 걷기에 편안하고 의미를 실어줄 수 있는 구간이 안성맟춤일 것 같아서 고민이 길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어디가 됐든 모래강을 걷는다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가는 이색적인 체험이다. 처음 물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물길을 걸을 수 있다는 상상력만으로 행복해 한다.
  
내성천 모래강 걷기를 통해 '국립공원 내성천'을 꿈꿔본다
 
내성천 물길 걷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아름다운 내성천을 따라 물길을 걷고 있다
 내성천 물길 걷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아름다운 내성천을 따라 물길을 걷고 있다
ⓒ 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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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하천 정책은 들어가 체험하는 강이 아니라 서서 바라보는 강으로서의 기능이 강했기 강 속으로 들어간다는 상상은 쉽게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하천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보는 강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하는 강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강 속으로 사람들이 걸어들어가 멱을 감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상상을 해보라. 강과 혹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귀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도심의 한강에서도 누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건강한 여가 문화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독일 이자르강 도심의 구간에서 사람들이 강수욕을 하고 독서를 하고 물놀이를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곳 내성천 모래강 걷기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시작으로 그 변화를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래강 걷기의 성지로서의 내성천, 어떤가? 그 이미지로 내성천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고 귀한 강문화를 체험하는 곳으로서 내성천이 자리매김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 하천 정책도 많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저 무용지물 댐 영주댐부터 처리해야 한다. 영주댐은 목적을 상실했다. 낙동강 수질개선을 목적으로 태어난 영주댐에 물을 채우는 순간 녹조로떼 배양소가 되기 때문에 이 물로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할 수는 없다. 영주댐은 이미 두 차례의 시험담수로 그 목적을 상실했음이 증명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이 맞다.

이 나라 최초의 하천 국립공원이란 타이틀을 달고 모래강 걷기 체험의 성지가 된 내성천을 그려본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게 다가온다. 모쪼록 30일 진행되는 생태기행이 다시 사람들을 내성천으로 불러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시 되찾아야 할 모래강 내성천의 아름다운 모습. 이런 강이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시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영주댐도 철거될 수 있다.
 다시 되찾아야 할 모래강 내성천의 아름다운 모습. 이런 강이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시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영주댐도 철거될 수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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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낙동강과 내성천을 기록하면서 4대강사업의 부당성을 고발해오고 있습니다. 저서에 <내성천의 마지막 가을 눈물이 흐릅니다>(2018, 도서출판 참)이 있습니다.


태그:#내성천, #모래강 걷기, #국립공원 내성천, #대구환경운동연합,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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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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