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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주52시간 상한제 탄력운영(선택근로제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손질, 기업규제 해소 등을 얘기해왔습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 노동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것은 물론 생명과 안전마저 위협하는 내용입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4월 29일~30일 인수위 앞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반노동 입장을 규탄하는 1박 2일 투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윤 당선인의 입장이 왜 문제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싸우고자 하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기고글로 알릴 예정입니다. [기자말]
"뭐 쫌 있는 놈들이 세상 다니며 우리가 좋은 나라라며 국가브랜드랍시고 팔고 다니는데, 정작 노동자만 죽어나는 뭣같은 나라아니겠나, 제작 가성비 얘기를 자랑처럼 떠들고 있잖아. 그런데 그 노동자도 못되는 우린 '가짜 노동자'다. 52시간을 더 유연하게 한다고? 근로계약을 써야 그것도 하지 않냐, ㅋㅋ"
한창 OTT드라마 촬영 중인 친구가 실소를 터뜨린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는 최근 <영화제작 현장, 주52시간제 근무 활용 안내>라는 가이드북을 발간(2021.12.)했다. 근로기준법상 일 8시간, 주 40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52시간제라고 제목을 쓴 것에 대한 불편함은 잠시 내려놓기로 하자.

해당 가이드북 FAQ에서는 "근로기준법상 영화제작 스태프는 근로자인가요?"에 대해 "네, 영화제작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입니다(중략)"로 답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상 영화 촬영감독(감독급 스태프)은 근로자인가요?(감독급 스태프: 미술감독, 현장편집기사, 촬영감독, 녹음감독 등)"에 대해서도 "네, 영화 촬영감독(감독급 스태프) 또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입니다(중략)"로 역시 동일한 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방송·OTT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여전히 도급·위탁·통계약이 만연해 있다. 수차례의 노동부 진정에도 현장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 쥐어짜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방송·OTT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여전히 도급·위탁·통계약이 만연해 있다.
 방송·OTT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여전히 도급·위탁·통계약이 만연해 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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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건설현장 철근콘크리트조 노동자가 교각·항만 공사장에서 동일하게 철근콘크리트 업무를 하면 '개인사업자'가 되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영상제작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화할 때는 근로계약을 쓰던 연출·제작·미술·촬영·조명·녹음 등 다양한 부서의 스태프가 드라마제작현장에서는 갑자기 개인사업자처럼 계약을 한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현실은 이런데 정부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시절 120시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막말을 하더니, 당선 이후에도 다양한 산업계 최고 경영자들을 만나 52시간 유연화, 선택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공언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여야 노동자도 좋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대단한 국가 발전 정책인냥 제시한다. 그러나 실상은 '노동자를 쥐어짜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 뿐이다.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에는 계약시 구체적인 근로시간을 명시하게 되어 있다.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한다' 수준으로 계약하도록 하고 있다. 영화 및 드라마 제작시 계약에서 제작사는 이와 비슷하게 해당 프로젝트(영화 또는 드마마 등) 전체 촬영 일정에 관한 '월 촬영 계획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류로만 존재한다. 촬영장소 사정, 날씨, 주요 스태프와 배우의 사정 등 다양한 문제로 변경되기 일수이다. 그리고 제작현장의 대다수 스태프는 보통은 그에 따른 변화에 맞춰야 한다. 드라마제작의 경우 이마저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권고하는 영화산업 근로표준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은 '시간급'과 '주휴일'(특정요일)뿐이다. 영상제작은 고도의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친다. 영화제작현장에서 1일의 노동시간을 법 기준인 8시간에 한정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노동집약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현장 노동자의 배려이기도 한다. 이런 바탕에서 통상 1주 4~5일을 일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스태프는 계약서의 요일로 확정된 주휴일을 제외한 6일 모두 영화제작 스케줄에 매여 있다. 다양한 이유로 언제든 일하는 요일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월화수목 예정된 촬영이 24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 내에 바뀔 수도 있다. 주휴일을 제외한 6일 동안 제작사는 법 기준인 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 한도인 12시간 도합 52시간을 여기 붙였다가 저기 붙였다가하며 촬영을 진행한다. 이미 현장은 최대한도로 '유연화'하여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유연화'가 필요하단 말인가?

근로계약이나 제대로 챙겨라

타 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선인 근로기준법은 이미 노동시간 유연화, 열악한 소사업장의 예외, 휴일대체, 보상휴가제 등으로 인해 누더기로 변하면서 애초의 취지가 자꾸만 옅어지고 있다.

자본은 산업 전반에 걸쳐서 해당 산업으로 돈을 벌되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신산업은 간접고용의 극단으로 노동자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하지만 법제도적으로는 의무를 회피하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 산업의 고용관계도 플랫폼 산업의 고용관계를 닮아가고 있다. 유연근로제도 확대도 그 일환일 것이다. 사용자 책임을 피하기 위해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 3.3%를 떼는 것으로 위장된 '가짜 3.3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29일 인수위 앞에 모여 선택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윤석열 차기 정부의 노골적인 반노동정책 중단을 요구할 예정이다.
지금 대한민국 노동현장은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불법과 편법이 판치고 있다.
차기 정부는 더 유연하게 노동자를 사용하는 정책을 내기 전에 기본인 근로계약이나 제대로 챙겨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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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현장 촬영스태프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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