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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9살 생일에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 함께 다녀왔어요. 사랑이가 태어난 산부인과 앞에서는 '네가 낳아주신 분 뱃속에 있을 때 진료를 받고 태어났던 곳이야'라고, 소아과에서는 '네가 태어나서 이틀 후에 B형간염 예방접종 1차를 맞았던 곳이야'라고 말해주며 함께 둘러보았어요. 사랑이에게 '여기에 오니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았더니 '좋아, 그냥 좋아!'라고 말하며 웃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11살 때는 사랑이의 생모가 머물렀던 미혼모의 집을 다녀왔는데 마침 사랑이 생모를 담당하셨던 수녀님이 계셔서 생모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생모가 머물렀던 방과 식당, 성당, 사랑이가 태어나서 이틀 정도 함께 지냈던 방도 볼 수 있었어요.

생모가 사랑이를 입양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성당에서 드렸다는 기도문을 수녀님이 읽어 주셨는데 기도문 중에 '이 아기를 축복해주세요'라는 부분에서 기분이 이상했다고 사랑이가 말하더라구요. 키우고 싶었지만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아기를 축복해 달라고 기도한 생모의 마음이 고맙고도 슬펐다고 말하던 사랑이를 꼭 안고 둘이 같이 울었어요. 그날의 경험은 사랑이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중 최고의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여름 입양엄마 토크콘서트 '입양의 맛'에서 열두 살 사랑이(가명)의 엄마 서현주(가명)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날 사회를 맡았던 성인입양인 이지은(가명)씨는 엄마와 함께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생의 조각을 맞춰가는 사랑이의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고 부럽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원가족과 분리된 후 입양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인생의 조각을 찾는 일은 삶의 안정과 건강한 정체성 형성을 위해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어린 입양자녀가 생부모를 만나고 싶어 한다며 만나게 해주어도 되냐는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궁금증과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하면 최대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부모가 이야기해주기 힘든 부분을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아이에게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가정이 그간 입양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으로 입양의 대화를 나누며 만남을 준비해 왔는가이다. 입양으로 만난 가족이지만 아이가 지금의 가족 안에 완전히 소속되고 연결되어 있으며 부모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눠왔는지가 중요하다. 안정감을 갖고 생부모를 궁금해하는 것과 그렇지 못해 소속감 없이 살며 생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양부모는 아이가 커갈수록 입양을 잊어버리고 사는 반면, 아이는 자랄수록 자신의 입양에 대해 여러 각도의 자각과 궁금증을 더해간다. 어릴 때는 엄마의 답변만으로 궁금증이 해소되지만 자랄수록 생부모의 존재를 직접 만나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다.

뿌리찾기는 모두에게 두려움 건네

아이와 어려서부터 입양 관련 대화를 개방적으로 해온 가족이라면 생모를 만나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입양과 관련한 대화를 꾸준히 하다 보면 아이의 생각이 얼마만큼 자랐는지, 자신과 생모에 대한 감정은 어떠한지, 아직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사랑이와 엄마처럼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관으로부터 받는 정보와 기록을 가지고 아이가 태어난 곳이나 관련 있는 장소에 들러 새롭게 그 시간을 경험하며 감정을 나누는 것이 아이의 안정과 궁금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아이가 생모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 마음은 존중되어야 하며 온 가족이 재회에 대한 준비를 새롭게 이어나가야 한다. 생모에게 재회를 청구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과정,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각자의 두려움을 나누는 것, 혹시라도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이후의 삶은 어떻게 이어가고 싶은지, 그렇게 변화를 맞이한 이후 가족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지 이야기하며 새로운 삶으로의 확장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뿌리찾기는 입양 삼자 모두에게 두려움을 건넨다. 아이는 만나고자 하는 자신의 바람이 생모에게 다시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입양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을 생모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생모는 자신이 떠나보낸 아이가 자신을 비난하고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어렵게 만난다 해도 적게는 십수 년, 많게는 수십 년 헤어졌던 이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확인하고 싶었던 질문을 건네고, 이후 어떻게 관계를 정리할지 이야기하는 자리는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초조함과 불안함, 원망과 기대감, 연민과 분노 등 어마어마한 감정의 폭풍우를 통과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의 가족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다면 조금은 뒤로 미루는 것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순간일수록 내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에서 안정감을 먼저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나의 입양가족, 나의 배우자, 나의 자녀들,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사랑해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는 예상치 못한 터널을 통과할 때 큰 힘이 된다.

뿌리찾기는 입양인에게 있어 생의 시작과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잃어버린 조각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대부분은 현재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입양, #모두의입양, #뿌리찾기, #입양정보공개청구,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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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저자, 가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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