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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가리키는 시계추에 탄력이 붙으면서 주요 대권주자들의 행보도 분주해지는 모양새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들은, 스스로의 정치철학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최재형 예비후보의 '이승만 고평가' 발언이 시사하는 함의는 커 보인다.

최재형 예비후보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헌법 가치 측면에서' '가장 높게 평가'한 것. 그것은, 제1야당의 주요 대권주자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상시킨 정치행위로써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즉, 선거의 결과의 따라서는 최재형 예비후보 개인의 견해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방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아주 무거운 발언이라고 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이 미래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할 가치로 제시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국민의힘 회의실에 걸려있는 이승만 사진 
 
왼쪽부터 김영삼,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었던 구 자유한국당, 현 국민의힘 모습(자료사진)
 왼쪽부터 김영삼,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었던 구 자유한국당, 현 국민의힘 모습(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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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예찬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당장 최재형 예비후보의 소속정당인 국민의힘 회의실에도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가장 좌측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최재형 예비후보의 이승만 고평가 발언에 대해 '당 차원에서도 이승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관련기사: 윤석열·최재형 불참에 다른 후보들 "당을 개무시, 왜 입당했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존재는 미래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의 가치로써, 비전으로써,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을 미래 대한민국의 지향점으로 제시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이승만 정부에서 자행되었던 수십만 규모의 민간인 학살과 헌법유린의 과오는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특히 69년 전 이맘때 여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에 저항하였다가 사실상 숙청되고 만 어느 군인의 이야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래가치로 언급되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깊게 만든다.

1952년 5월, 한국전쟁 중이던 대한민국의 최후방이라 할 수 있었던 부산에도 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폭력배들과 친정부 어용단체들은 연일 국회를 겁박하는 시위를 벌였고, 5월 23일에는 이들에 의해 아예 국회의사당이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다음날에는 동래의 무장공비 출현을 빌미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영남지구 계엄사령관 원용덕 소장은 자신에게 부여된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이용해 야당의원들을 탄압하였다. 의원 50명이 탄 국회버스를 크레인으로 끌어내고 이들을 헌병대에 억류하는가 하면, 13명 의원을 체포하여 불법구금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는 사태들이었다.

물 건너간 평화적 개헌... 힘으로 밀어부치려던 이승만 

이때의 파동은, 임기만료일을 앞두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단행했던 사실상의 친위쿠데타였다. 기존의 간선제로는 반대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도저히 대통령에 재선될 수 없었던 상황. 금권과 권력, 지방행정조직을 총동원하여 선거의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직선제로 개헌하는 것은 이승만 정부 연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지난해 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었던 시점이었으므로, 평화적인 개헌은 물 건너간 셈이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힘으로라도 헌법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한번 권좌를 차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부산정치파동과 억지 비상계엄은 그렇게 빚어졌다. 경악한 김성수 부통령은 이승만의 폭정과 영구집권욕을 규탄하며 즉각 사임하였으니, 당시 파동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것이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렇게 친위쿠데타가 단행되었지만, 이승만 측에게도 나름의 문제는 있었다. 이때 부산에 있는 병력이라고는 2개 중대 규모의 비전투병력이 전부였던 것이다. 국회와 야당을 제압하기 위해 발효한 비상계엄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병력이 필요했지만, 대다수의 병력들은 전선에서 공산군과 격전을 이어가고 있었으므로 계엄임무에 투입할 여유 병력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계엄을 위한 병력 내놓으라 요구하자... 거부한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임무를 위한 병력을 내놓으라 육군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종찬 중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이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진노했다.
 
이종찬 중장은 일본육사 출신으로 국군 내 일본군 파벌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종찬 중장이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되어 미국으로 쫓겨나던 당시, 박정희 등의 소장파 장교들이 그에게 정변을 제안하였으나, 이종찬 중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 부산정치파동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종찬 중장 이종찬 중장은 일본육사 출신으로 국군 내 일본군 파벌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종찬 중장이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되어 미국으로 쫓겨나던 당시, 박정희 등의 소장파 장교들이 그에게 정변을 제안하였으나, 이종찬 중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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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을 소환한 이 대통령은, 그가 거수경례를 올리기가 무섭게 "귀관은 어찌하여 나라에 반역하고 나에게 반역하는가!"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사임까지 각오했던 이종찬 총장은 완강했다. 며칠에 걸쳐 겁박과 회유가 이어졌지만, 이종찬 총장은 끝내 이승만 대통령이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각하, 정치적으로 복잡한 이때 무리하게 군대를 동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군은 정치에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 원칙은 깨지게 될 것이고, 그런 전례는 잘못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이종찬 총장이 소신을 굽히지 않자, 이승만 대통령은 유재흥 육군참모차장을 불러 이종찬 중장의 포살을 명했다.

"참모총장이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대통령은 국군 최고사령관이고 대원수다. 참모총장이라 하더라도 대원수에 항명하면 극형에 처한다. 즉시 포살하여 전군의 시범으로 하라!"

유재흥 참모차장의 설득으로 이종찬 총장 포살은 실시되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이종찬 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냉대로 고통받아야 했다. 거기에 더해 친이승만 세력으로부터의 암살위협 역시 그를 괴롭혔다.

결국 7월 22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중장을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시켰다. 이종찬 중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명한지 두 달 여만의 일이었다. 육군참모총장직을 잃은 이종찬 중장은, 떠밀리다시피 8월 중순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47년 4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승만이 하지 미군정사령관과 만나는 모습
 1947년 4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승만이 하지 미군정사령관과 만나는 모습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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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5월에서 8월에 이르는 이때의 정국은, 이승만 정권의 본질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연장을 위해 헌법 파괴와 야당 탄압, 공권력 오남용도 서슴지 않았던, 명백한 의미의 독재자였다. 그에게 있어 대통령은 임금과 같았으며, 그 봉건적 군신관계에 '역행'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시했던 이종찬 중장과 같은 인물은 포살해야 마땅한 역적이었다.

이러한 인물이 자유민주주의의 질서를 수립한 국부로 추앙받는 이 대선정국은, 웃어야 할 코미디일까, 울어야 할 비극일까.

덧붙이는 글 | (기사 참고문헌: 강성재, 1986, <참군인 이종찬 장군>, 동아일보사)


태그:#이승만, #최재형, #국민의힘, #부산정치파동,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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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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