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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수쟁이입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쳐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깊이 새기려고 합니다. 특히 저는 예수님께서 연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했던 모습을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9년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벌였던 파업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노동자들이 연대감을 확인하는 방식은 서로 끌어안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요금소 캐노피에서 농성을 벌였던 노동자들이 땅으로 내려와 청와대에서 농성을 벌였던 노동자들과 만나 서로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김천으로 내려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만나 또 끌어안고 '신나게' 울었습니다. '신나는 울음'은 부정적인 실패의 울음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는 연대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서로에게서 강한 연대의식을 확인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째, 잘 정돈된 농성장입니다. 저는 김천에 내려가 본사 로비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미사를 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신자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위해 미사를 하면서 다른 노동자들 역시 고립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깨끗이 정리 정돈된 농성장 안에서 1년 365일이라도 있을 준비가 된 듯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자는 '이 집(도로공사)은 내 집이야'라는 주권 의식과 참여 민주주의를 내재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분들께는 좀 생소하겠지만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가난하고 잡혀가고 눈멀고 억압받는 이들이란 당시 기득권자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심지어 혐오를 받으며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설움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현시대에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고,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잡혀가고 눈멀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며 연민을 느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연민이란 단어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연민의 감정은 사람을 살리는 감정입니다. 우리 문화에서도 이런 연민의 감정은 어떤 장기와 관계된 감정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보며 애간장이 끊어질 듯한 아픔이 바로 이 연민의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는 그런 감정입니다. 예수님은 연민의 감정으로 그들을 만났고, 그들과 사셨고,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은 차별과 배제가 없는 평등하고 공정한 삶이고, 그래서 그들에게 해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형태인 비정규직으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비교하여 불합리한 대접과 차별을 받으며 노동을 합니다. 

어려서 학교에서 배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얘기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이지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입니다. 현실에는 대단한 일과 사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한 일에 대한 의미 부여는 매우 정치적이고 권력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의미 부여와 권력의 높고 낮음이라는 위계에 따라 대단한 일과 사소한 일이라는 차별이 생깁니다. 이 차별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의 노동은 철저히 무시되고 저평가 됩니다. 사소한 일이라는 차별뿐만 아니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존엄성도 차별을 당합니다. 

콜센터 노동자의 대답이 곧 정부의 대답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조합원들이 고객센터 직영화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2021.6.16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조합원들이 고객센터 직영화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2021.6.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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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콜센터 직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공단 내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콜센터 직영화 반대 입장은 결국 '공정'을 빌미 삼아 차별의 벽을 더 두텁고 높게 세우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콜센터 노동자들의 일을 부수적인 것,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일터 안에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흐름이 정부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 무시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미소한 존재의 수고와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도움과 노력이 무시될 때 차별은 자라납니다.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화기 넘어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잡아주는 노동은 결코 사소하지도 않고, 무시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들이 곧 국민건강보험공단이고, 이들의 대답이 정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하면서도 고용불안과 저임금, 차별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간절한 외침에 정부가 응답해야 합니다. 

(천주교 예수회 신부)

태그:#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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