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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만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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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윌튼 그레고리(Wilton Gregory) 추기경의 과거 이력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빽빽한 순방 일정 속에 어렵게 시간을 마련해 마지막 날 일정을 소화하기 전 이른 아침부터 그레고리 추기경을 만난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전날(21일)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러 성과를 거뒀다. 방미 일정 마지막날, 문 대통령으로선 한숨을 돌릴 때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부터 그레고리 추기경을 찾은 데엔 회담 성과를 현실화하기 위한 복안이 깔려 있다. 

'인종 차별' 비판해 온 최초의 흑인 추기경 그레고리 대주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면담한 뒤 '구르마 십자가'를 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면담한 뒤 "구르마 십자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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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면담에서 직접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국내 가톨릭 신도들이, 특히 신부님이나 주교님들이 이번에 제가 순방을 가게 되면 그레고리 주교님을 꼭 좀 만나 뵙고 좋은 말씀을 청하라고 당부를 했다"고 면담 이유를 밝혔다. 

'좋은 말씀'을 청하면서 문 대통령은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잇따르는 증오범죄와 인종 갈등 범죄에 한국민도 함께 슬퍼했다"면서 "증오방지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해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꾸준히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최근 잇따르는 '아시아계 혐오 범죄'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구한 것이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고 1주기가 화합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끔찍한 폭력이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문 대통령의 이번 방미에 맞춰 '아시아계 증오범죄 방지법안(COVID-19 Hate Crimes Act)'을 처리하고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이를 언급하며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많은 시민들로부터 존경 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인 그레고리 추기경의 목소리까지 실린다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 면담 일정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잊혀진 '교황의 북한 방문' 되살려 낼까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와 면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와 면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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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좋은 말씀'도 청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로마를 방문해 교황님을 뵈었는데, 한반도 통일을 축원하는 특별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면서 "(교황께서) 여건이 되면 북한을 방문해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소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진전을 위해 긴밀히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또 "한미 양국이 이러한 공동의 시대적 과업을 함께 완수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만큼, 문 대통령의 관련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달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전날(1월 19일) 개최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할 것을 강조하는 기도를 봉헌하기도 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 대통령에 영향력을 끼치는 종교계 유력 인사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그레고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진보적인 견해를 공유하고 있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더군다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명으로 추기경 서품을 받아 2019년 최초의 흑인 추기경이 됐다. 그렇기에 그레고리 추기경의 영향으로 이제는 잊혀지고 있는 교황의 방북 시도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진보적 견해 공유...교회 내 성범죄에 단호한 대처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만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 대주교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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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추기경은 워싱턴 대교구의 대주교를 2019년부터 수임 중에 있다. 1947년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그는 120만명의 신자를 보유한 미국 남부 애틀랜타 대교구를 14년간 이끈 미국의 대표적인 개혁 성향 성직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미국에서 몇 안 되는 흑인 주교 가운데 한 명이다. 2001∼2004년 미국가톨릭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9년 5월 성추문에 연루돼 물러난 도널드 우엘 추기경을 대신해 워싱턴 대교구 대주교에 임명되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주교가 됐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성추문에 대해 가장 단호한 의견을 천명해 왔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배경이 된 2002년 미국 보스톤 대교구의 대형 성직자 성범죄 및 은폐 사건이 터졌을 당시 미국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때 그는 아동성범죄 신고를 의무화하고 사법당국의 모든 성범죄 조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내용이 담긴 미국 주교회의 헌장과 사건 처리 절차 규범의 통과를 주도하기도 했다.

존 F.케네디 이후 첫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일화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일부 보수 가톨릭에서 당선인이 여성 낙태권을 지지한다는 점을 들며 성찬 세례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 유세 중에 영성체를 못 받았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바이든의 미사 참석을 제한할 생각이 없다"며 "대신 대통령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하며 성당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지난해 11월 26일 바티칸에서 서품식을 하기 직전 AP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미국의 흑인 가톨릭 성도에 대한 승인이며 우리들이 대표하는 미국의 신앙과 충심의 유산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5월 그레고리 추기경은 미국 전역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워싱턴=공동취재단·서울=유창재 기자(yoocj@ohmynews.com)]

태그:#문재인,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한미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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