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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에게 모욕죄 고소당했으니, 경찰서에서 나와 조사받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경찰관에게 모욕죄 고소당했으니, 경찰서에서 나와 조사받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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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경찰서 사이버팀이라며 전화가 와 욕을 하고 끊었다. 다시 전화가 와 "포탈사이트 아이디가 OO 맞죠?" 한다. 확인해 보니 진짜 경찰서 맞았다. 경찰관은 보이스 피싱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말하며 내 신분을 확인하더니, "혹시 기사에 OOOO 댓글 단 기억 있냐"고 물었다. 바로 기억이 났다.

이후 담당 경찰 조사관은 건조한 목소리로 모욕죄 고소당했으니, 경찰서에서 나와 조사받으라고 했다. 나는 서울경찰청 통역위원이라 경찰서, 법원에 종종 갔었다. 긴장한 외국인 피의자, 피해자 또는 참고인에게 긴장을 풀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전화를 받고 나니 그들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형법 제311조(모욕죄),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단,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발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

당시 내가 쓴 댓글을 찾아내 법조계 지인 등에게 자문했다. 그들은 "수위가 높네, 그런데 처벌은..."이라며 고개를 갸웃했고, 난 난생처음 고소당한 황당함에 심란했고 불쾌했다.   

모욕 혐의로 고소 당하다

이 이야기는 2013년 7월에 시작됐다. 당시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위치한 한 호두과자업체는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광고를 내고, '노알라(고 노 전 대통령 얼굴과 코알라를 합성한 사진)', '중력의 맛', '고노무 호두과자', '추락 주의' 등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문구가 찍힌 문구용 스탬프와 호두과자 박스를 배포했다. 종이박스에는 인증받은 제품처럼 천안시 심볼과 유관순 열사 문양도 있었다.

2014년 4월, 한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업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노무현재단 측에 사은품의 명예훼손 상황을 알리겠다", "천안시청에 고발하겠다",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등 비판이 잇따랐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천안 호두과자 불매운동에 동참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서명 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업체는 한동안 홈페이지와 영업장 문을 닫았다. SNS를 중심으로 지역 특산품 호두과자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타 업체까지 피해를 보는 등 상황은 심각해지자, 업체는 노무현재단에 '그럴 의도가 없었다'며 사과했고, 노무현재단은 그 말을 믿고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2014년 11월 이 업체 대표의 아들인 A씨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욕한 적도 없지만, 설령 욕을 했다고 해서 여러분이 저희를 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며 "일개 비매품으로 희화화 캐릭터 도장 달랑 6개, 받고 싶은 사람한테 나눠준 걸 가지고 고소한다? 대체 이 사실 가지고 무슨 죄명으로 고소를 하고 처벌을 한다는 것인지"라고 반문했다.

이어 "부모님은 도장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전부 다 제가 한 일"이라며 "사과는 일단 사태수습용으로 한 겁니다만 그마저도 이 시간부로 전부 다 취소하겠다"며 업체를 비난하는 글을 남긴 누리꾼을 고소했다. 당시 A씨는 2014년 4~5월경부터 세 차례에 걸쳐 누리꾼 200여 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중 하나인 내 댓글도 소환된 것이다.

경찰서에 가니 담당 경찰관은 절차에 따라 신분증을 확인, 복사하고 지문을 찍고 피의자 권리를 위한 각종 제도를 안내했다. 그동안 내가 법원과 경찰서 등에서 마주한 외국인에게 중립적 위치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전달했던 익숙한 과정들이었다.

분위기는 편안했지만, 경찰관과 마주 앉아 조사받는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댓글을 적을 당시 기억을 정확하게 끌어와 사실관계를 조서에 꾸미는 게 스트레스였지만 말이다.

조서 말미에 하고 싶은 말 하라기에,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큰 잘못을 했냐.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 주신 분 아니냐. 왜 돌아가신 후에까지 이렇게 장난질을 하냐. 그분을 존경하기에 내가 쓴 댓글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내 댓글이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국가에서 받은 훈·포장, 표창장 등을 첨부하라기에 제출했다.

재판부의 판결

고소당한 남녀노소 누리꾼 중엔 지인도 있었다. 점잖은 훈계 댓글로 몇십만 원 벌금 맞은 사람도 있으나 검사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어린 학생과 마음 약한 몇 사람은 결국 돈으로 합의했다.

한 지인은 벌금이 부당하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몇 해가 지난 2018년 12월 11일 무죄 판정을 받았다. <한겨레>의 '[단독] 노무현 비하 일베 호두과자 비판한 누리꾼... 법원 "배상책임 없다'에 따르면, 당시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신상정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 제품의 제조·판매 행위를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댓글이 작성됐다. 사건과 관련된 일베는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각종 글과 사진 등으로 다수의 피해를 야기했고 누리꾼들의 비판글 게시는 이러한 배경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소당한 누리꾼 대부분 역시 무혐의, 기소유예, 각하, 공소권 없음 등 처분을 받았다. 사실상 죄가 없거나, 재판할 사안은 아니라고 검찰이 판단한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은 인터넷 댓글에 대한 고소 남발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고소 남용으로 판단되면 피고소인을 불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부 네티즌의 불기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기사에서 내 댓글을 다시 찾다 이런 댓글을 보았다.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킬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죽음을 놀림거리로 삼는 것은 이미 사람도 아닌 짐승도, 미물도 아닌 것이다."  
 
밀짚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봉하마을을 둘러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밀짚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봉하마을을 둘러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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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4월 25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해 귀향한 지 14개월 만에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이 1백만 명을 넘어서다. 

- 2009년 5월 23일 서거하다. 오전 6시 40분께 봉하마을 사저 뒤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다. 오전 9시 30분 사망하다. 집을 나서기 전 집무실 컴퓨터에 써놓은 짧은 유서가 발견되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봉하마을회관에 빈소가 차려지다.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국민들은 큰 충격과 비통에 빠지다. 봉하마을 빈소와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 각계의 애도와 조문 행렬이 잇따르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십만 건의 추모 서명과 글이 올라오다.

- 2009년 5월 24일 서거 이틀째. 봉하마을에 20여만 명이 조문.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아고라 등에는 이날 오후까지 3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추모 서명과 글을 남기다.

- 2009년 5월 25일 서거 사흘째.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가 상주로 조문객들을 맞다.

- 2009년 5월 26일 서거 나흘째. 봉하마을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이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다. 전국에 차려진 분향소는 263곳으로 집계되다.

- 2009년 5월 27일 서거 닷새째. 유족 쪽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밤까지 봉하마을 조문객 수가 78만 4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밝히다.

- 2009년 5월 28일 서거 엿새째. 영결식을 하루 앞둔 이 날도 봉하마을 조문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다. 장의위원회는 이날 조문객이 1백만 명을 넘길 것으로 추산하다.

- 2009년 5월 29일 오전 5시경 밤새 봉하마을을 지킨 조문객 3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인식이 열리다.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되다. 영결식장 전광판에선 "바보라는 별명이 제일 맘에 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인터뷰로 시작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4분짜리 영상이 상영되다.

- 2009년 5월 30일 국민장이 끝났으나 봉하마을과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 뒤늦게 찾은 조문객들의 조문이 이어지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가 이날 오전 5시 30분 경찰들에게 강제 철거되다. 경찰들은 밤새 광장을 지키던 시민들을 몰아내고,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다. 이 과정에서 거세게 항의하던 시민 두세 명이 강제 연행되다.

- 2009년 5월 31일 시민들이 '시민분향소'가 강제 철거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자리에 임시 분향소를 다시 차리다.

- 2009년 6월 14일 봉하마을 논에 이날 오전 새끼오리가 풀리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지난해 이어 올해도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 2009년 6월 21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운동장에서 추모 공연이 열리다. 추모 공연의 이름은 '다시, 바람이 분다'. 오후 6시경부터 모여들어 11시 30분경 끝나다. 참가자는 주최 쪽 추산 1만여 명(경찰 추산 6천여 명).

- 2009년 6월 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가 보수 성향 단체 회원들에 의해 부서지고, 경찰은 방조하다.

- 2009년 6월 26일 서울 조계사에서 49재의 다섯 번째 재가 봉행되다.

- 2009년 7월 10일 봉하마을에 안장되다.

노무현재단의 '노무현사료관' 중에서
 
혐의없음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 적힌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 적힌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 조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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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사받고 얼마 후 "귀하에 대한 고소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함을 알려드립니다"란 사건처리 결과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죄가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담당 검사의 전화가 왔고, 마지막으로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 찍힌 피의사건 처분 결과 통지서를 받았다.

처음엔 담담했으나 몇 주간은 찝찝했고, 그사이 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또 무혐의가 돼도 고소인을 역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누리꾼들에게 고소를 남발했던 그 업체는 지금도 호두과자를 팔고 있고,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던 보수 성향 단체(국민행동본부 애국기동단,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처벌받았다는 뉴스는 아직 못 봤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서거하셨으니 벌써 서거 12주기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자 시민이었던 사람.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 당시 우리에겐 과분했던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태그:#조마초, #마초의 잡설 , #MACHO CHO, #노무현, #호두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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