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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마다 겨울눈이 경칩을 맞이하여 기지개를 켠다. 고갯길을 오르며 중력을 역행하는 걸음은 언제나 힘들다. 물매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인내를 학습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마음이 가볍다.

임실읍은 해발고도가 230m 정도이고 오수면은 140m로 임실읍 쪽이 해발고도가 90m쯤 높다. 오수면 지역의 지반이 침식 작용이 더 진행되어서 해발고도가 낮다. 임실역 앞에서 오수면 방향으로 17번 국도를 1km쯤 달리면 고개를 하나 넘는다.

삽재다. 고개 이름에서 '삽' 어휘의 어원(語源)은 명확하지 않다. 삽재는 고갯마루에서 북쪽의 고갯길은 짧고 남쪽의 고갯길은 길게 늘어져 있다. 그래서 고개의 지형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긴 형세로 보인다.

삽재는 고갯길이 진화하는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 고갯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실 삽재 개요도'를 그려보았다.
 
임실 삽재의 도로, 옛 철길, 전라선 철도, 고속도로가 보인다. 왼쪽 위의 임실천은 위쪽으로 흐르고, 오른쪽의 둔남천은 아래쪽으로 흐른다.
▲ 임실 삽재 개요도 임실 삽재의 도로, 옛 철길, 전라선 철도, 고속도로가 보인다. 왼쪽 위의 임실천은 위쪽으로 흐르고, 오른쪽의 둔남천은 아래쪽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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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흙길의 원형은 찾을 수 없지만, 고개 이름은 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철길은 2004년에 폐선이 되고 궤도와 자갈을 걷어낸 노반(路盤)은 농로가 되었다.
▲ 삽재 옛 철길 (현재 농로) 이 철길은 2004년에 폐선이 되고 궤도와 자갈을 걷어낸 노반(路盤)은 농로가 되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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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국도 4차선 자동차길. 옛 흙길인 삽재 고갯길을 거의 이어받았다. 노면을 깎아내어 도로 물매를 완만하게 다듬었다. 임실 교차로에서 월평교차로까지 1.8km 구간이 삽재 고갯길의 중심이다.
 
왼쪽이 옛 철길(현재 농로)이고 오른쪽이 4차선 17번 국도다.
▲ 삽재 고갯마루의 도로와 옛 철길 왼쪽이 옛 철길(현재 농로)이고 오른쪽이 4차선 17번 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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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완공된 전라선 단선(單線) 철길. 이 철길은 2004년에 폐선이 되고 궤도와 자갈을 걷어낸 노반(路盤)은 농로가 되었다. 70여년 동안 전라선 철도로서 역할을 다하고 은퇴하여, 추억과 향수를 반추하고 있다. 삽재 구간의 이 길이 걷기에는 참 좋다.
 
중앙의 도로는 삽재 고개로 진입하는 17번 국도이다. 왼쪽에 전봇대가 늘어선 곳에 옛 철길이 있다.
▲ 삽재 도로와 옛 철길 중앙의 도로는 삽재 고개로 진입하는 17번 국도이다. 왼쪽에 전봇대가 늘어선 곳에 옛 철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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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삽재 고개에서 우회한다. 규모 큰 터널과 고가도로가 토목 기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라선 철도 구간의 임실 터널(터널 길이 4,665M). 2004년 KTX 시대를 맞아 전라선 직선화 복선화(複線化) 공사로 건설되었다. 이 터널은 삽재 옛 철길의 서쪽으로 500m 간격을 두고 지름길로 직선화한 철도 터널이다.

2011년에 완공된 순천완주고속도로. 이 고속도로가 삽재의 동쪽에서 1km 간격을 두고 삽재와 거의 평행이다. 한 걸음씩 걸어서 넘던 옛 고갯길이 이제는 긴 철도 터널로 산맥을 통과하고, 고속도로로 하늘 위를 질주한다.

증기기관차도 쉬어 넘던 삽재 고개의 철길
 
옛 오류역은 철거되고 그 부지는 현재 임실 동부권 고추 사업장의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 옛 오류역 부지 옛 오류역은 철거되고 그 부지는 현재 임실 동부권 고추 사업장의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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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라선의 오류역(五柳驛)에서 삽재 고갯마루까지는 약 3km 거리였다. 전라선 삽재 구간을 연결하는 철길과 오류역은 2004년에 없어졌다. 전라선 임실역에서 남원역까지의 선로는 전라선 직선화와 복선화 공사로 선로를 다른 곳으로 내었기 때문이다. 오류역은 철거되고 그 부지는 현재 임실 동부권 고추 사업장의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증기기관차가 옛 전라선 철도를 운행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오류역을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삽재 구간의 긴 오르막 선로를 오르는 것은 힘든 도전이었다.

삽재 철길의 고갯마루에 이르지 못하고 동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증기기관차가 멈추어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열차는 오류역까지 천천히 후진한다. 증기기관차는 강력한 외연 기관이었지만 고개를 올라가는 선로의 경사도가 높고 긴 구간은 불리한 조건이었다.

오류역에서 증기기관차 화구에 석탄을 힘껏 퍼 넣고 연소 시켜 수증기가 많이 발생하면 더 큰 추진력을 얻는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다시 오르막 선로를 힘껏 내달리면 승객들은 모두 증기기관차를 응원했다. 열차가 멈추지 않고 삽재 철길을 넘어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었다.

증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 시대를 거쳐 2004년부터 KTX 열차가 운행되었다. 철도는 더 안전하고 빠르게 발전되었다. 검은색 무쇠 덩어리 증기기관차는 투박하지만 정겨웠다. 초가집 아궁이의 이글거리는 불꽃 같은 원시의 생명력.

가마솥 솥뚜껑을 들썩이는 듯 힘센 원시적인 수증기. 증기기관차는 수증기를 내뿜으며 기적을 울리고 물레방아같이 큰 바퀴를 컨로드와 크랭크를 힘차게 움직이며 달렸다. 그 시대 철도 풍경의 주인공인 증기기관차의 아날로그적 정서와 향수는 강렬하게 기억된다.

삽재 마을 월평리에 전해오는 '금 나와라, 뚝딱' 설화
 
삽재의 북쪽에 임실 치즈테마파크, 치즈마을이 있고, 남쪽에 오수 의견비, 의견공원이 있다.
▲ 삽재 주변의 임실 관광지 삽재의 북쪽에 임실 치즈테마파크, 치즈마을이 있고, 남쪽에 오수 의견비, 의견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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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월평리 삽재 가까운 곳에 월평리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천 년 이상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이 고대부터 사통팔달한 교통의 요지였고 장수지역의 가야 세력으로 향하는 봉수대로 추정되는 유적이 삽재 가까이에 있다. 이 지역은 전북 장수와 운봉 지역에 거점을 둔 가야 세력이 서해안의 가야포(伽倻浦)로 향하는 통로였다.

이 월평리 산성 아랫마을에 황금 바위 설화가 구전된다. 임실군청 홈페이지 '문화관광 전통문화 임실의 전설'에 '금암(金岩) 바위'로 채록되어 있다.

옛날 이 마을 이웃한 두 집에 총각과 처녀가 서로 연모하였다. 그런데 처녀에게 혼담이 들어오자, 어느 날 총각이 마을을 떠났다. 처녀가 총각이 있다는 성수산을 찾아갔다. 총각과 처녀가 다시 만나자 총각이 머무는 움막 옆에 있는 바위가 황금으로 변했다. 총각과 처녀는 황금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혼례를 치렀다. 얼마 후 다시 황금 바위를 찾아갔는데 그냥 평범한 바윗돌이었다.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한다. 철을 생산했던 장인들은 바위를 황금으로 바꾸는 도깨비 같았다. 민담(民譚)에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은보화가 쏟아졌다. 고전소설 흥부전에서 흥부가 박을 타니 보물이 쏟아진다. 흥부전에 도깨비 설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야 고분, 봉수대, 제철 유적지, 산성 등 가야 세력의 유적이 수백 곳에서 발견되는 전북 동부 지역 운봉고원이 흥부전의 고장인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임실 지역에 활동하던 가야 세력권 야철(冶鐵) 장인들의 활동도 이처럼 황금 바위 설화를 이루어 전승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삽재에서 2km 북쪽에는 임실 치즈로 유명한 관광지인 치즈테마파크와 치즈마을이 있다. 삽재에서 10kn 남쪽에는 반려견 문화의 관광지인 오수 의견비와 오수 의견공원이 있다. 이들 관광지를 연결하는 삽재 고개는 증기기관차를 추억하고, 황금 바위 설화를 이야기하며 사계절 어느 때나 활력 있는 교통의 관문이다.

고갯길을 걸어 숲에 가까워지면 시간을 잊고 여유롭다. 나무와 풀이 합창하는 느린 노랫소리를 듣는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경칩을 지나면 곧 춘분이로구나. 어화, 좋다! 어화, 좋아! 어느 고개를 찾아가자!

태그:#임실 삽재, #월평리 산성, #금암전설, #삽재 철길, #고갯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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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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