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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모를 가슴 통증에 환자가 찾아왔다.
 원인 모를 가슴 통증에 환자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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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숨이 차고 힘들어요. 왼쪽 가슴이 너무 아파요."

진폐 진단을 받고, 우리 병원 외래로 2~3개월에 한 번씩 와서 엑스레이(X-ray) 검사를 하고, 약을 타가시는 분이었다. 굉장히 마른 몸을 가지신 분으로, 늘 볼이 움푹 파여져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식사는 제때 챙겨서 하세요?'하고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영 입맛도 없고 해서 하루에 밥 한 공기를 드실까 말까 한다고 하셨다.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잠시 후 컴퓨터 모니터에 한쪽 폐에 액체가 가득하게 찬 사진이 떴다.

6개월 전에 외래 방문하셨을 때 흉수(흉막강, 흉벽과 폐 사이 공간 내 고인 액체로 정상적으로도 소량의 흉수는 존재하지만, 세균성 폐렴, 결핵, 악성 종양, 심부전, 신부전, 간경변증에 의해 그 양이 병적으로 증가할 수 있음) 같은 건 전혀 없던 분이었는데, 갑자기 흉강(인간 및 포유류의 가슴 안 공간으로 심장, 대혈관, 폐, 식도 등의 장기가 위치하는 곳)의 절반이 넘는 공간에 흉수가 찼던 거였다.

환자분을 입원시키고 그날 오후, 바로 흉수 천자(예리한 의료기구로 신체를 찔러 체액 또는 세포조직을 채취하는 것. 검사 또는 치료 목적으로 시행)를 시도했다. 일단 흉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자거나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정도였기에, 물리적으로 액체를 제거해 통증을 완화해야만 했다.

나는 흉강으로 바늘을 넣었고, 액체가 졸졸 흘러나왔다. 진한 붉은 색이었다. 혈성 흉수의 가장 흔한 원인은 외상이다. 흉강 내의 동맥이 파열되었거나 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환자분께 여쭤봤다.

"최근에 어디 다치시거나, 넘어지신 적 있으세요?"
"없어요. 그냥 요즘 들어 너무 아파서 온종일 누워 있기만 했어요."


진폐증 환자에게서 다음으로 의심할 수 있는 건 폐암이나 중피종이다. 마음이 싸해졌다. 내일 오전, 모든 검사의 결과가 나왔을 때 난 이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어야 할까. 뽑은 흉수로 세포병리 검사를 나가고 CT를 찍었다. 진단명은 '악성 중피종'이었다.

흉수는 정말 부지런히 차올랐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고작 하루 동안 전날 뽑은 흉수만큼 새로운 흉수가 또 찼다.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일단 흉수 천자를 다시 하기로 했다. 일정량을 뽑고 나면 진단명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때, 환자분 휴대폰이 울렸다. 병실이 워낙 조용해서 통화 내용이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어린아이 목소리였다.

"할아버지! 생일 축하해! 언제 집에 와?"
"응 할아버지가 좀 아파."
"괜찮아, 빨리 나아서 내년엔 나랑 할아버지 생일날 놀러 가자."


하필 그날이 환자분 생일이었던 것이다. 흉강에 바늘 넣고 있던 손에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악성 중피종은 흉막에 발생하는 종양으로,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가 진단되는 시점엔 이미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5년 생존율이라는 것이 크게 의미 있는 숫자로 기록되지 못할 정도로, 최초 진단부터 사망까지 평균 1년 정도의 생존 기간을 보인다. 이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악성 질병으로 찾아온 노동자의 '일'
 
 노동자들이 어떤 물질에 노출된 것인지도 모른 채 노동을 한다. 최소한 분진에 노출된 바 있었던 노동자 스스로가 어떤 질병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어떤 물질에 노출된 것인지도 모른 채 노동을 한다. 최소한 분진에 노출된 바 있었던 노동자 스스로가 어떤 질병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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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철거 일하신 적 있다고 하셨던가요?"
"건설 현장에서 하스리(돌 조각을 다룬다는 뜻으로,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 이를 깎아내는 일)가 제 일이긴 했어요. 손 모자라면 철거도 같이 하고, 저쪽에서 사람 없다고 하면 같이 돕고. 보수 공사한다고 하면 천장 떼고 거기에 또 시멘트 바르고 그거 갈아내고 하면 어휴, 1m 앞도 안 보여요."


환자분 말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하던 그 당시에는 보호구에 대한 개념도 희박해서 노동자들도 보호구를 딱히 요구하지 않았고, 간혹 마스크가 지급된다 해도 일하다 숨이 답답해져서 멀리 던져놓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주 동안 하루종일 뿌연 공기 속에서 일하고 나면 며칠씩 까맣거나 붉은빛이 도는 가래가 나왔다. 유독 목이 칼칼한 날엔, 동료들과 '기름칠 좀 하자'며 돼지 껍데기를 사 먹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다음 날 또 같은 현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했다.

어디서 얼마나 근무하셨던 건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석면에 노출되셨던 것 같았다. 악성 중피종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석면'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악성 중피종 사례의 80%는 석면 노출력이 있을 정도로 큰 상관성을 보인다.

하루라도 기다렸다가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분께 그것 또한 잘못된 일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질병과 앞으로의 예후에 대해 설명드렸고, 그 원인으로 예전에 작업하실 때 석면에 노출되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씀드렸다.

환자분이 물으셨다. "저 그럼 반년은 살아요?" 무어라 대답을 드릴 수가 없었다.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석면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거기서 생길 수 있는 질병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석면이라고 들어는 봤죠. 지하철역인가에 있다고 뉴스 나올 때나 들어봤지. 그거 말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1980년대에 이미 석면을 금지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1970년대 성장한 석면사업이 1990년대에 최고기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 석면 사용이 금지된 것은 2009년으로, 고작 10년이 지났다.

석면으로 인한 중피종의 잠복기간이 30년이니, 우리나라 악성 중피종 발생률은 2040~2045년 무렵에 최고치를 보일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본인이 위험에 노출됐던 적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것 같다.

지난 노출력을 바꿀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분진에 노출된 바 있었던 노동자 스스로가 어떤 질병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노출력이나 근무력이 명확하게 증명하지 않더라도 석면 노출이 의심된다면, 정기적으로 스크리닝 받을 수 있는 별도의 방법도 마련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 예방이 가능한 병은 아닐지라도,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고, 어느 날 갑자기 준비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인 김규연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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