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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전국 4천여명의 택배 기사들이 오는 21일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나 이날 오후 정부의 인력 충원 등 대책에 따라 분류작업 거부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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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어느 40대 택배기사가 죽었다. 3월 12일엔 쿠팡 소속의 또 다른 택배 노동자가, 4월 10일과 5월 4일엔 CJ대한통운 소속의 두 노동자가 죽었다. 6월 11일엔 로젠택배에서, 7월 5일과 8월 16일엔 또 다시 CJ대한통운에서 '건강하던' 세 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남겨진 가족은 슬퍼했다. 처음으로 가족여행 가는 날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도, 팔팔하기만 하던 동생을 불시에 잃어버린 누나도, 자식 잃은 부모도, 모두 갑작스런 죽음에 기막히게 슬퍼했다.

혹자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택배 물량의 급증이 이들 사망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맞지도 않다. 확실히 코로나19는 여러 사회문제를 드러냈다. '창조' 혹은 '유발'이 아니라, '드러냈다'고 쓰는 게 옳다.

만성적으로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병폐들이 감염병을 계기로 하여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낮을수록 병균에 취약하듯, 사회적으로 방치되어있던 사람일수록 재난으로부터 더 큰 위협을 받는다.

그러니 이들 '사회적 고위험군'을 위한 대책은 단순히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피상적 접근이어선 안 된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의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아니네?

필자는 서문서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택배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나 엄밀히 따지면, 상품의 분류와 배달을 담당하는 택배기사분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은 소위 '다단계식 개인사업자'로 불린다.

회사에 피용자로서 고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한 사업자로서 '동업' 계약을 맺은 관계라는 뜻이다. 이 설명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과거에 논란이 되었던 학습지 교사 혹은 덤프트럭 운전사들을 떠올리면 된다. 이들 역시 회사가 주는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았다. 이러한 노동 형태를 특수형태고용근로라고 부른다.

얼핏 들어선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괜히 취직해서 아랫사람 대우받느니,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기분이라도 좋을 수 있지 않나? 더불어 사측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업무 자율성'을 보장받기 때문에, '자아의 주체적 실현'이라는 '노동'의 본질적 의미에 보다 근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 번지르르한 포장지에 숨겨진 내실이 으레 그러하듯 특수고용 역시 노동의 착취를 돕는 나쁜 제도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흔히 '노동자'라고 하면 저학력, 육체노동 등을 떠올리며 괄시하곤 한다. 이는 사실도 아니거니와, 대한민국의 2000만 노동자(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이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전체를 폄하하는 무식한 태도다. 

법적으로 '노동자'임을 인정받는 것은 결코 사회적으로 하위 계급에 속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근로기준법 등에 마련되어있는 합당한 경제적 보호와 부조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비롯해 4대 보험, 퇴직금, 부당해고금지 등 수많은 법적 조항들은 사측과의 고용계약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되면 경제활동을 하는 중 국가가 마련한 법률적 보호망 속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닐 경우, 당연히도 이러한 보호 조치를 적용받지 못한다. '정글 자본주의' 속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이 정확히 그러하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회사에 귀속되어 있다. 회사로부터 일감을 받고, 그들의 사규에 따르며, 주어진 할당량을 충족한다. 업무상 실수를 범한 경우 회사로부터 페널티를 받기도 한다. '사장님'다운 권한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노동자가 보장받는 권리의 일부분도 누리지 못한다.

회사가 이야기하는 업무 자율성 역시 허구다. 택배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쉴 수가 없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병가, 휴가를 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불가피하게 결석한 경우엔 회사가 동원한 '용차'(대체배송인력)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할당된 물량을 책임진다. 용차 비용은 약 3000원으로 택배 노동자들이 받는 건당 수수료의 4배를 넘는다. 막막한 현실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택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다. 2019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을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했다. 사실상 택배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적인 의미 말곤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다. 필자가 인터뷰 한 전국택배연대노조의 한 간부는 판결 이후에도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측의 태도를 꼬집으며 개탄했다.

물과 분류는 셀프
 
 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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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택배 노동자의 임금 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택배 노동자들은 배달 물량 한 건당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보통 700~800원 정도 된다. 이해 못 할 시스템은 아니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니, 액수에 대한 것 말고는 누가 달리 불평하려 들겠는가?

문제는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는 다만 배송만이 아니다. 배송을 출발하기 전 택배를 분류하는 과정 역시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대가는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필자가 만난 어느 택배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13~16시간 노동을 하는데 그 중 절반만 배송을 한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 동안엔 물건을 분류해서 자기 차에 옮기는 분류작업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가는 일절 지급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공짜 노동이다."

이는 택배 노동자의 애매한 고용형태를 악용한 사측의 꼼수이다. 택배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은 '택배기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면 노동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돈을 주게 되므로 자본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노동한 시간에 대해 돈을 주지 않는 것은 어떤가?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이념적으로 접근하길 꺼려하는 편이지만, 자본주의자들은 이에 분노해야 한다.

공짜 분류노동은 택배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늘리는 큰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해도 분류작업을 끝내고 나면 오후 2시가 넘는다. 늦게 출발하게 되니, 배송 중에 더욱 시간에 쫓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량과 피로가 과중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빠른 배송 부탁드려요^^"라는 말

시스템 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색 있는 배송문화다. 한강공원에까지 닭을 배달해주는 '배송강국' 대한민국은 '신속'과 '정확'을 타협할 수 없는 가치로 삼는다. 모든 택배는 최대한 빨리, 주문자의 집 앞에 전달되어야 한다. 기업과 소비자는 상호작용하며 택배 노동자를 재촉한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의 마케팅 슬로건이 등장하며 관련한 문제가 더욱 심화하였다. 더구나 급하게 배송하는 중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택배 노동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기업은 제한 없는 채찍질을 가할 수 있다. 이러한 신속·정확 배송문화는 택배 노동자 1인에 대한 업무량을 과중시키며, 여유를 빼앗는다.

희소식은, 최근 소비자 차원에서 택배 노동자의 과중된 업무를 완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늦어도괜찮아' '#택배주문안하는날' 등의 슬로건을 내건 캠페인도 꽤 많은 호응을 받았다.

'택배 없는 날'을 정기화하라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의 '8월 14일 택배없는 날' 인증 사진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의 "8월 14일 택배없는 날" 인증 사진.
ⓒ 이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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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질적 문제에 코로나19로 인한 물량 급증이 겹치면서 택배 노동자의 업무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에 따라 휴일 없이 달려온 택배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택배 없는 날'이 시행되었다.

CJ대한통운과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의 4개 주요 택배사는 2020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했다. 한국 고용노동부도 이에 발맞추어 같은 날을 '택배 쉬는 날'로 설정하고 심야까지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28년 만에 얻은 첫 휴가를 빌어 그동안 못해왔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의 한 간부는 "12년 만에, 8년 만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여행을 가봤다는 분들이 많았다"며 '택배 없는 날'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이후 택배업계는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하여 정기적인 휴가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택배 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공휴일이나 국경일에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선 한 달에 한 번은 '택배 없는 날'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주장에 대해 소비자의 불만을 들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앞서 강조했던 것처럼 소비자 차원에서 택배 노동자를 돕기 위한 움직임이 늘고 있다. 또한 필자가 자체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한 달에 한 번 택배 없는 날'에 찬성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인 직장인과 같은 휴식권을 부여하기 위해선 고용 형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으로써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 없는 날'을 더 자주,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고용을 늘려라, 쫌

기존 택배 노동자의 고용형태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분류작업을 위한 인력은 추가적으로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전국택배연대노조에서도 분류작업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현행의 시스템은 명백한 착취구조이다. 회사는 빨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는 정부 차원에서 인력 충원을 돕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기존 택배 노동자의 배송 범위를 일정하게 축소하고, 나머지 부분의 배송은 정부가 고용한 추가 인력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임금 고정 약속을 받아 노측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면, 고려해봄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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