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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삔라흐띠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음악 연주를 들으며 한가로운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라삔라흐띠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음악 연주를 들으며 한가로운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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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도시개발 분쟁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의 첫 환자 입소날은 7월 11일.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매년 이 날을 기념하는데, 올해는 'Lähde goes to Art(라삔하르띠가 예술을 찾아 갑니다)'라는 문화 행사가 열렸다. 라삔라흐띠를 찾은 시민들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헬싱키 시당국이 2년여간 추진해온 라삔라흐띠 개발 계획을 지난 6월 말 최종 철회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180주년이 되는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의 보수공사 비용은 135억 원이 넘는다. 헬싱키 시 도시개발부는 2년 전부터 건물 보수를 포함, 병원이 위치한 라삔라흐띠 공원 일대를 새롭게 개발할 투자개발자를 공모전을 통해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헬싱키 시민들은 중요한 공공장소를 민간기업에 팔아 이 지역이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든 시민을 위한 라삔라흐띠
 
 도시개발 대상이었던 헬싱키 라삔라흐띠 공원에 자리한 노란색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사진제공: Pro Lapinlahti )
 도시개발 대상이었던 헬싱키 라삔라흐띠 공원에 자리한 노란색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사진제공: Pro Lapinlah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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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계획이 발표된 2018년 이래 시민들은 '모든 이를 위한 라삔라흐띠, 라삔라흐띠는 모든 사람에게 속합니다(Kaikkien Lapinlahti, Lapinlahti kuuluu kaikille!)'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발 사업 반대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리고 그해 말 3만 명 이상의 시민이 서명한 반대 청원서가 헬싱키 시에 전달됐다. 핀란드 전체 인구가 550만 명임을 감안하면 시민들의 호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캠페인에는 따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과 뻬까 하비스토 현 외무부 장관을 비롯, 유명한 영화감독, 배우, 연예인과 각 분야의 수많은 예술가 등이 동참했다.

캠페인을 주도한의 프로라삔라흐띠정신건강협회(프로는 ~를 지지한다는 뜻)의 디렉터인 논니 마끼까르끼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라삔라흐띠 정신병원 지역은 보존 지역으로 지정됐으며, 문화 역사적으로나 자연 생태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 속 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이며, 민간업체가 상업적으로 개발해 소중한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모두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위한 곳'이라는 정신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프로 라삔라흐띠 협회의 디렉터 논니 마끼까르끼씨가 정신병원 역사 및 지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프로 라삔라흐띠 협회의 디렉터 논니 마끼까르끼씨가 정신병원 역사 및 지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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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철회를 요구한 엔렙 부동산투자기업의 개발 제안서에는 3개의 건축회사들이 참여해 180년 된 정신병원 건물을 2천만 유로(약 270억원)를 들여 기초 보수 공사는 물론 내부를 개조해 숙박업소로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건물 용도를 변경한다고 되어 있다. 또 요트 선착장을 설치하고 카페와 레스토랑을 더 확충하고 핀란드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토베 얀손이 창작한 캐릭터 무민 뮤지엄을 만들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무민은 1945년 소설 속 삽화에 처음 등장해 TV 시리즈로도 선보였는데, 하마를 닮은 정감 있는 생김새로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있는 캐릭터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무민이 부동산 개발업자를 만나다. 그리고 시민들은 분노한다'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많은 무민 캐릭터 제품의 판매 수익은 연 8억 5천만 달러에 달하고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도시 개발이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같은 반발에 NREP Oy는 새로운 개발 수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헬싱키 시 당국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언론 보도로 인한 사회적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지난 5월 중순 개발에 대한 사전합의를 취소했다. 그리고 6월 말 시의회는 이 개발 계획에 대해 최종 철회 결정을 내렸다.

시민들이 사랑한 라삔라흐띠 정신병원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헬싱키 시내 중앙역에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삔라흐띠 공원 안에 있다. 1841년 설립된 이 병원은 면적이 5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핀란드 최초의 정신병원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신병원 중 한 곳이다.

19세기에 원로원 광장과 헬싱키 대학, 헬싱키 대성당, 국립도서관 등 헬싱키의 주요 건축물을 설계한 '칼 루드빅 엥겔'이라는 독일인 건축가가 설계한 마지막 건축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전쟁에도 폭격을 피해 예외적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지난 2014년 병원 건물을 면밀히 조사한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 타파니 무스또넨은 "19세기의 옛 건축물을 잘 보존하려면 천천히 점진적으로 복원, 수리해나가는 것이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시급히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라고 진단했다. 

건물 바로 옆에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사우나도 있다. 이 사우나는 환자와 직원 들을 위해 1880년에 지어졌다. 또 라삔라흐띠 공원은 400여 종의 식물이 있으며 커뮤니티 가든까지 조성돼 자연생태학적으로 기치가 높다. 이러한 문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왔다.
 
 정신병원 건물 옆에 있는 사우나로 핀란드에서 운영중인 가장 오래된 공공 사우나이다.
 정신병원 건물 옆에 있는 사우나로 핀란드에서 운영중인 가장 오래된 공공 사우나이다.
ⓒ Pro Lapinlah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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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핀란드의 여러 예술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19세기 핀란드 문학의 아버지인 희곡가이자 소설가 알렉시스 키비도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얻은 심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세계적인 음악가 장 시벨리우스도 동생이 병원 원장으로 근무할 때 이곳을 자주 들렀으며 시민전쟁 때에는 1년간 거주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문학인과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2008년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이 문을 닫은 후 헬싱키 시와 계약을 맺은 NGO들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은 문화와 정신건강 분야에 종사하는 200여 명의 관계자들이 상주하며 예술치료 학교, 심리치료 상담사, 테라피스트와 예술가들의 작업실, 전시 갤러리, 카페, 식당 등이 입주해 있다. 
 
 라삔라흐띠는 미술전시 및 여러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하다. 한 아트 워크샵 사진(사진제공: Pro Lapinlahti )
 라삔라흐띠는 미술전시 및 여러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하다. 한 아트 워크샵 사진(사진제공: Pro Lapinlah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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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삔라흐띠협회는 워크숍, 세미나, 예술강좌를 비롯 음악회, 전시회 등 여러 문화 예술 행사를 주관한다. 그 중 미띠(미팅 포인트라는 뜻) 프로젝트는 시민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어학, 댄스, 보드게임, 명상, 요가 등의 스포츠 교실과 클럽 등의 다양한  모임이 운영된다.

미띠 프로젝트 매니져 암자드 쉐르씨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핀란드로 이주한 파키스탄인으로 흥미로운 활동 두가지를 소개했다.

코로나19로 모든 그룹 활동이 중단되기 이전에는 매주 월요일 '런 투 사우나(Run to Sauna)'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런 투 사우나는 라삔라흐띠 공원과 이어지는 해변가 5km 정도를 뛴 후 사우나를 즐기는 활동이다. 또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프랜즈 위드아웃 보더스(Friends without borders)' 프로그램이 열렸다. 여기서는 43개국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난민, 이민자, 교환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교류했다. 이 프로그램은 반응이 너무 좋아 참가자가 몰려 인원 수를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도심 속의 커뮤니티 가든

공원 한쪽에는 네이처 클럽(Nature Club)이 운영하고 50~60여 명의 시민이 직접 가꾸는 '커뮤니티 가든'이 있다. 유치원이나 학생들이 와서 자연 생태 체험도 하고 예술가나 심리치료사들과 함께 정원의 꽃이나 채소들을 가꾸며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커뮤니티 가든을 관리하는 따이나 락소하리유씨는 "(개발 사업으로) 새 건물이 들어서려던 장소는 그냥 버려진 빈 공간이 아니라 희귀종 식물에만 날아드는 나비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며 "상업적으로 개발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귀한 녹지"라고 말했다. 그는 "공원은 가난하고,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모든 시민들에게 지금처럼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가꾸는 라삔라흐띠의 커뮤니티 가든, 100여 종이 넘는 채소와 꽃들을 재배한다.
 시민들이 가꾸는 라삔라흐띠의 커뮤니티 가든, 100여 종이 넘는 채소와 꽃들을 재배한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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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휴식과 여가활동의 공간. 크로켓 게임을 하는 모습(사진제공: Pro Lapinlahti )
 평소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휴식과 여가활동의 공간. 크로켓 게임을 하는 모습(사진제공: Pro Lapinlah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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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치료사인 수산나 빠르띠오씨는 "핀란드의 다른 오래된 정신병원들은 아파트 거주지나 스파로 재개발되어 왔지만, 라삔라흐띠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본래의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승해 나가는 유일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신적 웰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2~3년간 많은 조명을 받기 시작했으며 지난 7년간 시민들이 쌓아 올린 것들을 상업적인 개발로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라고 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라삔라흐띠 공원

라삔라흐띠는 연간 방문객 수가 7만 명에 달한다. 연 400회가 넘는 여러 문화 예술 행사를 주최하는 프로라삔라흐띠협회는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와 활동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근 헬싱키 시로부터 3차례나 상을 받았다. 또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2019년 EU연합 위원회가 만든 유럽 문화유산 어워드(Europa Nostra Awards)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유엔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1위로 선정한 헬싱키의 혁신은 '사람'에서부터 출발한다. 지난 180년간 진화되어온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이곳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들이 있어 특별하다. 도시개발 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라삔라흐띠 정신병원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남게 됐다.

'도시는 사람이고 사람이 곧 도시'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2020년 헬싱키 시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정체성을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모두에게 의미있게 만들어가는 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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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중학생, 초등학생 두아이를 낳아 키우며 IITA 국제 통번역협회 인증 통역사, 방문단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용한 변방에 위치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 교육, 문화, 사회 분야의 야생 블루베리같은 알찬 소식들을 찾아 고국의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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