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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진 펜 운동에 쓰이는 사진
 인천공항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이후 SNS에서 "노력은 필요없어졌다"며 "부러진펜" 운동이 일어났다.
ⓒ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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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공정'.

최근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보안검색원 1902명)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이들의 다음 말과 글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것들이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6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천공항 정규직은 토익 만점, 컴퓨터활용능력 1급에 겨우 서류 통과하고 고시 수준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공부해서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청년들의 소박한 바람은 기존 정규직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되는 것처럼 비정규직 전환도 공정한 경쟁을 통하라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참여 인원 30만 명이 넘은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 국민청원은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그냥 다 전환하는 게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역시 <"이럴 거면, 노량진 컵밥 왜 먹었나요" 청춘들이 분노한다>(6월 23일), <"운 좋으면 정규직, 이게 K직고용">, <공부 대신 시위하는 법 배울까, 2030 '부러진 펜' 운동 확산>(6월 24일)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사설을 통해 "경제 정책 아닌 정치 정책으로 '비정규직 제로'를 밀어붙인 결과 오히려 청년들을 좌절시키고 불공정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 자원배분 원리, 능력과 공정
   
 마이클 영의 저서 < 능력주의 >. 지난 1958년 이미 능력주의의 폐해와 부조리를 예견했다.
 마이클 영의 저서 < 능력주의 >. 지난 1958년 이미 능력주의의 폐해와 부조리를 예견했다.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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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공정이 논란의 뇌관이 된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 인재선발과 자원배분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독보적 원리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즉, 교육과 노동 분야에서 '(객관식) 시험으로 능력·노력을 측정해 줄 세우기로 변별'하고 '선발 과정의 객관성·투명성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독실한 신앙 수준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우리나라 많은 대중이 수능과 공채, 고시를 선호하고, 점수, 스펙, 서열을 신뢰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 기준에서 볼 때 인천공항은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시 시험을 통해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합리·불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시험을 통한 능력 평가와 절차적 공정성의 강조는 직관적으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매우 효율적인 방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각각 치명적인 약점 또한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약점은 모두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천공항 논란에서 보다 바람직한 논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능력주의'와 '과정의 공정'이 지닌 맹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돈도 실력"... 불평등 부르는 능력주의
   
먼저 능력주의(Meritocracy)를 보자. 능력주의는 '부와 권력 같은 재화가 개인의 재능과 노력, 성취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철학'을 말한다. 지위와 권력을 세습하고 출신·배경에 따라 보상을 받는 귀족주의와 반대되는 말로, 그보다 한층 진일보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능력주의는 효율과 기능을 중시하는 미국을 위시해 여러 국가가 신봉하는 가치다. 한 예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트위터에서 이민자에 대해 "실력(merit) 기반 시스템을 통해 우리를 다시 강하고 위대해지도록 도울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오길 바란다. 더 이상 로또는 없다"고 말하며 능력 위주의 이민정책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원래 부정적 의미로 생겨난 말이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능력주의>라는 공상소설에서 능력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오히려 심각한 불평등을 낳는 모습을 묘사한 풍자로 처음 사용했다.

지난 2001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영국을 완전히 능력주의로 탈바꿈시키자"고 연설했을 때도, 80대 중반 노인이 된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를 타도하자'라는 글을 가디언에 기고했다. 그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굳어져 다른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내주지 않는 데 대해 반대한다"며 "능력주의라는 말을 삭제하거나 적어도 그 말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썼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돈도 실력"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돈도 실력"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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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해 보이는 능력주의가 오히려 불평등을 불러온다는 게 무슨 말일까?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능력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개인이 자신의 온전한 능력과 노력으로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신념은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능력·노력 외에도 다른 수많은 요소가 경쟁의 승패를 결정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페이스북에 쓴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이다. 승마에서 특출한 능력을 갖지 못했더라도 권력실세 엄마가 뒤를 봐주고 1등 재벌 삼성이 말을 사주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권력·자본의 불평등이 능력을 압도하는 사례다.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허구다

미국 사회학자 스티븐 맥나미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는 <능력주의는 허구다>에서 능력을 이겨버리는 비능력적 요인들로 "차별적 교육기회, 불평등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특권의 상속과 부의 세습, 개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들, 자영업자의 자수성가를 방해하는 대기업, 편견에 의한 차별 등"을 꼽았다.

미국 언론인 크리스토퍼 헤이즈도 <똑똑함의 숭배>에서 "우리가 지적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부습관이나 근면성, 사회성, 그리고 우리가 성공과 연관 짓는 수많은 특성뿐만 아니라 유전, 부모의 역할과 계급, 문화적 유산, 사회 경제적 인간관계, 그리고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한 기회가 서로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행운'이라는 요소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에서 10만 명의 경쟁자를 대상으로 행운이 전체 성과 중 겨우 2%를 차지하고, 나머지 98%는 재능과 노력이 각각 같은 비중을 차지할 때 누가 승리하는지 점검하는 모의실험을 시행했다. 그 결과 승자들 가운데 78.1%는 재능과 노력 점수의 총합이 가장 높은 사람이 아니라 운이 좋은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전체 성과에서 행운이 매우 작은 부분만 좌우한다고 해도, 경쟁자가 많은 상황이라면, 가장 유능한 사람이 승리하는 경우는 드물고,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승리하는 게 보통"이라고 결론 짓는다.

다시 '귀족주의'로, 능력 따른 자원배분 불합리
  
능력주의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설사 순수하게 능력과 노력으로만 평가받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해도 능력주의의 내재적 특성상 그 사회는 결국 불공정·불평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자체가 필연적으로 실력에 따른 '차이'를 강조하므로, '평등'과 '사회적 이동성'에 필요한 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능력 있는 자들이 사회자원을 독차지하고 이를 자녀에게 세습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외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잡대(지방대생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이백충(월수입 200만 원인 사람을 비하하는 말)', '빌거·휴거(빌라나 임대아파트 거주자를 깎아내리는 말)'와 같은 차별과 혐오의 말이 생겨나는 이유다.
  
 부모의 월 소득이 200만 원이면 '이백충'이라는 혐오표현을 듣을 수 있다.
 부모의 월 소득이 200만 원이면 "이백충"이라는 혐오표현을 듣을 수 있다.
ⓒ 엠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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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논문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2016)'에서 "지능과 노력이라는 능력에 의해 보상을 받는 능력주의는 출신과 배경에 의해 보상을 받는 귀족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등장해 처음엔 진보적 이념으로 간주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상 귀족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임이 드러났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능력주의의 단계는 귀족주의 반대말로서의 능력주의(1단계) → 교육과 시험평가에 의한 능력주의(2단계) → '교육세습'의 영향을 받는 능력주의(3단계) →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에 따라 능력주의는 결국 양극화와 세습이 심화돼 "변형된 세습적 귀족주의"로 변질되고 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이미 이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능력주의의 허구성에 제대로 주목하면 단순히 능력에 따라 재화를 배분하고,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며 과도하게 차등을 주는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방대에 진학하거나 비정규직에 입사하는 것 역시 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실력적 요인이 적용된 결과이므로 불합리한 차별, 촘촘한 서열, 신분 나누기로 인한 우월감과 열등감 등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개인이 명문대나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자기 능력에 더해 가정과 사회의 여러 지원과 기여, 행운이 있었으므로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성취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게 보다 정의롭다. 즉 능력주의보다 더 진화한 형태의 자원배분 원리가 필요하며, 그럴 때 보다 더 순수한 형태의 능력과 노력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과정의 공정'만 강조하면
  
다음으로 '과정의 공정'을 보자. 인천공항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이후 정규직 노조가 "공정이 무너진 곳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결과적 평등 거절! 과정의 공정 수호"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하태경 의원이 '로또취업방지법'을 발의한 것을 보듯, 한국 사회에서 절차적 공정은 반드시 수호해야 할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진다. 특히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정당한 경쟁보다 사회적 인맥, 돈과 권력 등으로 승패가 갈리는 모습을 본 대중들에게 과정의 공정은 계층 사다리에서 좀 더 위 칸으로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하는 마지막 동아줄과 같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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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과정의 공정 또한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짙은 그늘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객관성·투명성을 확보해 절차적 공정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수능의 경우 부유층 학생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2019년 교육부가 13개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이들 대학에서 지난 4년간 소득 8구간(평균 소득 월 468만 원) 이하만 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Ⅰ유형 수혜자 비율이 수능 입학생은 25%에 불과해, 학생부 종합전형 입학생(35.1%)보다 적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저소득 0~3구간 비율도 수능 입학생은 10.7%로, 학종(16.2%)보다 적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학생이 수능으로 입학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미국의 수능이라 할 수 있는 SAT도 마찬가지다. 2019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조지타운대의 연구 결과, 대입에서 SAT 점수와 고교 내신 등을 함께 활용하지 않고 SAT로만 선발할 경우 미국 상위 200개 대학 신입생의 부자·백인·남성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AT 성적순으로만 신입생을 뽑으면 소득 상위 25% 가정 출신 학생이 60%에서 63%로 증가하고, 하위 75% 학생은 40%에서 37%로 감소하며, 백인은 9%, 남성은 5% 각각 증가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성적순으로 대입을 진행할 경우 결국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다.

기회의 평등 커져도 열매는 상위계층이 독식
  
이와 같은 현상은 심지어 '기회의 평등'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기회의 평등만이 강조될 경우 늘어난 기회가 각 계층에 고르게 분배되거나 하위계층에 집중적으로 분배되기보다는 상위계층부터 채워져 내려가므로, 오히려 불평등이 지속되거나 강화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연 연구자의 논문 '교육 불평등 변화 양상 분석'(2016)에서 한국 사회 계급별 교육 불평등 양상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교육기회는 1950년대 이후 꾸준히 확대되어 왔지만 그 열매를 자본가와 중간계급(관리자·전문직)이 주로 가져가고 노동자와 농촌자영업자 계급은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1943년~1955년 출생자의 수도권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자본가 계급에선 60%, 농촌자영업자 계급에선 32.2%였지만, 1976년~1986년 출생자의 경우에는 자본가 계급에서 48.44%, 농촌자영업자 계급에서 8.43%였다. 교육 기회가 확대될수록 두 계급의 교육격차가 더욱 벌어져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정의 공정과 기회의 평등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결과의 정의(평등)'에 보다 주목을 기울여야 한다. 즉 교육·노동·부동산 등에서 구조적으로 극심하게 벌어진 격차를 어느 정도 보정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고, 최저임금을 올려주고, 지방 고교생·대학생에게 진학·취업 시 일정한 혜택을 주고, 다주택자에게 많은 세금을 거둬 공공주택을 짓는 일 등이 모두 결과의 정의를 위한 보정에 해당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야 비로소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 보다 순수하게 활성화될 수 있다.

여기는 '헬조선'이라... 능력과 공정에 집착   
  
 한 게임 유저가 그린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
 한 게임 유저가 그린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
ⓒ www.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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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한국을 헬조선이라고도 부르던데, 진짜 지옥이랑 비슷합니까?
- 답 : 사실이 아닙니다. 진짜 지옥에선 죄지은 놈이 벌을 받습니다.

  
나무위키 '헬조선' 항목에 소개된 트위터 글이다. 헬조선은 '지옥(Hell)'과 '조선'을 합쳐 한국 사회가 마치 지옥처럼 살기 어렵다는 뜻을 담은 말로 지난 2014~2015년부터 널리 퍼져왔다. 위 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옥은 그래도 죄인이 처벌받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곳인데, 한국은 죄 없는 사람이 고통받는 곳이므로 지옥보다 못하다는 풍자를 담고 있다. 댓글도 뼈아프다.

"초면에 죄송합니다. 헬조선은 동어반복이라 문법에 맞지않다고 합니다. 마치 역전 앞처럼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 특히 청년들이 능력과 공정에 몰두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이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2015년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신조어로 1위는 '금수저', 2위 '헬조선', 3위 'N포세대'가 꼽혔다. 부와 지위의 세습, 극심한 경쟁과 병목, 그로 인한 절망을 모두 나타낸 기가 막힌 단어 조합들이다. 이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개혁성향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일자리, 교육, 부동산 등에서의 불평등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한국은 아직 헬조선이다.

능력과 공정에 대한 집착은 여기에 뿌리를 박는다. 당신이 처참한 전쟁터 한가운데 놓인 병사인데 그중 10% 정도만 선발해 집에서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발 기준과 그 과정의 객관성·투명성이다. 여기서 개인의 존엄성이나 개성, 특성,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한 일일 뿐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살아남는 소수가 되기 위해 지능이든 힘이든 일정한 능력을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고, 그 순위를 정확하게 매기는 것만이 중차대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능력과 공정을 우리는 과연 진정 의미 있는 가치로 여길 수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거대한 불공정과 불의에 복무하는 데 불과한 것이 아닐까? 개인이 전쟁터를 벗어나는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을 끝내는 것뿐이다.

'인서울' 대학, 대기업·정규직, 강남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한 전쟁을 끝내야 한다. 시민들은 구조적 불공정과 불평등 해소를 줄기차게 요구해야 하고, 정부는 소수만 살아남는 교육·일자리·부동산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제 단순한 능력과 공정에 따른 자원배분이 아니라 이를 넘어 더 합리적이고 공공적인 자원배분 원리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공기업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운 좋게 빠져나간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한 발짝 앞서 나간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경쟁이 진짜로 공정하려면, 반드시 '정의'로워야 한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글항아리(2018)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사이(2015)


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마이클 영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이매진(2020)


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은이), 한진영 (옮긴이), 갈라파고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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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깊고 짙은 저널리스트이고 싶다. 책 <거룩한 코미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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