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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종종 개나리 나무 그늘 아래서 부침개를 부쳐주곤 했다. 개나리 나무가 꽤 크게 자라 넝쿨을 이루자, 쓸 만한 그늘을 내어 주었다. 애호박을 송송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꼭 짠 후, 개어 놓은 밀가루 반죽과 함께 버무린다. 잘 달구어진 팬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큰 국자로 한 국자 떠내 팬에 지져주던 엄마의 부침개. 마당으로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뜨거운 부침개를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달큰한 애호박의 맛과 고소한 들기름의 향이 한꺼번에 입속에 퍼졌다. 개나리 나무 그늘이 있던 마당에서 엄마와 둘이 앉아 도란도란 나누었던 애호박 부침개의 추억. 그때 이후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애호박 부침개를 부쳐도 그 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스물을 조금 넘길 즈음, 우리 가족은 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옮겨 갔다. 그리고 반평생 넘게, 주택에서 살던 20여 년보다 훨씬 오래,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릴 적 추억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우연처럼, 이사
 
 주택에서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료사진)
 주택에서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료사진)
ⓒ pix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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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아파트를 팔고 주택에서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건 5~6년 전이다. 생각지도 않게 아이가 유학을 가게 되었고, 아이 학교 통학을 위한 도심 근거리 아파트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을 내놓고 주택을 알아보고 다닌 지 3년. 금방 나갈 줄 알았던 집이 팔리지 않았다.

거의 포기 상태로 시들어가던 내 욕망은 뜻밖의 시기에 다시 돛을 올리게 되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3월, 마스크를 낀 초로의 남성이 집을 보러 왔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이 시국에 남의 집을 보러 오나 싶어, "잘 보고 간다"는 남자의 뒤통수를 잠깐 흘겼는데, 그가 매수 의사를 밝혔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전세 매물이 많지 않았다. 10여 채 정도의 주택을 둘러보았을까. 주택은 정형적 구조를 가진 아파트와 달리 선택의 포인트를 잡기가 어려웠다. 게다 2층으로 된 집이 대부분이어서, 어떤 집이 적당할지 감 잡기가 어려웠다.

고르고 골라 한 집이 낙찰되었고 전세 계약을 하고 이사를 왔다. 그렇게 소망하던 주택을 전세로 얻은 이유는 하도 뜯어말리는 지인들이 많아서였다. 기분에 휘둘려 덜컥 주택을 샀다가 후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걱정 섞인 위협이 주택 구매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팔랑 귀의 숙명이다.

이 방 저 방, 바쁠 땐 거의 뛰다시피 후다닥 드나들던 아파트와 달리, 이층으로 된 새 집은 이 후다닥이 쉽지 않았다. 거실과 주방이 아래층이고 침실이 이층에 있는 형태인데, 방에 있거나 두고 온 뭔가를 가져오기 위해(휴대전화, 핸드크림, 고무줄, 펜 등등) 수시로 드나들던 아파트와 달리,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쓰레기 처리도 곤란했다. 정해진 날에 재활용 쓰레기 무더기를 가져가 분리되어 있는 칸에 배출하던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병은 병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아예 분리해서 큰 비닐봉지에 담아 배출해야 했다. 재활용을 위해 비닐을 또 써야 하나 툴툴대면서.

또 다른 문제는 벌레였다. 우리 집은 쥐며느리의 근거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벌레가 수시로 출몰한다. 주방에 무심코 놓아둔 과자에도 어김없었다. 다음 날이면 흑설탕을 묻힌 듯 달라붙어 있는 개미를 보곤 기함했다. 그 외 거미와 이름도 모르는 벌레가 종종 찾아들고, 한밤중 스르륵 벽을 타는 돈벌레를 보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고작 이 정도 기개로 주택으로 이사한 게 만용이었나.

별도의 주차장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서늘한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보관하던 호사는 끝이었다. 벌써 더워진 날씨에 땡볕에 세워 둔 차를 타려면, 정신 차리고 미리 차 문을 열고 더운 기를 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이 델 지경이다.

이밖에도 주택살이의 불편한 점은 열거할 게 더 남아 있고, 지금껏 주절댄 것으로 보아 나의 주택 이주기는 실패로 보일 테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주택살이가 좋아지고 있는 주택의 매력을 엮어 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

이사 온 집은 건물이 약 30평에 마당이 약 40평 정도 된다. 정남향 집으로 거실 문밖으로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의 한쪽 귀퉁이 세 평 정도가 텃밭이고, 전에 살던 주인장께서 심어 놓아 꽤 자란 나무들도 몇 그루 있다. 그중 하나가 매실나무인 것을 매실이 열리고서야 알게 되었다. 또 그중 하나가 보리수 나무라는 것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어 사진을 찍어 나무를 잘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식물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다.

집 둘레에 놀랍도록 황홀하게 피어 있는 새빨간 꽃이 꽃양귀비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전 주인장께서 듬성듬성 심어 놓은 붓꽃(마당의 꽃 중에 유일하게 아는 이름이다)도 보라색 꽃을 피우니 그 자태가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일부러 내다보지 않아도 소박한 잔디와 그 둘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나무, 그리고 제 멋에 겨워 피어난 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이런 풍경을 보면, 맞은편 아파트 건물을 마주하며 하루을 시작할 때와는 다른 정서가 틈입한다.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텃밭에 작물을 심었다.
 텃밭에 작물을 심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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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 떡하니 마당에 있으니 땅을 놀릴 수는 없을 터. 뭐라도 심어야 했다. 한창 대목인 모종 가게에 들러 뭘 심어볼까 궁리하다, 오이, 고추, 가지, 호박, 피망, 방울토마토, 상추 모종을 샀고, 시금치는 씨를 뿌려보기로 했다. 이랑을 두 줄로 해서 각각 3개씩 사온 모종을 심고 나머지는 시금치 씨를 흩뿌렸다. 시금치야 어서어서 나와다오. 나물도 무쳐먹고 된장국도 끓여 먹게.

텃밭에 작물을 심은 후, 주택에 이사 온 기념으로 고기를 굽기로 했다. 바비큐를 하겠다고 설치는 남편에게 고작 한 근 구워 먹자고 숯을 피우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주저앉혔다. 대신 수수하게 구이 팬에 고기를 굽기로 했다. 여행을 가지 않는 한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일은 없었는데...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니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집 앞에 있는 '수리부엉이 보호 구역'이라는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초록 초록한 산을 마주 보며,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먹는 고기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약간 어둑해지며 산의 초록이 짙어지자 운치가 더해졌다. 딱 펜션에 온 느낌이랄까. 아, 이 맛이야. 이게 주택의 맛이지.

텃밭에 건 기대가 얼마나 대단한 김칫국이었는지는 3주도 지나지 않아 판명되었다. 마당에 수도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었는데도 도무지 모종이 자랄 기미가 없었다. 시금치 씨앗도 아주 조금 삐죽이라도 싹이 나올 법한데 감감이다. 모종만 심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우선 땅이 좋아야 하고, 퇴비도 충분해야 한다는 걸, 10여 년 경력의 도시농부 지인분한테 듣고서야 알았다.

무지한 주인 탓에 지금 텃밭에 살아남은 작물은 고작 고추와 가지 두 개, 호박과 피망 하나 그리고 상추 세 포기다. 보살피지도 않고 작물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길 바란 비양심이 민망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작물에 뭔가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 손가락만 한 초록 고추가 한 개씩 매달려 있고, 더 자세히 보니, 별 사탕만 한 초록 피망과 단춧구멍만 한 호박이 달려 있지 않은가. 아이고, 기특한지고.

게다가 생각지도 않은 '득템'이 있었으니 바로 딸기였다. 텃밭 이랑을 만들다 보니 한구석에 그냥 잡풀로는 보이지 않는 식물이 있기에 갈아버리지 않고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망한 작물로 의기소침해 있던 내 눈에 뭔가 보였다. 땅에 거의 붙어 있듯 매달린 것을 들여다보니, 막 빨개지기 시작한 딸기이지 않은가. 크기라야 고작 아주 작은 조약돌만 하지만, 심지도 않은 딸기를 수확해 먹게 생겼다. 풀인지 알고 파 버렸으면 어찌했을꼬.

아파트에서는 언감생심 상상도 못했던 것들

세탁기에서 수건을 빼내오면서 문득 거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볕이 너무 좋았다. 미세먼지 걱정에 햇볕 건조가 이제는 그다지 환영받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저 흠뻑 쏟아지는 볕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려서 살던 주택엔 옥상이 있었다. 엄마는 많은 빨래를 하나 가득 빨랫줄에 널곤 하셨다. 식구가 많아 마치 세탁소 빨래처럼 많기도 했다.

많은 빨래에 축 늘어지는 빨랫줄을 큰 장대로 추켜세워 빨랫줄을 지탱시켰다. 옥상에서 볕을 한껏 받으며 마른 빨래는 늘 기분 좋게 부숭부숭했다. 거실에 세우려던 건조대를 마당으로 가지고 나갔다. 펼친 건조대에 수건을 착착 널었다. '미세먼지... 까짓거 털지 뭐' 이후로 빨래는 줄곧 마당행이다. 볕에서 바짝 마른 빨래에선 햇빛건조 특유의 냄새가 난다. 딸이 잘 마른 옷에 코를 킁킁대고 말한다.

"엄마, 옷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

젊은 혈기 탓에 계단을 쿵쾅대며 오르내리는 딸애에게 "살살 다녀!"했다가 잠깐 멈칫, "가만있어 봐. 이제 쿵쾅대도 되잖아." 층간 소음 조심하느라 식구들에게 조용하라고 다그칠 일이 이제 사라졌다.

초록 잔디 마당과 빨강 노랑 주황 그야말로 원시 그 자체인 원색의 화려한 양귀비 꽃들을 바라보며 아침을 연 지 한 달여. 남편이 게으름을 피우느라 고기 구운 야외 테이블을 접지 않고 둔 어느 날, 그 테이블을 매실나무 그늘 쪽으로 옮겨 본다. 그럴싸했다. 카페 야외 테이블이 뭐 별건가. 커피를 한 잔 준비하고, 신문을 들고 (요즘 세상에도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냐며 종종 원시인 취급을 받는다) 테이블로 간다. 볕이 아직 세게 내리쬐지 않은 아침 동안엔 앉아 있을 만하다.

수수한 파라솔(우산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만큼의 크기다) 밑에서 최고의 조도를 주는 해를 받으며 보는 신문은 활자가 정말 눈에 박히는 것 같이 들어온다. 이 시간이 어느덧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파트에선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해본 시공간이다. 아, 이래서 주택에서 사는구나.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선택하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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