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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주의 교육과정을 담은 사이트 교사는 물론 일반인도 이 사이트를 읽어보면, 호주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 빅토리아주의 교육과정을 담은 사이트 교사는 물론 일반인도 이 사이트를 읽어보면, 호주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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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를 나와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내게 교과서는 분신과도 같았다.

꼬박꼬박 돌아오는 중간/기말 고사에 맞춰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했고, 시험도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않게 출제해내느라 진땀을 뺐다. 시험 출제 기간이 도래하면 입시의 최전선, 특히 영어 담당 교사였던 나는 출제부터 평가관련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새가슴이 되어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시험 문제를 '교과서' 밖의 지문으로 제시하면 "배우지 않은 내용"이란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학생도 교사도 교과서에 의존한 수업을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한국은 왜 교과서 암기 테스트만 해요?"

한국 학교 속사정을 모르는 한 외국인 친구가 너무 진지하게 묻는 질문에 낯이 부끄러웠지만, 달리 변명할 구실도 찾지 못했었다. 솔직히 내용이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도 교과서만 달달 외우면 맞힐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았다. 

어느 페친 교사의 말처럼 나도 교과서를 '금과옥조' 쯤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서 공부했고,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니 교과서 없는 교육은 미친 짓처럼 여겨졌다. 국경 밖에는 '미친 교육'을 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반신반의 했다. 세상엔 머리가 아닌 몸의 감각들로 직접 겪어봐야 장단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피자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맛을 상상 할 수는 있지만, 직접 먹어볼 때까지는 진짜 맛을 영원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민 생활은 참 별스럽다. 한국에 쭉 살았다면 죽는 날까지 한 올의 의문도 품지 않았을 질문들이 매일 '시루 속 콩나물 대가리' 올라 오듯 하고 오랫동안 생각을 붙들어 매기도 한다.

호주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중등도 교과의 특성에 따라 선택을 하는 과목이 몇 있을 뿐이다.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면 교육에 응용할 자료가 주변에 무궁무진하단 얘기도 된다. 사실 아이 학교는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 인터넷 상의 교육관련 사이트와 앱들이 학교 안과 밖의 교과서들이다. 글로벌 한 세상, 인터넷으로 지구촌이 된 세상, 검색 능력만 갖추면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21세기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한국의 교육은 악, 교과서가 전무하다시피 한 호주의 교육은 선' 이란 극단적인 이분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교육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듯이,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 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거의 모든 교사가, 거의 모든 과목이, 전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교과서에 의존해서 교육을 받고 평가 받고 있다는 점, 그 사실 자체가 극단적이다.

몇 주전 온라인 상에서 한국의 한 교사가 올린 온라인 수업용 학습자료를 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교과서, 몇 해 전 대한민국 기성세대들의 추억을 소환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21세기의 플랫폼인 온라인 상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의 엇박자 느낌이었다.

'배우고 연구해서 남과 공유하기'
 
매주 월요일마다 제공되는 주간학습 계획표(온라인 수업용) 멜버른 초등학교에서는 주간 수업 계획표를 학부모에게 제공한다.
▲ 매주 월요일마다 제공되는 주간학습 계획표(온라인 수업용) 멜버른 초등학교에서는 주간 수업 계획표를 학부모에게 제공한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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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없는 교육은 과목 간의 경계를 허물고 전체적(holistic)이고 전인적인(all-round) 교육 설계를 용이하게 한다."

멜버른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기본 철학은 "놀이 중심/각 과목 간 융합을 통한 전인적 교육"이다. 한국의 국가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교과서가 없는 이곳은 수학을 운동장에서 몸 놀이(체육)를 통해 개념을 배우고, 음악을 통해 개념을 확장하고, 종이접기와 색칠하기(미술)를 통해 반복 시키고, 마인크래프트 코딩(실과)을 통해 문제 해결력과 컴퓨터 활용 기술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읽기와 쓰기를 구분하는 대신 읽기와 쓰기를 넘어 말하기와 문법, 인터넷 상에서의 자료 탐색 능력과 최종적으로는 발표능력까지 융합시키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나 과목의 특성 상 또는 교사들의 협의나 판단 하에 교과서를 채택하여 이뤄지는 경우와 유일한 선택지가 교과서밖에 없어서 마지못해 선택한 경우는 질적으로 다르다. 교사의 자율성과 책임성 그리고 담당 과목에 있어서 교육 전문가로서의 입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호주와 같은 방식의 수업은 교사들이 '배우고 연구해서 남과 공유하기'가 기본 원리로 작동해야만 가능하다. 한국과 달리 일년간의 교육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주간 수업 계획표'를 학부모와 학생에게 제시하려면 교사들은 커리큘럼을 학기 단위로 미리 계획해야만 한다. 국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의 흐름과 일관성을 이해하고, 학년 또는 구성원 전체가 교육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협의하고 토론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교육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다. 

교과서에 의존한 교육은 교사나 학생에게 편리함을 주는 대신, 적극적인 연구자/탐구자로서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교육활동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제한하기 쉽다. 일년간의 교육내용을 모두 담은 교과서만 있으면 교사들은 교과 연구면에서 얼마든지 나태해지고 게을러질 수 있다.

수업 연구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동료간에 수시로 교과 협의를 하지 않아도, 국가 교육과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수업이 가능한 구조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교육을 교과서 속의 지문과 문제들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협소한 과정으로 이해하기 쉽고, 스스로 의문을 갖고 관련 자료를 찾고 내용을 확장/심화 시키는 교육의 능동적인 주체로 여기기 어렵다.

한국의 아이들도 '교과서 밖'으로 나오기를
 
한국의 교육과정을 담은 사이트 한국 '교사지인 찬스'를 사용하여 간신히 알아낸 방치된 느낌의 사이트.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자료가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타 국가의 교육과정에 대한 안내는 정보 오류도 많고 열면 공란인 경우가 많아 부끄러운 수준의 사이트.
▲ 한국의 교육과정을 담은 사이트 한국 "교사지인 찬스"를 사용하여 간신히 알아낸 방치된 느낌의 사이트.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자료가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타 국가의 교육과정에 대한 안내는 정보 오류도 많고 열면 공란인 경우가 많아 부끄러운 수준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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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설계 – 교수학습 – 평가의 일원화를 실천하는 교육"

멜버른에도 학원이 존재하고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있다.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공교육의 미흡한 점을 사교육으로 보충하고자 하는 부모들이 존재한다. 특히 전세계에서 온 이민자들은 정보력과 사회자본 측면에서 현지인들을 따라가기 어려우니 어쩌면 사교육이 절실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버른의 사교육은 공교육과 엄연하게 구별이 되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영역을 침해할 수는 없다. 

과제중심/문제해결/ 토론학습/프로젝트 수업/ 발표 수업을 통한, '교육과정 설계 – 교수학습 – 평가의 일원화'를 실천하는 공교육을 사교육이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두 기관을 비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반면에 한국처럼 공교육이 교과서에 의존한 암기/주입/입시 위주의 수업과 평가를 주로 하는 시스템에서는 사교육과의 큰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 두 기관의 비교가 적나라하고, 사교육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기도 쉽다. 교사들은 교수학습 활동 외에도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 세계인의 일상을 전복시킨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변화된 세상과 내 아이가 받게 될 새로운 교육이 기대되고 궁금하다. 이렇게 희망을 품고 기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호주의 교육이 최고는 아닐지언정 동시대에 보조를 맞춘 교육을 할 것이란 믿음과 신뢰 덕분이다. 아이들에게 이미 잡은 죽은 물고기를 입에 넣어주는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직접 손에 낚시대를 쥐어 주는 능동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는 확신의 결과다. 뉴노멀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교과서 밖의 세상에 대한 상상과 동경이 필요하다. 한국의 아이들도 함께 교과서 밖으로 행군하길 응원한다, 멀리 멜버른에서!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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