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정리를 했다. 겨울 옷을 창고방 붙박이장에 넣고 봄, 여름 옷을 내 방으로 가져왔다. 여기까지는 전에도 해본 적이 있다. 이번에는 분류까지 했다. 바지, 셔츠, 블라우스, 자켓, 원피스를 종류대로 걸어줬다.
뭔가 묻은 채로 오래 방치해서 변색이 되어 있는 옷들도 있었다. 세탁소에 가져가도 깨끗하게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래도 세탁을 해볼까? 버릴까? 아니면 그냥 걸어둘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상태로는 입지도 못하는데 왜 걸어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예전에 나라면 결정을 미루는 쪽을 택했으리라는 걸. 항상 보다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쓸 시간이 없다며 쫓기는 마음으로 살았다.
일년 전에 학원을 폐업했고, 지금은 코로나19때문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에는 출근할 때마다 옷을 찾느라 옷장을 들쑤시고 쏟아낸 옷들을 채 걸지도 못하고 침대에 널브러뜨리고 나가기 일쑤였다. 시간이라면 이 편이 더 걸렸을 거다. 이렇게 정리하지 못한 문제들이 마음의 옷장에 뒤엉켜 있었던 기분이다. 옷을 하나하나 걸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9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2층인 우리 집은 거실 창으로 화단의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자랑거리이다. 가을이면 노랗고, 빨간 단풍을, 봄에는 파릇파릇한 연두색 잎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세 그루 중 하나가 벚나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이럴수가, 3월 말쯤 메마른 가지에 연분홍의 작은 꽃 봉우리가 몇 개 맺히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얼굴을 드러냈다.
"엄마, 이 나무가 벚꽃 나무였어?"
딸이 신기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태 모르고 있었지?"
중간에 나무를 바꿔 심었을 리도 없고, 아무리 내가 무심하다지만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끝에 보기 좋게 핀 벚꽃을 보며 곧 나무 전체가 솜사탕처럼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꽃송이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벚나무는 더 이상 꽃을 피워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리도 짧은지. 그래서 우리가 8년간을 모르고 지냈나 보다.
꽃집에서 장미 화분을 샀다. 벚꽃을 닮은 분홍 장미다. 이번에는 봉우리 하나가 맺혀서 만개할 때까지 지켜볼 생각이다. 찰나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한 눈 파는 사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우리 옆으로 새어나갈지도 모르니까.
더불어 장미가 까다로운 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볕을 쪼여주어야 하고 바람을 맞게 해야 해서 매일 창가에 놓아두어야 한다. 꽃집 사장님 당부대로 화분 속 흙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꽃이나 잎에 물이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물을 주고 있다. 어린 왕자의 장미만 까탈스러운 게 아니었다.
지금은 옷장 속 헝클어진 옷 같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예민하지만 유일한 나만의 장미를 키우기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