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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인 시절이던 지난 2008년 제주도 표선면 가시리 를 방문해 마을 원로들부터 제주4.3의 비극에 대해 얘기를 듣는 장면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인 시절이던 지난 2008년 제주도 표선면 가시리 를 방문해 마을 원로들부터 제주4.3의 비극에 대해 얘기를 듣는 장면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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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시민기자로 제주 구석을 누비던 시절이 있다. 매주 제주의 마을 한 곳을 정해서 사람을 만나고, 마을 구석에 남은 삶의 자취를 찾으려 했다.

제주의 마을에는 공통적으로 빠질 수 없는 슬픔이 있다. 한국전쟁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가장 뼈아픈 역사인 제주4·3에 관한 것이다. 제주4·3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 사라져버린 마을들,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 비극을 수집하며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가슴엔 슬픔이 켜켜이 쌓였다.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한 덕에 꽤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게 됐다. 도내 연구자들과도 신뢰가 쌓였고, 4·3평화재단에서 근무하는 직원과도 가까워졌다. 외국에서 온 석학을 안내한 적도 있고, 아랍을 대표하는 방송인 '알 자지라'의 취재진을 만나 현장을 소개한 적도 있다. 취재기자가 아닌 아마추어 언론인으로는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

"도민의 상처를 어루만지겠다"던 그였는데

그 시절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 지금은 집권여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해찬 의원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8년 여름, 지금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원철 의원(내겐 그냥 '형'이다)을 통해 연락이 왔다. 박원철 의원은 "이해찬 (전) 총리께서 네 4·3관련 기사를 보고 한 번 만나고 싶어 하신다"라고 했다.

그렇게 만남이 성사됐다. 이해찬 대표는 당시 "요즘은 정치를 안 하니까 시간이 남아서 도종환 선생과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눈다"라며 "내가 제주도와 4·3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자 도종환 선생이 시나리오 써주겠다며 다큐멘터리를 한 편 제작해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기사 가운데 표선면 토산1리 다룬 글을 언급했다. '다른 곳으로 물질을 다녀왔더니 남동생들이 다 죽고 없었다'던 해녀의 얘기가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이해찬 대표의 일행과 표선면 가시리를 먼저 찾았다. 오임종 표선면 4·3유족회장과 안봉수 가시리장이 함께 했고 마을 원로들이 4·3 당시의 비극을 증언했다. 학살터에 부모와 할아버지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경험담, 경찰이 아기를 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강제로 끌고 와서 총살하는데 아기만은 살리고자 죽을 때까지 아기를 품는 엄마를 봤다는 목격담, 부모 없이 홀로 자라는데 학교에 가서도 빨갱이 자식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후일담 등 원로들은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얘기를 꺼내며 울분과 서러움을 터트렸다.

원로들은 "나라의 총리까지 지내신 분이 우리 마을까지 찾아와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니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올렸고, 이해찬 대표는 "참여정부가 제주도민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도민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화가 끝나고 이해찬 총리는 "오늘 내가 오길 잘했다. 어른들이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솔직히 쏟아낼 정도로 우리 참여정부에 신뢰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좋은 자료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가시리 마을 다음으로 토산1리를 찾았다. 토산1리도 상황을 가시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3당시 남자 대부분이 몰살돼 여자들만 남은 마을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취재가 끝났고,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고 헤어졌다.

그런데 기다렸던 다큐멘터리는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당시 가시리나 토산1리 원로들이 쏟아낸 절박한 울분과 서러움을 이해찬 총리가 제대로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노인들의 언어가 제주어 원형에 가까워 이해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분들의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게다. 또, 이듬해 예기치 않게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도 했다.
 
  4·15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송재호 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복당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4·15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송재호 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복당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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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호 전 위원장 전략공천, 그 이면의 문제점

그런데 지난 24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이 최고위원회를 열어 제주시갑 선거구에 송재호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전략공천 후보자로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송 전 위원장은 제주도에서는 원희룡 지사의 핵심 자문역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제주에서 원희룡을 움직이는 세력으로 '송일교'를 거론하는데, 이는 송재호와 제주일고, 장로교회를 줄여서 칭하는 이름이다.

송 전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 재도전을 준비할 당시 교수자문그룹인 '심천회'의 멤버로 참여하며 문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이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맡아 2년 임기를 채웠고 재임에 성공하던 터에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공천을 받았다.

그런데 송재호 위원장을 따라다니는 이름에는 원희룡, 문재인 외에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그의 선친인 송방식씨다.

더불어민주당 당원과 시민들 1100명은 지난 19일 제주시갑 선거구 전략공천 반대 서명을 첨부한 탄원서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 제출했다. 이들은 송재호 전 위원장에 대한 전략공천에 대해서는 "원희룡 도지사와의 각종 의혹으로 연일 제주 사회에 구설수가 되고 있고, 그의 부친 송방식씨는 서북청년단과 함께 악명 높았던 대동청년단의 표선면 총책으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했다.

제주4·3 당시 군인과 경찰 외에도 도민 학살에 앞장선 단체가 있으니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이다. 서북청년회는 당시 3.8선을 넘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북5도 출신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대동청년단은 지역 청년들로 결성된 조직이다.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 언급했듯이 송방식씨는 대동청년단 표선면 책임자로 활동한 기록이 남았다.

그간의 총선이 4월에 치러졌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제주4·3의 덕을 톡톡히 누렸다. 특히 이 계절을 앞두고 우익단체에서 제주4·3희생자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유권자들의 반발 심리가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그런 흐름이 지난 2004년 이후 16년 동안 민주당이 3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당을 오만하게 만든 걸까. 이해찬 대표가 만난 제주4·3피해자들이나 그가 전략공천자로 결정한 송재호씨나 모두 표선사람들이다. 제주4·3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잊지 않겠다던 이해찬 총리와 더불어민주당은 고약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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