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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나이였을 때는 널러(날아)다녔어"라는 말은 '아부지'가 자주 하는데, 주로 이야기 끝을 이렇게 마무리할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거나 못 봐서 모르겠다는 식의 말대꾸가 하고 싶다.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사그라지려고 했던 이야기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는 호남정맥 34구간 산행이 있었는데, 유난히 힘들게 느껴졌다. 학원 폐업을 한 지 8개월이 지났고, 해가 바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안하고도 시간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뿐이었다. 1월이 끝나가면서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돈도 떨어져갔다. 학원을 그만둔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앞으로 생활이 궁색해질까 봐 불안했다.

도시락밖에 든 게 없는 배낭이 무겁게 느껴졌다. 걱정으로 한발, 불안으로 또 한발, 두려움으로 다시 한발을 걸어나갔다. 위를 보니 앞서가는 선배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끝은 아득하고 멀게 보이고,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은 힘들지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 걷고 있는데도 자꾸만 뒷걸음치는 것 같은 기분.

그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산행도, 글 쓰는 일도. 힘들게 산에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이득이 되는 일을 하면 되는데, 헛물을 켜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작년 5월까지 나는 1시 30분까지 학원에 출근해서 9시 30분에 퇴근했다. 오전 시간은 너무 짧아서 책을 읽다 말고, 글을 쓰려다 말고 출근했다. 일을 하면서도 책의 글귀가 나를 붙들었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당장 옮기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면 학원에서 있었던 일(학부모님과 상담했던 일, 학생의 떨어진 성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그게 또 답답해서 술을 마셨다.

"산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힘들지 않냐고, 춥지 않냐고 묻는다. 어제 누가 나한테 물었다면, "힘들다고, 안 가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좋아서 등산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생스러운 이 일을 좋으려고 할 수는 없다. 

출발지인 모암제에서 존제산(703.8)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1시간 가량 올랐다. 몸도 풀리지 않은 데다 마음도 무거워 죽을 맛이었다. 존제산부터는 출입금지지역으로 유격훈련 하듯이 뭔가를 뜷고, 낮은 포복을 하고, 기어서 갔다. 이때부터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절반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갈 수도 없으니 남은 건 그저 전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유격훈련의 효과가 발휘하는 순간)

석거리재를 왔을 때, 딱 여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백이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버티고 있었다. 처음에 존제산으로 향하던 경사도보다 15도는 세워진 것 같았다. 60도 경사도의 가파른 길을 스틱을 쥔 왼손으로 찍고 오른손으로는 로프를 당기고, 왼발 오른발에 차례로 힘을 주어 내디뎠다. 온 몸 어디 힘이 안 가는 데가 없었다.

그렇게 올랐는데 끝이 아니었다. 전방에 있는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신기루 같은 산등성이가 백이산이라고 L 선배가 말했다. 먼저 간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는데, 그들은 초능력을 사용해서 간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생각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한다. 움직이니까 움직여졌다. 말이 이상한데, 힘이 다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걸을 힘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해서 하는 말이다. 정상은 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다음 발 디딜 곳만 보고 걸었다. 얼마쯤 갔을까? 정상에 먼저 간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파란 하늘이 열려 있었다.

백이산 정상은 양지바른 곳으로 그 곳만 봄이 일찍 온 것 같았다. 거기서 우리는 농담을 하며 한 명씩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모두들 힘들었던 것은 다 잊어버린 얼굴이었다. 내 얼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물었다면 "힘들지 않다고, 아니 힘들어도 다시 오를 거"라고 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까지라도 '널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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